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조차 치유된 육아 이야기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았다.
특수부대 출신인 아버지는 본인의 사후에 대한 걱정이 많아
어린 나에게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
(내가 죽으면 니가 가장이야. 동생 잘 지켜줘)
막연히 두려웠던 죽음과 부재는
키우던 반려견의 죽음으로 실체가 되어 다가왔다.
부모님의 잦은 불화는
내가 잘못하면 가정이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작은 가슴속에 심어줬고
그렇게 난 표면적으론 착하고 어른스러운 아이,
떼쓰지 않고 동생도 잘 챙기는 속 깊은 아이
소위 애어른으로 자랐다.
아이는 아이답게 키우고 싶었다.
나의 유년시절이 그러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절실하게.
가끔 떼쓰고 화내는 첫째를 다 받아주는 날 보며
신랑은 신기해하고 염려한다.
나 또한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는 방임이 아닐까
이러다 내가 참지 못해 일관성 없는 육아에 아이가 혼돈이 오는 건 아닐까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니까 감정표현에 솔직한 거고
우리 아이는 소리 내서 울지도 못하는 어른이 아닌
힘들면 힘들다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서
본인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어릴 적, 놀러 가고 싶다고 함께 있어달라고
때를 쓴 적이, 아니 얘기한 적이 없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장사하며 한 달에 이틀 쉬는 부모님은 쉬는 일요일엔 녹초가 돼시곤 했다.
엄마 아빠가 쉬는 일요일엔
다 같이 낮잠 자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착한 아이.
엄마 쪽으로 누워서 붙을라치면 엄마는 내게 돌아누우시곤 했다.
이제와서는 이해가 된다.
나도 가끔은 고작 4살인 아이다 다 큰애로 보이는데
초등학생이었던 애어른이 하는 애기 짓까지 받아줄 체력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엄마 안아줘.
그 한마디 못하고 돌아선 등에라도 붙어 자던 꼬마.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가 자기 전엔 팔베개도 하고
꼭 안아주고 불러달란 노래 다 불러주고
사랑해 알러뷰를 백번 이백 번 해준다.
안자는 아이에게 화가 났을 때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등을 돌리고 누웠는데
엄마 사랑해 안아줘 하며 내 등에 붙어서 흐느끼는 아이를 보는데
내 아이가 아닌 어릴 적 내가 보여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아이는 나를 치료하며 나를 키우고 있다.
아직 밤수하는 둘째 때문에
가끔 새벽에 깬 아이가 내 등에 붙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아이가 다시 잠들기 전에
하던 수유를 끊고 (미안해 둘째야ㅠ) 첫째를 꼭 안아준다.
엄마를 추억하면 등이 아닌 가슴이 기억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