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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Dec 24. 2021

모든 면이 나보다 나은 내가 낳은 아들

K-장녀가 육아하며 내면 아이 토닥이기.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이상하리만치 어릴 적 기억은 까만색이라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은 대부분 부모님께서 말씀해주시는 이야기 속 아이다.

4-5살 이후의 기억이 굉장히 또렷한 신랑과 비교하면 내가 엄마 아빠 없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10살.


기억력의 차이인 건지 방어기제가 작용한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부모님이 기억하시는 내 어린 시절 모습은

[착하고 의젓한 아이]이다.

동생이 화가 나서 양손으로 내 얼굴을 꼬집고 흔들어도 동생을 밀거나 피하지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동생아 왜 그러는 거야 아파” 하고 당하고만 있던 아이.

그 이야기를 증명하듯 유치원 졸업사진에는 양 볼에 꼬집힌 손톱자국, 왼쪽 광대에는 눈보다 더 길게 연필에 긁힌 흉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리 첫째는 보이는 부분은 아빠를 많이 닮았다.

(더 닮은 아이가 나올 줄은 몰랐지만)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날 많이 닮았다.

성격, 식성, 성질머리 등등 ㅋㅋ


그래사 아이의 선한 행동을 선하게만 바라봐주지 못했다.

1월생이고, 그중에서도 체격이 크고 몸이 단단한 첫째는 1-2살 형들이 부딪혀도 밀리지 않는다.

그런 아이가 본인보다 어리고 작은 아이가 와서 먼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본인이 매우 아끼는 애착 인형이라도) 뺏어가면 순순이 빼앗기고, 쿨하면 그러려니라도 하겠는데 속상해서 나한테 와서 말도 못 하고 그냥 히잉- 하는 걸 보면 가슴에 천불이 난다


첫째가 두 돌이 좀 지나서의 일이다.

유아부 예배가 끝나고 어른 예배 사이에 시간이 좀 남아서 유아부 예배실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어른들끼리 얘기하고 있었다.

난 우리 아이가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라서 눈은 아이를 쫓으며 대화를 하고 있었고

우리 아이는 장난감을 잔뜩 들고 온 본인보다 두 살 위의 형아 앞에 앉아서 펼쳐놓은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 아이가 그중에 하나를 골라잡았고

그 순간 장난감 주인인 아이가 우리 아이의 뺨을 때렸다.

멀지 않은 곳이라 가볍게 짝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정도로.

그런데 내 아이는 (원래도 고통에는 좀 둔감한 편) 울지도, 나에게 이르지도 않고 그 장난감을 그냥 내려두고 일어나서 다른 친구랑 놀러 가버렸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어릴 적부터 인상이 날카로워서 오해를 많이 받았던 탓에 교회에선 정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그 장면을 본 순간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이야기하던 사람에게 양해도 구하지 못하고 내 아이에게 갔다.

뛰어서 양 볼이 다 붉은데 유독 맞은 쪽이 더 붉어보였다. (내 눈에만 그랬을 수도 있다)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으니

얼굴을 맞는 게 아이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인지

왜 내가 그렇게 묻는지 의아한 눈치다.

그래, 네가 상처 받지 않아 다행이다.


그날 난 그 엄마에게, 그 아이에게 따지거나 항의하지 못했다.

그 아이도 본인 장난감을 양보하기 힘든 세 살 아이였고, 그 엄마도 그 상황을 보고도 모른 척할 사람은 아닐 거라 믿고 싶었다.

내 아이도 괜찮고, 나만 마음 추스르면 된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데리고 그냥 집으로 와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난 아이에게 귀에 딱지가 앉게 가르쳤다.

누가 때리거나 밀면 “안돼! 하지 마! 딴딴이 아프잖아! 그렇게 하면 싫어!”라고 주변 어른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얘기하라고.

그리고 그런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꼭 얘기하라고.


그땐 아이가 어려서 이해를 못 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얘기했다.

어린이집에서 누가 딴딴이 속상하게 장난감을 빼앗거나 밀거나 때리거나 꼬집거나 깨물었는지.



아이가 네 살이 되었다.

어린이집을 큰 곳으로 옮겼고, 우리 아이는 친동생이 생겼다.

환경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인지, 아이가 갑자기 많이 큰 탓인지, 계속 주입한 교육이 결실을 맺는 건지 아이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단호하게 거절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조리원 친구들이 놀러 와서 항상 그렇듯 장난감이 많은 와중에 둘이서 하나에 꽂혔다.

당연히 딴딴이는 빼앗기는 아이였기에 친구가 딴딴이 장난감을 빼앗으려고 했다.

그때, 아이들은 방에서 놀고 어른들은 거실에 있었는데 거실에서도 들릴 만큼 소리를 빽- 지른다.

“안돼! 딴딴이가 먼저 가지고 놀고 있었잖아! 양보 안 할 거야!!”

소리치곤 문을 벌컥 열고 이야기 중이었던 우리에게 다가와 나에게 말한다.

“엄마 이거 딴딴이한테 소중한 건데 양보 안 하고 싶어요”


뒤따라온 친구도, 같이 있던 다른 친구도, 그 아이들의 엄마들도 다 당황했다.

우리 아이는 [힘은 세지만 항상 뺏기는 아이] 였기 때문에.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내가 정적을 깼다.

“OO아 미안한데 이 장난감은 딴딴이가 너무 소중하다고 하네. 비슷한 장난감이 많은데 우리 더 좋은 게 있는지 찾아볼까? 딴딴이는 이거 말고 친구한테 양보할 수 있는 좋은 장난감 같이 찾아줄 수 있을까?”

“네 좋아요! OO아 이건 어때?” 하며 방으로 쪼르르

얼떨떨 + 억울 한 친구가 망부석처럼 가만 서있자 그 아이 엄마도 아이를 달랬다.

결국 잠깐 간식타임을 갖는 걸로 분위기를 풀고 곧 친구들이 돌아갔다.


아이를 꼭 안아줬다.

잘했다 칭찬도 하지 못했다.

그냥 여러 마음이 교차했던 것 같다.

이러다 이기적인 아이로 자라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스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본인의 마음을 지켜낸 아이가 기특했고,

어른들끼리도 불편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내 아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린 내가 대견했다.


그래, 이제 시작이야. 우리 둘 다 연습하자.



그게 4월에 있었던 일이다.

시간이 꽤 흘렀고, 우리 아이는 가끔 민망할 정도로 본인의 마음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신랑은 너무 일러주고 그러면 친구들 사이에서 좀 안 좋은 거 아니냐며 걱정을 한다.

너무 까칠하고 (목소리도 겁나 큰 편) 단호하게 거절을 해서 ㅋㅋ 우리가 상대 부모나 아이에게 사과하는 일도 종종 있다.

그래도 괜찮다.

어찌 모든 일이 내 맘대로만 될까.

난 30년이 넘게 걸렸는데, 내 아들은 2년도 안돼서 배웠다(물론 다듬긴 해야겠지만).

그것만으로도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리고 그러지 못했던 30여 년 전의 [어렸던 나]도 치유되는 경험이었다.


아이는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상처들을 꺼내서 치유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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