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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Dec 18. 2021

부모가 되며 얻고 잃은것들

너희덕분에 행복해.  고맙고 사랑해

부모가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한다.

그 말에 천번 만번 동의한다.

아이->성인으로 자연스럽게 달라졌던 나의 세상은

[엄마]라는 이름을 얻고 나서 급격히 넓어졌다.

넓어졌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달라진 이유는 주체인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겠지.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뒤바껴서 혼란스러웠고

그것들을 정리하고 인정하는데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동안 겪어보지 못한 성장통도 앓아야했다.


예를 들면, 너무나 당연했던

먹고, 자고, 싸는 문제들이 우선순위에 밀려나서

못먹거나 급하게 먹고, 잠도 쪼개서 자야했으며, 수치스럽지만 화장실도 자유롭게 갈 수 없었다. (지금도 혼자있응 땐 문을 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안고 들어간다..)

외출할 때 당연했던 기본적인 화장, 검정색 머리가 어울리지 않아 20살 이후로 꾸준히 해왔던 염색, 쉬는 날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어나가던 책, 주말엔 꼭 챙겨보던 예능, 한달에 너댓편은 봤던 영화 등등.

이런 사소한 것들을 한꺼번에 잃고나니 (빼앗기고나니) 나라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고

한편으론 [엄마로써 당연히 포기할 것들 조차 욕심부리는 모습을 자책하는] 마음이 매 순간 부딪혔다.


그렇게 “나는 모성애가 없는 엄마인가봐” 라는 말을 입에 달고사는 철없고 어설픈 엄마가 되어갔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또 많은 것을 얻기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이해심, 측은지심 같은 마음이다.

말 못하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생활하다가 복직을 하니

말 잘하는 어른들도 말로 표현 못하고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들이 읽혔고, 그 마음을 읽어주고 이해해주는 것 만으로도 난 좋은사람, 따뜻한 선배가 될 수 있었다.

내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유가 있겠지 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한번 더 들여다보면 이해 불가인 경우가 드물더라.


둘째를 낳고, 둘을 키우며 요즘 가장 많이 드는 감정이 [미안함] 과 [짠함/불쌍함] 이다.


고작 4살이 많은 것을 양보 당하는 것이 짠하고

첫째는 당연했던 손길이 둘째에겐 닿지 못하는 것이 짠하고

그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무리하는 우리 부부가 짠하다.


어제 저녁의 일이다.

둘째가 오전 낮잠을 30분만 자고 그 이후로 낮잠을 쭉 안 잔 상태로 저녁 8시가 되었다. (원래는 낮잠 1시간 이상씩 2-3번 자고 밤잠을 8-9시에 잔다)

아이 둘을 한꺼번에 욕조에 넣어두고 조금 놀게 한 후 둘째 먼저 건져서 닦이고 옷을 입히고 수유로 달랬다.

그리고 첫째를 마저 씻기고 나오자

[아기처럼 본인을 안고 화장실에서 나와달라는 첫째] 와 [잠이와서 거실에서 스스로 큰방 침대위로 기어와서 본인 자리에서 날 찾으며 (재워달라고) 울고 있던 둘째] 가 함께 나를 쳐다본다.


나와 눈이 마주친 둘째의 울음은 거세지지만

일단 피부가 약하고 감기걸린 첫째를 오래 세워둘 순 없기에 후다닥 안고 거실로 나갔다.

첫째의 몸을 닦이고 로션과 오일을 겹겹이 바르면서 신경은 둘째의 울음소리에만 가있어서

바로 앞에서 엄마의 관심을 끌어보려 애쓰는 첫째에게도 집중하지 못한 채, 그 누구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간절하게 울며 엄마를 찾는 둘째에게, 제때 바로 가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요즘들어 아기처럼 기어다니고 아기의자에 앉겠다고 하고 잠들고 나서도 내 옆에 유독 찰싹 붙어있는 첫째가 짠하고

그런 아이들 케어하느라 15주년도 까맣게 잊은

내 걱정에 신경 곤두세우는 신랑도 안됐고

이젠 나를 챙기는 일은 욕심처럼 느껴지는 나도 불쌍하다.

여기에 우리 부부가 앉기만 하면 무릎을 차지하러 뛰어오는 둘째 고양이 베토도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에만 우다다하고 그때 깨있는 어른 곁으로 다가와 쓰다듬어달라고 애교부리는 모로도 미안하고 안쓰럽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하다.

바쁜 엄마(왜 바쁘지.. 이유를 모를 일ㅋㅋ)만 보며 울다가도 형아가 “땡큐 왜~ 엄마~ 땡큐 안아줘 땡큐 울고 난리났어~” 하며 눈만 맞춰줘도 금새 까르르 넘어가는 둘째는 우울한 엄마와 단둘이서만 있었던 첫째보다 모든 것이 빠르고(옹알이, 신체발달,애교?ㅋㅋ) 훨씬 잘, 많이 웃는다.

아기처럼 굴다가도 동생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말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과자나 음료수도 엄마 몰래 동생이랑 나눠먹으려 하고, 유튜브 보다가도 땡큐가 형아랑 놀고싶대~ 하면 못이긴 척 끄고 나와 땡큐 형아랑 놀고싶었어? 하는 첫째를 보면 둘 낳길 잘했다 싶다. (물론 그 이후에 레슬링 하는 걸 보면 절대 자주 쓸 수 없는 방법이다)

모두가 잠든 뒤 새벽까지 공부하다 지친 몸으로 잠들면서도 첫째가 우리에게 과분하고, 둘째가 너무 사랑스럽다는 신랑과

먹고, 자고, 싸는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음에도 나보단 아이들이 짠하고 사랑스러운 나.

우리 부부가 곁을 허락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딴딴이나 땡큐 곁을 맴도는 베토,

이제 좀 마음을 열아가고 있는 듯 한 모로까지


우리 가족은 행복하다.




신랑부터 고양이들, 그리고 두 아들까지

모두 나에겐 과분한 존재들이다.

이들 덕분에 많이 자라고, 성장하고있다.


15주년을 기억도 못하는 나에게

“넌 원래 기념일 잘 기억 못하잖아”

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준 신랑에게

15년만에 처음, 운동하라고 농구화를 선물했다.

사실, 널 위한걸 사라며 나에게 건낸 상품권을

그렇게 사용한거라 내가 사줬다고 하기도 민망한데

너무 행복해하는 신랑을 보면서 고맙고, 미안하고, 불쌍했다 ㅋㅋㅋㅋㅋㅋ



신랑이 준비해줬던 15주년 케이크

당연히 케이크의 주인은 첫째가 되었고 ㅋㅋ

(부모가 되면서 케이크도 빼앗겼다.. 케이크만 보면 다 지껀줄 알아 진짴ㅋㅋㅋㅋㅋ)

우리는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 + 촛불 후~ 를

다섯번 한 후에야 케이크를 맛볼 수 있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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