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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Dec 10. 2021

아이에게 등 돌리지 않기

나의 상처조차 치유된 육아 이야기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았다.


특수부대 출신인 아버지는 본인의 사후에 대한 걱정이 많아

어린 나에게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

(내가 죽으면 니가 가장이야. 동생 잘 지켜줘)

막연히 두려웠던 죽음과 부재는

키우던 반려견의 죽음으로 실체가 되어 다가왔다.


부모님의 잦은 불화는

내가 잘못하면 가정이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작은 가슴속에 심어줬고


그렇게 난 표면적으론 착하고 어른스러운 아이,

떼쓰지 않고 동생도 잘 챙기는 속 깊은 아이

소위 애어른으로 자랐다.


아이는 아이답게 키우고 싶었다.


나의 유년시절이 그러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절실하게.


가끔 떼쓰고 화내는 첫째를 다 받아주는 날 보며

신랑은 신기해하고 염려한다.

나 또한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는 방임이 아닐까

이러다 내가 참지 못해 일관성 없는 육아에 아이가 혼돈이 오는 건 아닐까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니까 감정표현에 솔직한 거고

우리 아이는 소리 내서 울지도 못하는 어른이 아닌

힘들면 힘들다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서

본인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어릴 적, 놀러 가고 싶다고 함께 있어달라고

때를 쓴 적이, 아니 얘기한 적이 없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장사하며 한 달에 이틀 쉬는 부모님은 쉬는 일요일엔 녹초가 돼시곤 했다.


엄마 아빠가 쉬는 일요일엔

다 같이 낮잠 자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착한 아이.

엄마 쪽으로 누워서 붙을라치면 엄마는 내게 돌아누우시곤 했다.


이제와서는 이해가 된다.

나도 가끔은 고작 4살인 아이다 다 큰애로 보이는데

초등학생이었던 애어른이 하는 애기 짓까지 받아줄 체력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엄마 안아줘.

그 한마디 못하고 돌아선 등에라도 붙어 자던 꼬마.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가 자기 전엔 팔베개도 하고

꼭 안아주고 불러달란 노래 다 불러주고

사랑해 알러뷰를 백번 이백 번 해준다.


안자는 아이에게 화가 났을 때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등을 돌리고 누웠는데

엄마 사랑해 안아줘 하며 내 등에 붙어서 흐느끼는 아이를 보는데

내 아이가 아닌 어릴 적 내가 보여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아이는 나를 치료하며 나를 키우고 있다.


아직 밤수하는 둘째 때문에

가끔 새벽에 깬 아이가 내 등에 붙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아이가 다시 잠들기 전에

하던 수유를 끊고 (미안해 둘째야ㅠ) 첫째를 꼭 안아준다.

엄마를 추억하면 등이 아닌 가슴이 기억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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