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센치해지고, 여름엔 예민해지고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쿨하게 인정해야 하는 이유

by 수빛

이제 입춘 시작인데도 오늘은 참으로 추웠다.

요 며칠 잠시나마 따뜻함이라는 '안일함'을 선사했던 날씨가 너무 얄미웠을 만큼,

매서운 칼날 같은 바람은 내가 촘촘히 두른 목도리와 껴입은 패딩 사이사이로

굳이굳이 비집고 들어와 내 살갗을 한없이 쓰라리게 했다.




졸업 유예하고 인턴 생활하고 있는데 출퇴근길이 참 고되다.

지금까지 '고되다'라는 말을 머릿속에 떠올린 적이 손에 꼽는데,

대학생일 땐 몰랐던, 알게 모르게 바뀌어버린 일상이 적응이 안돼서 그런가.

물론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의 '고달픔'에 감히 비견할 순 없겠지만.

하지만 나는 이 고됨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합리화해 보기로 한다.

어른이 되는 필수 관문이라고. 고됨은 어쩔 수 없다고.



그리고 세상은 혼란스럽다. 온 세상이 AI, AI를 외치고 있다.

이번 글에 올라갈 이미지조차 AI로 만들고 있으니 나는 내 무의식이

언젠가 AI로 모두 들어차게 되는 건 아닐까 더욱 경계하게 된다.

그래서 나도 그렇고 다들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AI에 찌들지 않은

"사람 냄새" 나는 인간만의 무언가를 은연 중에 찾고 있는 것만 같다.



사계절성이 짙던 우리나라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양극화된 계절처럼 내 감정도 양극화를 겪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겨울에는 한없이 센치해졌고,

여름에는 어김없이 예민해졌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몸이 항시 긴장모드였다가 귀가를 해야만

긴장이 풀려 몸의 근육들이 비로소 제 위치를 찾아가는 탓에

감정의 업다운이 평소보다 잦아져 센치해지기 때문이고,



여름에는 불쾌지수의 상승과 빈번한 실내외 온도 차이에

상시 노출되어있는 탓에 예민함이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가 가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내 감정도 요동쳤고,

이리저리 여기저기 휘둘렸던 과거의 나를 연상케 했다.

과거의 나는 마치 "탱탱볼의 운명"과도 같았다.



마치 땅바닥에 막 내팽개쳐진 탱탱볼이

다시 튕겨져 곧바로 내 코를 들이박을지,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질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원하는대로만,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인생 속,

이리저리 치이고 튕겨지고 난 끝에 내린 결론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었다.

감정이 아닌 이성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도록 두면 비로소 안정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이성적으로 굴수록 이상하게 내 실행력은 시들어만 갔다.

현재와 미래의 간극은 커져만 갔다. 하루가 일관되게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인간인데 AI가 흉내내지 못하는 "사람 냄새"가 내게서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또 다시 내가 내린 결론은, 너무 감정을 억누르면 탈이 난다는 것.

과거는 과거에 묻어두기로 했다. 질투심이든, 열등감이든, 부러움이든,

분노이든, 설레임이든, 불편함이든, 창피함이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기로.

종잡을 수 없는 탱탱볼이었던 과거의 나도 그저 귀엽게 봐주기로.



어떤 상황을 마주했든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었다고.

그 일들이 있었기에, 그 사람(들)을 만났기에,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그래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내 감정은 옳고 그름의 잣대로 평가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왜이리 늦게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시험지처럼 내 감정에 점수가 매겨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내 본연의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하되 잘못된 방향으로

삐뚤어지지 않게끔만 안정적인 중간 지점을 찾아나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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