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철미 Dec 20. 2021

우리 아들의 특이한 화법

4살 아이의 상처받지 않으려는 노력

우리 첫째에게 특별한 습관이 있는데,

본인이 듣고싶은 얘기를 스스로 하는것이다.

예를들면

“엄마- 이리와 딴딴아 안아줄게~ 라고 해줘”

이런식으로 상대방에게 듣고싶은 얘기를 본인이 친절하게? 정해주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에게만 국한된 버릇이었다.


아이의 작은 행동도 크게 받아들이는 초보엄마는

그로잉맘에 천원상담 행사할 때 여쭤봤더랬다.

그때 상담 선생님 말씀으로는 [실패하거나 거절당하는것에 예민한 아이] 라서 본인이 듣고싶고 들었을 때 편안한 반응을 정해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요즘들어 종종 본인을 베토(우리집 고양이), 티라노, 크롱 등등으로 불러달라고 하는데 ㅋㅋㅋ

그럴땐 “딴딴아~ 밥먹자” 하면 못 들은 척

“박티라노~ 밥 먹자” 하면 냉큼 대답한다 ㅋㅋ


어릴 적 역할놀이처럼 (세일러문에서 넌 누구역할, 난 누구역할 나누고 더 커서는 걸그룹 핑클/SES에서 넌 누구 난 누구 했던 것 처럼.. ㅋㅋㅋㅋ) 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건가보다 하고 가볍게 넘겨왔다.


오늘은 신랑이 일주일 내내 목 빠져라 기다린

[농구하러 가는 날]이다.

연애 초반, 하던대로 축구하러 갔다하면 연락이 안돼서 (축구 끝나고 밥먹고, 사우나까지 갔다와야 연락이 됐다) 운동 가는걸 싫어했더니 그 이후론 개인운동만 해오다가

최근에 농구모임에 초대되어 몇 번 가더니

본격적으로 할 요량인지 농구화도 사고 운동용 안경도 사서 더 기대하고 기다렸던 날이다.


두 아이가, 아니 온 가족이 다 감기에 걸리기도 했고

코로나가 무서운 기세로 퍼지고 있어 몸사리느라 주말 내내 마트도, 커피 사러도 나가지 않았다.

신랑이 나가는 시간은 정해져 있기에 가기 전에 애들 씻기기라도 하려고 아이들을 씻기고

둘째 겨우 건지고나니 신랑이 나갈 시간.


일주일에 서너번 필라테스 가는 동안

내가 나가려는 마음만 먹어도 눈치채고 울기 시작하는 둘째를 (달래는건 나만 가능) 버티고, 재우는 수고를 알기에 기분 좋게 보내주고 싶었지만


자꾸 표정이 굳는다.


코로나가 이렇게 심하고, 날씨가 이렇게 춥고,

본인도 기침을 간간이 하고, 첫째는 아직 욕실에 있어서 나올 땐 둘째를 업던지 울리던지 해야하고, 나도 아이도 저녁을 먹기 전이고..(오빠도 안먹고 감)


이런 상황인데도, 굳이 굳이 가야하는건가?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오빠는 조금 미안한지 머뭇머뭇하다 재활용을 싹 챙겨서 나갔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하다.

저녁을 차리고 첫째를 부르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빨리 나온다고 날 부른다.

혼자 놀고있는 둘째 몰래 살짝 가려다가 바로 들켰다 (애들은 육감이 장난이 아닌 것 같다)

업고 갈까 잠깐 고민하다가, 얼른 나오자 싶어 날 향해 기어오는 아이보다 아주 쪼오~ 금 더 빨리 걸어서 첫째에게 갔다.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나오라고 닥달했다.

역시나 아이는 밍기적거렸고

첫째가 욕조에서 채 나오기도 전에 둘째가 화장실에 도착했다. (안보이는데서 걷는건 아닐까.. 의심)

젖은 바닥을 기어서 새로 입힌 옷이 젖고

첫째는 그걸 보고 깔깔거리느라 나올 생각이 없다.


한번 참았다.

둘째를 한 손으로 안고 (12kg)

다른 손으로 첫째 손을 잡아서 욕조에서 나오자

첫째가 본인도 안아서 나가달라고 요구한다.

깨끗하게 무시하고 또 쪼오~금 빠른 걸음으로 ㅋㅋ먼저 나가서 입을 옷과 로션이 셋팅된 곳에 앉아 아이를 불렀다.


이때, 첫째가 본인을 크롱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그래 알겠으니까 얼른 와 박크롱씨~”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는 동안

첫째는 조잘거리고 둘째는 자꾸 짚고 일어나다 넘어지려고 휘청거린다.

이 모든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아마 이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표정이 굳었을 것이다.


첫째 밥을 한 세숟가락 먹었을까?

혼자 잘 놀던 둘째가 또 갑자기 서러워졌다. (장난감들이 화라도 냈나보다)

급하게 아기의자에 앉아 먹던 첫째를 어른 의자에 옮기고, 둘째를 앉혀 과자로 달래봤지만 이미 약이 바짝 오른 둘째 울음은 더 집요해진다.


첫째에게, 아니 크롱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둘째 수유를 하고 있으니 박크롱씨는 혼자 밥을 다 먹었다.

고맙고 짠한데 혼자할 수 있으면서 어리광 부리는 아이갸 야속하기도 했다.


둘 다 밥 먹고 간식까지 연달아 드신 후에

둘이 좀 토닥토닥 놀길래 아까 첫째 국 푸면서 나도 먹으려고 요거트에 그래놀라 부어둔 것을 한 입 먹으려는데

박크롱씨가 응가가 마려우시단다.

하하 그렇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데리고 가서 힘을 좀 줬는데 응가가 안나온단다.

장난치나 싶다가 화장실 들어온 김에 양치 하자고 했더니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무시하고 그냥 입에 칫솔을 냅다 꽂았다.


“엄마~ 그렇게 하면 크롱이가 속상하잖아~ 크롱이한테 미안하다고 해줘”

“(건성건성)어어 그래 얼른하고 나가자”

“엄마~ 크롱이는 여기에(바닥) 퉤 뱉고싶어”

“아니야 세면대에 해~”

바닥에 퉤

“(빠직) 너 엄마가!! 방금 말했는데!! “

“… 엄마.. 너무 크게 화내지마.. 크롱이가 미안하대.. 엄마 화내면 크롱이가 무서워하잖아..”


그때, 갑자기 띵- 귓속에 종이 울린다.


아이는 모자란 나의 감정표현 때문에

본인이 상처받은걸 그렇게 표현하는게 아닐까..

사랑하는 엄마에게 상처받고싶지 않아서

제 2,제3의 자아를 만들어 그 아이가 상처받았다고 표현하는건 아닐까..


물론 내 기우일 수 있다.

하지만 바닥에 거품을 뱉는게 뭐라고.. 물청소가 안되는 것도 아닌데.. 세면대 앞에 계단에 물이 있어서 거기 올라가지 말라고 한 것도 나였는데.. 멀어서 세면대에 뱉기 힘들 수도 있다는 배려는 왜 못한건지..


결과적으로 난 내 감정을 제대로 처리 못한 채 아이에게 쏟아부었고

아이는 작고 어리단 이유로 내 감정에 얻어맞아야 했다.



내가 마음이 달라지자 집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지 않았고

침대에서 데굴데굴 놀다가 적당한 시간에 천사처럼 내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난, 잠이 든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또 반성하고 자책했다.


내일은 더 사랑해줘야지. 내일은 더 어른스러워야지

내일은 눈 맞추고 온 얼굴로 웃어줘야지.

내일은 아이들과 속도 맞춰 걸어야지.

내일은 우리 딴딴이가 오롯이 본인일 수 있게 해줘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면이 나보다 나은 내가 낳은 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