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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보이지 않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결정된다.

by 방승호

2. 삶은 보이지 않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결정된다.


다시 앞에 이야기를 이어가면 잘 걷다가 중간에 집으로 가고 싶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다 보니 매사에 이런 선택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극이 있고 나의 반응이 있다.

그동안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 자극에 일을 처리하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생각을 보기 시작한 이후 하루에 여러 번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차이가 궁금했다. 계속 생각을 알아차리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런 시간이 있었다.


교육청에서 근무할 때이다.

가평 숙소에서 운전을 하며 출근을 하는데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갑자기 일과 나 사이에 즉 자극과 반응 사이에 간격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당시 나는 비슷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자주 불편한 감정이 있었다. 그 사람과 회의를 마치고 나면 그때 올라오는 감정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하루 종일 불편할 때가 많았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선택한 일들이 부끄럽게도 내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선택하고 있음이 확연하게 다가왔다.


또한 그 간격 사이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마음을 보게 되었다.


두려움은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의 반응은 항상 방어적이었다.

두려움은 존재하는 것처럼 있었고, 나는 두려움이 나라고 믿고 있었다. 동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자존심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흔들었다. 이런 행동은 당연하게 여기고 반복하고 살았음을 생생하게 영상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보여 주었다. 그동안의 불편함과 괴로움의 원인을 온전히 알게 되는 날이었다.

이날 이후 나는 점점 더 깊은 자각이 여진처럼 이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남의 법복을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던 스님 이야기도 깨달음이라는 진리보다는 깨달음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음이었다. 탐이다. 내가 물려받아야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받았다는 욕심의 자극에 깨달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반응으로 옷에 집착을 한 것이다. 올라오는 내용 보이는 사물 즉 상에 집착을 한 것이다. 옷에 머무르고 그 옷을 마치 깨달음이라고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자극과 반응이라는 주제는 나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욕심을 내면서도 항상 정당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욕심으로 반복하고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질과 다르게 욕심으로 채워지는 생각과 그 생각으로 인해 움직이는 행동을 당연히 했다. 그에 따른 만족은 내 허한 마음을 채워 준 것뿐이었다. 이렇듯 욕심은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욕심을 갖는 원인 속에는 내가 있었다. 아상이었다. 내가 옳다. 나다 등 하는 생각들이다. 상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상(想) 밑에 마음심이 있다.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욕심과 가장 친한 친구는 집착이다.

욕심에 따라 올라오는 감정에 집착이 만났을 때 우리는 해결되지 못한 알 수 없고 해결 불가능한 불행 속으로 들어간다. 욕심은 지금 이 순간 생각에 머물게 하는 원인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내가 그 일에 대한 원래의 뜻을 버리고 내가 생각하는 내 이로움을 위해 한다면 결국 그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이것과 저것이라는 뜬금없는 분별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분별심은 욕심으로 이어진다. 이것, 저것을 분별하는 마음에 머무르면서 복잡한 일이 일어난다. 기준선이 즉 규정지어진 관념이 생기기 때문이다. 흔히 고정관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고정관념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자신도 불편하고 그 끝은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 욕심을 내는 마음은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욕심을 내는 마음은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 것이라고 우기는 상태가 되어 마음의 갈등을 만들어 낸다. 마음의 갈등은 눈코입귀 등을 혼란스럽게 한다. 보는 것마다 불편하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절제하지 못한 식사로 몸이 불편해지고, 남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의 소리에 민감해지며 오감이 오작동을 시작해 또 다른 생각 즉 분별심을 갖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욕심을 내는 마음을 항복시키는 것이 싶지 않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알지만 막상 내 이익과 관련이 되면 그것을 놓지 못한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이 전부가 된다. 생각해 보니 평생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결말은 항상 잘 모르고 반복된 괴로운 일상을 살아왔다.

출근 시간에 운전을 하며 문득 든 짧은 시간은 그동안 욕심 속에서 어떠한 장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마치 영화처럼 보여주었다. 여기서 영화라는 것에서 나는 또 다른 의미로 연결시켜 주었다. 영화는 영화임을 아는 순간 그저 영화일 뿐이다. 다 지나간 일인 것이다.


그때부터 욕심이 올라오는 생각을 보면 이렇게 반응을 하기로 했다.

나는 ‘그냥 내가 욕심이 있구나’ 하고 인정하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걷기를 싫어하는구나,’ ‘나는 이런 사람을 싫어하는구나.’ ‘나는 이런 음식을 안 좋아하는구나’ 하고 나를 알아 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나 스스로 불편함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나간 일인데 수용하고 아니고도 없지만 그렇게 하니 신기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 올라오는 생각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저 그 생각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나는 올라오는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저항 없이, 분별없이.


바다와 파도는 분리될 수 없다.

바닷가에 밀려왔다 가는 작은 파도 거품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 다시 바다인 것이다. 한 몸이다. 그동안 나는 바다와 물결을 분별하고 물결만 보고 살았다. 물결이 거칠면 거칠다고 두려워 움츠리고, 조용하면 평화라고 생각하고 안주하고 물결과 바다를 분리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것이 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즉 올라오는 생각들을 물결이라 생각하고 흘러가게 놓아두면 다시 바다가 되는 것이다. 바다는 물결이 항상 있다. 그저 작용할 뿐이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로 생각이라는 작용뿐이었다. 그것을 그저 인정하면 수용하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다음 든 생각이 자극과 반응 사이에 선택이 있었다.

선택에는 중립적인 것이 없었다. 나는 결론을 생각하고 과정을 생략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생각과 저 생각을 내 생각으로 단정 지어 마치 그 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자 해결하는데 점점 오리무중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해결 과정에서 오해하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마음은 요동을 친다.


다시 말하지만 욕심의 근원은 나라는 내 상에 있다.

금강경 사구계중에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 ‘상이 상인 줄 알면 부처’라는 말이다. 나를 인식하고 보는 작업을 꾸준히 하면 또 하나의 소리를 분리해서 들을 수 있다. 상을 보는 것이다. 이때부터 변화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관찰하면서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니 하루 종일 생각에 빠져 산다고 보면 맞다. 그 생각 중에는 사람이 들어 있어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또 눈, 코, 입, 귀 등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것이 생각으로 연결되어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매 순간 알아차려야 한다.


이렇게 반복을 하다 보면 걷고 싶은 마음과 걷기 싫은 마음의 간극, 욕심을 내는 마음 집착을 하는 마음의 간극을 보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그 사이에서 순리대로 가는 자극과 반응의 인연의 법칙도 알게 된다. 분리감이 없어지는 것이다. 어느 한 마음을 따라가지 않으면 된다. 이 순간을 알아차리면 자극과 반응사이 공간이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 공간에서 욕심을 새로운 방식으로 놓아 버리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반복해서 알아차리다 보면 어느 날부터 일상이 재미있어지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힘들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때가 많아진다. 갈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괴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매일 올라오는 생각이 그림자임을 그저 알기 때문이다. 또한 문뜩문뜩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생각과 감정이 내가 아님을 알게 된다.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된다. 요즘은 이보다 세상에 더 중요한 일이 없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나 자신에 올라오는 생각을 관찰하며 자극과 반응사이에서 행복을 체험하고 있다.


질문

1. 내가 보는 모든 것은 다 의미가 있다. 다섯 번 말해 본다. 또한 반대로 이야기를 해 본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은 다 의미가 없다. 두 가지 차이를 생각해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써 본다.

2. 살면서 자신의 삶에 부정적 자극을 준 세 사람을 쓴다? 그중 한 사람에 대해서 자세히 써 본다. 부정적 자극이 없었다고 가정하고,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서 다섯 가지를 상상해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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