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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Dec 23. 2021

둘이든 셋이든 알아서 할게요.

아이들을 가장 잘 키우고 싶은 사람은 부모입니다

인생의 매 순간을 촘촘하게 계획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큰 계획은 당연히 세운다.

그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그때는 좌절이자 절망일지라도 지나고 보면 전화위복이 되어 감사하는 경우가 참 많다.


가고 싶었던 대학에 당연히 붙을 거라 생각했건만 어처구니없이 떨어져 생각지도 못한 대학에 들어가야 했지만, 그 덕에 지금의 신랑을 만날 수 있었고

야심 차게 이민 계획을 세우며 미국 간호사 면허증도 따고 미국 대학에 언어 코스 입학 허가도 받아두고, 신랑은 미국 회계사를 따서 취직도 해놨건만

비자가 안 나와버리고..^^

만약 우리 계획대로 미국에 갔다면 첫째를 낳고 지독하게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고, 아이도 이곳에서 크는 것보다 힘든 생활을 했을 것이다.

또 코로나 시국에 내가 미국에서 간호사라면.. 어휴.



그 밖에도 많지만 참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가족계획]


육아 따윈 생각도 안 한 채 무작정 딸 3+아들 2 정도 낳아 북적북적 살고 싶었던 이십 대 초반을 지나

이십 대 중반에 결혼을 했고, 일찍 결혼을 했으니 신혼을 좀 즐기자 하다 보니 어느덧 이십 대 후반.

슬슬 압박, 눈치를 받았지만 현실적 문제가 피부에 와닿으니 딸 2+ 아들 1 정도로 축소.

그리고 30살에 임신해서 31살에 딸이길 바라며 첫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

둘째는 없다는 신랑을 겨우 설득시켜 3년 뒤 둘째는 딸이겠지 했는데 또 아들.

이제는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그만하기로.


저출산 문제가 잊을만하면 뉴스에 나오더니

내년에 나오는 아이들은 혜택이 어마어마하더라.

첫째부터 출산하면 200 + 1년 동안 매달 30만 원을 주질 않나

임신하면 주는 바우처도 금액이 몇 배가 뛰었더라.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혜택에 좀만 일찍 주지.. 아쉽고 배 아프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비혼/미혼인 사람들도 많고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는 집도 많고

있어도 외동인 경우도 참 많다.


어제 그리고 오늘 외동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과 길게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둘 다 이제는 꽤 큰 우리 아들들(4세)과 꽁냥꽁냥 연애하듯이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엄마들.


가족계획은 프라이버시라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굳이 물어보지 않는데, 이번엔 우리 둘째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대화 주제가 흘렀다.

둘째 계획은 없냐는 질문에

한 엄마는 [첫째 때 너무 힘들어서 엄두가 안 나고, 아이가 거부한다. 지금 주고 있는 사랑을 나눠주고 싶지 않다]라고 대답했고

다른 엄마는 [낳을 순 있지만 키울 자신은 없다. 우리 둘 다 나이가 많다. 이제야 편한데 다시 시작하라면 못할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각 집안의 분위기와 사정을 일일이 나열할 순 없지만 나는 알고 있기에 백 번 천 번 동의할 수밖에 없는 대답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용감했던가.

낳기만 하면 알아서 뿅 자라는 줄 알았나 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육아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그저 임신과 출산의 힘듦과 고통만 생각했고, 그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나에게도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딸 낳아야지? 둘째 얼른 키우고 셋째 가져”

라는 말을 한다. (셋째가 딸이란 보장은..?)


임신/출산? 하라면 다섯 번도 더 할 수 있다.


문제는 [육아]


옛날처럼 낳으면 알아서 크는 세상도 아니고

그렇게 키우고 싶지도 않다.


너무 소중한 내 아이들을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우고 싶은데, 하나와 둘은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근데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무책임하게 셋째? 퉤)

둘을 고집해서 결국 이뤄냈기에 내가 치러야 할 희생이 내 각오보다 더 커서 여전히 당황스러운 9개월 차 아들 둘 엄마.


5개월가량 남은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을 하면

아이들은 기다렸단 듯 아프기 시작할 것이고

돌아간 직장에 제대로 적응하기도 전부터 직장에서는 100% 집중 못하는 간호사, 아이들에게는 늘 바쁜 죄인 엄마가 될 것이다.


아이들과 우리 부부, 우리 가족이 그 상황에 익숙해질 때까지, 우리는 많이 아파야 할 것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얘기한다.


애들은 알아서 큰다고,

유난스럽게 그럴 필요 없다고,

애들은 다 아프면서 큰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금 고민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픈 만큼 성숙할 거라고,

지금 이 시기만 버티면 아이들이 일하는 엄마를 더 좋아한다고,

지금 네가 하는 고민은 배부른 투정이라고.


바보처럼 그냥 웃으며 끄덕였던 내가 대답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시간이 아닌 정성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고.

유난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최선이라고

아픈 게 당연할지라도 엄마에겐 당연할 수 없다고

지금의 고민을 충분히 해야 시간이 흐른 후엔 후회가 적을 것 같다고

아파야 이뤄지는 성숙은 내가 대신하고 싶다고

미래를 위해 버티는 이 시간 속 현재 우리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을 바라고 있다고

돌아갈 곳이 있는 내가 하는 고민이 배부른 투정으로 보이는 것처럼, 나에겐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의 불안이 그렇게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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