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안되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래서 더 드라마 같은
나는 01년생 21학번이다.
원래 20학번이어야 하는데 해외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1년 늦게 입학했다.
1년 늦게 대학에 입학해야 된다는 사실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정작 걸림돌은 대학 간판이었다. 내 1지망 대학은 단연코 연세대학교였다.
아버지께서 연세대 출신이셔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당시 서울대 갈 수 있는 성적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고려대가 끌리지는 않았어서 연세대를 희망했었다.
서류는 통과했다. 문제는 면접이었다. 코로나여서 비대면 면접을 봤다.
기억하기론 3분도 안되는 영상을 집에서 녹화해 주어진 질문에 답하고 제출하는 형식이었다.
마음을 하도 졸여 막 불가마에서 나온 사람처럼 온몸이 뜨거웠던 발표 당일,
예비번호를 받았지만 가망이 없는 숫자임을 자각한 순간
뜨거웠던 몸은 그새 차디차게 식어버렸고, 동공은 갈 곳을 잃었다. 불합격이었다.
그렇게 나는 최종적으로, 아니 다행히도 경희대 합격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아쉬움과 씁쓸함이 물 밀듯이 몰려왔다. 코로나가 원망스러웠다.
3분짜리 녹화 영상이 과연 변별력이 있냐며 당시 면접 형식에 대해 따지고 싶던 적도 많았다.
어쩌겠는가.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모래시계가 중력의 힘을 거슬러 시간을 리셋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노트북에 띄워진 경희대 합격 창을 지긋이 바라보며 남몰래 결심을 했다.
그 당시 왜 이 문장이 맨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연세대를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만회하겠다는 의지? 타고난 승부욕?
4년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제목에서처럼 실제 수석 졸업을 했다.
아, 정확히는 (예비)수석 졸업생이다.
졸업 유예를 했기 때문이다.
졸업 유예를 한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는 2월 졸업 예정이었고, 졸업만을 바라본 채 매일 같이 인턴십 지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타이밍 좋게 최근 학교에서 제도 하나를 도입했다.
이름하여 "학사학위유예제도" (쉽게 말해 졸업 유예, 근데 이제 등록금은 안 내는 꿀제도)
당시 수석 졸업이 확정된 상태이긴 했으나,
여러 군데 지원했던 인턴십들도 바로바로 합격이 되지 않고
무엇보다 졸업하면 세상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방생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괜히 조바심이 났고 덜컥 겁도 났다.
그런데 그 제도 하나가 내 마음을 살렸다.
내 인생이 아닌 내 마음을 살렸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심리적인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 안정감이 내 인생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언젠가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감사하게도 최근 인턴십에 합격을 했고 잘 다니고 있다.
비교적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과거의 나와,
아직 직장인은 아니지만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과거에 비해 직간접적인 제약을 받고 있는 현재의 나를
이따금씩 비교해보면 감회가 새롭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내 자신을 F1이라고 묘사하고 싶다.
F1처럼 밀도와 속도감을 모두 갖춘 채 치열한 대학생활을 보냈고,
결국 결승점에서 1등(수석졸업)을 하긴 했지만,
영화 F1의 소니 헤이즈가 온갖 역경을 다 겪고 이겨냈던 것처럼
나 또한 그 과정 속 수많은 역경들을 마주하며 극복해나갔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내 대학생활의 마지막 페이지를 "수석 졸업"으로 종결시킬 뻔했는데,
"졸업 유예"라는 에필로그가 추가됨으로써 인턴십, 그리고 내 자신을 좀 더 탐구할 기회를 얻음에 감사하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걸 체감하기까지,
세상에 정해진 답이 없기에 불안하지만 동시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완벽주의란 늪에서 한 발짝씩 떼며 서서히 빠져나오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나는 내 묘비명에 무얼 남기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른다.
확실한 건 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게 정확히 어떤 방식과 모습을 통해서인지는 아직은 잘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꾸준히 내 생각과 경험을 잘 소화시키다 보면
언젠가 아하! 모먼트가 올 테고, 그땐 나는 나라는 사람을
보다 유연하게 정의내릴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