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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Sep 16. 2022

엄마 파업한 날

진작 쉬고 약 먹고 빨리 나을껄 후회

몸이 부서질 것 같다.

몸살 기운에 머리도 아프고, 발작처럼 나오는 기침과 콧물, 가래로 바깥에서는 너무 곤란하고 눈치 보인다


둘째 병원 다니느라 나는 못 가고 있다가 결국 근무 중간에 내과 진료를 봤다.

기침이 오래가서 가슴 X-ray를 찍고 기관지염이라 항생제를 받아왔다.


퇴근길 꽉 찬 지하철 안.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느라 구역감까지 밀려온다.

처방약을 받느라 퇴근이 조금 늦어서 서둘러야 하는데 몸이 말을 잘 듣지 않고 느릿느릿 움직인다.


그 와중에 오늘 하원하고 꼭 놀이터에서 자전거 타자고 했던 큰애와의 약속이 떠올라 신랑과 함께 자전거를 들고 하원하는 아이를 기다렸다.

신이 난 아이의 모습을 보니 내가 조금 힘들어도 잘했다 싶었다.


첫째는 자전거를 타고, 둘째는 하원 시켜 놀이터 주변을 걷는데 바람이 꽤 차고 많이 불어서 걱정된 신랑이 데리고 올라가라고 했다.

더 놀고 싶은 아이를 최대한 울리지 않고 데려가고 싶기도 했고, 컨디션이 떨어져 느릿한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금 지켜보더니 아이를 채가듯 데리고 올라가버린다.

섭섭하고 우는 아이 모습에 짜증이 밀려오지만, 싸울 힘이 없어 이해하기로 했다.


큰애를 설득해 놀이터 세 바퀴만 더 돌고 올라왔다.

갑자기 치킨을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당장 치킨을 시키고, 밥을 좋아하는 둘째는 아빠가 해준 반찬에 밥을 먹였더니 한 그릇 뚝딱이다.

숨소리도 많이 좋아지고, 나에게 치대는 것도 한결 줄어든 것 보니 본인 컨디션도 괜찮아지고 있나 보다.

나만 나으면 되나 보다.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지만 나으려고 부지런히 먹었다.

약도 먹고, 신랑에게 양해를 구하고 8시 반에 누웠다.

아이들 씻기고 재우는 건 내 담당인데 어지럽고 구역질이 나서 아무것도 못하겠다.

같이 자려고 들어온 둘째가 장난치며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서 잠이 들었다.

잠결에 씻어서 머리카락이 촉촉한 첫째가 “엄마 괜찮아?” 했던 것 같고, “엄마 아프니까 건들지 마!” 하는 신랑의 목소리도 들은 것 같다.

둘째도 그때까지 돌아다니고 있었고.


다시 잠들고 몸이 너무 가벼워 눈을 떴는데 두 시.


보통 양팔에 아이들 하나씩 팔베개를 하거나 둘 중 하나는 배 위에 누워있고, 다리 사이엔 둘째 고양이가 누워있어서 항상 가위 체험? 하듯이 눌려서 못 움직이고 잤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큰애도 곁에 있지만 떨어져 자고

둘째는 아예 아빠 침대에 데굴데굴 굴어가더니 그대로 계속 자고 있다.

아이들이 잠들면 아기가 되는 나의 고양이만 옆에 와서 치대는 가벼운 밤.

첫째가 기다리고 고대하던 [기차 타고 이모집 가는 날]이라서 짐을 좀 쌀까 고민하는데 둘째가 깼다.

물 마시러 나가서 치즈 두 장 먹고 다시 누워서 흡족하게 잠든 나의 아기.

플래시가 터진 덕분에(?) 잘 찍힌 사진 ㅋㅋ 아이폰 14 사고싶다 ㅠㅠ

당연한 듯 내 품을 경쟁하듯 파고드는 두 생명체.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귀엽다.


많이 나아진 숨소리가 감사하고, 아이가 먹고 마시는 순간들이 소중하다.


네뷸라이저 해주고 짐 리스트나 적어두고 다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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