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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Jan 13. 2022

12년 차 간호사 vs 5년 차 엄마

갑작스럽지만 나도 몰랐던 변화

어릴 적, 수수깡과 셀로판지로 엉성하게 만든 안경으로 바라본 세상은 온통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이었다.

어른이 되고 생각하니 너무 당연한데 그때는 그게 어쩜 그렇게 재밌었는지.



주말에 장 보러 차를 타고 나갔다.

낮잠을 이겨내려 큰 아들이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를 반쯤 흘려듣지만 중간중간 영혼 없는 리액션도 해주는 나, 그런 우리를 보며 연신 웃고 있는 신랑, 교회 아니면 외출을 안 했더니 바깥 구경하기 바쁜 둘째.

햇볕도 좋고, 내 기분도 좋고, 모든 게 완벽하다.

그때, 우리 차 뒤에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차들이 눈치껏 비켜주고 있지만 막히는 곳이라 구급차가 빠져나가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린 순간부터 우리 첫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구급차가 요리조리 피해 주는 차들 사이로 오다가 우리 차 옆을 지나가자 카시트에서 방방 뛸 정도로 좋아한다.

우리 차를 지나쳐가는 구급차에게 연신 “안녕~ “ 하고 인사를 건네는 아들이 귀엽다.


대학병원이 근처에 있어서 앰뷸런스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직업 탓에 그 소리가 지긋지긋하다.

아니, 분명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다 생각했는데,

첫째가 자동차에 흥미를 보이고, 구급차를 보며 흥분하고 좋아하기 시작하자 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바뀐 것을 이제야 눈치챘다.


결혼 전 친정집도 큰 도로 근처라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수술실에서 일했던 나는 (물론 응급실 선생님들만큼은 아니겠지만ㅋ) 그 소리를 들으면 당직 콜이 올 것 같고, 다음날 수술이 엄청 늘어있을 것 같아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아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니까


‘아이고, 안에 타신 분이 괜찮아야 할 텐데.. 저 병원 사람들 고생하겠네’

라고 생각하거나 그냥 본체만체 넘어갔을 구급차도, 초보운전일 땐 너무 부담스러워서 도로를 구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큰 중장비 차들, 잘못한 것이 없어도 괜히 쫄리기만했던 경찰차, 관심이 없었는지 이렇게 자주 다니는 줄 몰랐던 소방차까지


만나면 마치 이벤트처럼 반가워지고

아들과 함께 서서 구경하게 되고

아들이 곁에 없어도 눈이 한번 더 간다.




임신했을 때는 저출산이란 말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임산부들이 많이 보이고,

아이를 낳고 달고 다니다 보니 어딜 가도 또래 아이들 부모님이 눈에 보인다.

요즘은 확실히 성비가 안 맞나 싶을 정도로 아들만 키우는 집들이 눈에 띈다.


정말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는구나.

복직하고 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간호사] 안경을 벗고 [5살 아들의 엄마]라는 안경을 쓰고 살아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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