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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Aug 31. 2022

알게 모르게 사랑받는 나.

나도 사랑받고, 나눠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난 물 온도에 예민하다.

평생 모르고 살다가 신랑이랑 살면서 알게 됐다.

너무 쨍하니 차가운 물은 별로.

그렇다고 한없이 미지근한 물도 싫어.

뜨거움에 가깝게 따뜻하거나, 차가움에 가깝게 미지근한 온도를 좋아한다.


물을 많이 마셔서 신랑이 장난처럼 [물 도둑년]이라고 놀리곤 하는데, 일할 때나 육아할 땐 내 목마름이 항상 우선순위에 밀린다.


어느 날부터 아침에 일어나 부엌에 가보면 정수기에 물이 담겨있다.

어제 내려두고 안 마신 물이겠거니 했는데 마셔보면 내가 딱 좋아하는 온도.

냉수를 받아서 적당히 식힌? 물이다.

신랑이 매일 아침 물도 한 모금 못 마시고 출근하는 날 위해 조용히 하는 배려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 물이 퇴근 후에도 그대로 있으면 내가 아침에 물 한 모금 마실 여유 없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문득 [오늘 내 아내가 바람을 피웁니다]였나? 이선균이랑 송지효가 나왔던 드라마가 생각이 난다.

가방에 늘 넣고 다니던 책, 구두 굽을 고칠 여유도 없었다는 워킹맘의 고백.

변명 한번 구질구질하게 한다 생각했었는데, 그 고백이 생각나는 걸 보니 다시 본다면 그때완 다른 느낌일 것 같다.

그 드라마는 언제 볼 수 있으려나.. ㅎ


비가 내리는 아침.

발이 쑥 커져 신어보지도 못하고 작아진 장화로 아이와 씨름하다가 기운 빼고 출근하려는데

단골 카페 사장 언니가 부른다.

도시락 쪼깨 싸 봤다며 웃으며 건네주시는 음료.


이래서 더불어 살아야 하나보다 싶다.

아이들이 아프단 핑계로 며칠을 회색 세상에 살았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맑게 갠다.

잘 살아야겠다. 나도 이렇게 누군가의 세상을 맑게 해 줄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싶다. 생각하며 출근.



몰래 이 글 읽고 있을 박서방아!

항상 고마워. 오빠한테만 표현에 인색한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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