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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Oct 06. 2022

새벽, 응급실의 부모들

당연했던 일상이 최고의 감사거리임을 다시 깨닫는 시간

둘째에게 수족구가 왔다.

월요일부터 보이던 하나 둘 보이던 수포가 갑자기 확- 번지면서 자다가 새벽에 수포 때문에 깨서 울고 힘들어해서 응급실로 달려갔다.


울다 지친 아이를 소중히 감싸 안고 도착한 응급실.

당연히 중증도와 위급함이 떨어지는데도 환자가 적어서 바로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엉덩이 주사를 맞고 기다리는 동안 아기는 앉으면 바로 깨버리는 선잠이 겨우 들어서 서서 아이를 어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주변에 세 개의 침대가 있었는데

술에 취해 자해하고 온 젊은 여자와 그녀의 아빠,

공포에 휩싸여 내내 침대가 덜덜 떨리도록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던 내 또래 여자와 그녀의 엄마,

그리고 일하다 갈비뼈가 5개나 나갔다는 60대 후반의 아주머니 혼자.


첫 번째 침대의 여자는 연신 아빠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그 분노 표출은 욕설과 물리적 표현까지 포함되어서 눈과 귀가 가장 먼저 쏠렸다.

아빠는 춥다면 겉옷을 벗어 덮어주며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고 달래고 계셨다.

의사와의 면담을 위해 아빠가 자리를 뜨자, 흥분해있던 여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하게 면담에 응했다.

오빠의 폭력과 그걸 방치한 아빠, 오빠만 감싸던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드라마 요약하듯 논리적으로 쏟아내던 여자는 아빠를 보자마자 다시 흥분한 취객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10월의 새벽, 이제는 꽤 찬 온도에도 아빠는 어쩔 줄을 모르며 딸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어떻게든 받아주려 애를 쓰고 계셨다.


그 옆 침대에 있던 여자는 모든 자극을 힘들어하는 듯 덜덜 떨고 얼굴을 베개에 묻고 있었는데, 그녀의 엄마는 끊임없이 [괜찮아 엄마가 옆에 있을게] 하며 다 큰 딸을 쓰다듬고, 끌어안고, 토닥이고 있었다.

18개월의 아들을 어르는 나보다 더 애정이 묻어나는 손길이었다.

두 시간 정도를 덜덜 떨던 여자는 곧 안정이 되었고 엄마가 신겨주는 신발을 신고, 엄마 손을 잡고 우리보다 먼저 퇴원하였다.


세 번째 침대의 아주머니는 일 하다가 다친 게 많이 속상하다고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다쳐서 일을 못 하는 것도 속상한데, 병원비도 내가 내야한다하니 화가 난다고 하셨다.

거동이 불편하실 것 같아 보호자를 부르자는 간호사의 제안에 [보호자는 아무도 없어요] 하며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버리셨다.

아픈 자식들에겐 보호자가 죄인처럼 곁에 있지만

아픈 부모에겐 아무도 없었다.


둘째는 수족구 확진과 동시에 물 한 모금 마시고 아프다고 우는 컨디션이 되었다..ㅠ

하지만 연차가 없는 워킹맘인 나는

결국 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기로 했다.

포항에서 부산까지 아이를 데리러 오셔서 오전 시간을 함께 보내고 아이가 기분 좋을 때 데리고 가셨다.

나름 타이밍 노려서 갔는데, 눈치 빠른 내 쪼꼬미는 엘리베이터 타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나도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 아이의 울음이 멀어질 때까지 그 앞을 지켰다.

큰아이가 수족구를 안 해서 늦게나마 격리가 필요했고, 나도 계속 쉴 수가 없었기에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아픈 아이에게 세상의 90% 이상인 엄마를 빼앗았다는 생각에 계속 눈물이 난다.

아이는 또 적응하고 괜찮을 수도 있지만,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

고작 삼일이지만 나의 쪼꼬미가 너무 보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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