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장

서툰 자기 돌봄의 시작

by 이상

정보의 함정과 필독서


약이라는 조용한 동반자는 위태롭지만 분명한 안정감을 주었다. 이전보다 조금은 맑아진 정신 상태. 하지만 안정감이 곧 방향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콘서타가 마법이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자, 오히려 마음 한편에서는 새로운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약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내 삶을 바꾸는 것은 나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진단은 내 오랜 고통에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그 'ADHD'라는 낯선 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나의 지난 시간들이 그토록 험난했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이 길을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지는 못했다.


약이 만능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제대로 알아야 한다', '완벽한 정보를 갖춰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마치 항해를 앞두고 모든 해도와 기상 정보를 완벽하게 파악해야만 안심할 수 있다는 듯,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정보 탐색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알기만 하면, 이번에는 다를 거야.’ 과거의 좌절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절박함은 나를 정보의 바다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하루 종일 유튜브를 켜놓고 정신과 의사들의 설명, 당사자들의 브이로그, ADHD에 좋다는 영양제 정보, 생산성 툴과 습관 설계, 집중에 도움 된다는 루틴 등을 끝도 없이 검색했다. 마치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전부 다 알고 나서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나는 정보를 쓸어 담듯 흡수했다. 그건 마치 놓쳐버린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한 조급함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오랜 혼란과 불안을 '정답'으로 잠재우고 싶다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건 실패를 피하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회피였던 것 같다. 사실 변화는 각자의 여정인데, 나는 마치 정답이 정해진 인생처럼 완벽한 지도가 다 그려지기 전까지는 어떤 발걸음도 떼지 않겠다는 듯 행동을 미뤘다. 지금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어렴풋이만 알더라도, 나침반 하나만 믿고 걸어보는 게 더 많은 걸 알려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 불완전한 걸음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진짜 변화의 시작이었음을, 그땐 몰랐다.


그러던 중, 성인 ADHD 관련 포스팅을 읽다가 한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내가 뭔가를 몰라서 망하는 게 아니라, 몰라도 될 걸 굳이 알아보느라 망한다." 이 문장은 정곡을 찔렀다. '우리 실패의 본질은 쓸데없는 곳에 쓰는 시간 낭비로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서'라는 문장도 함께였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것도 ADHD의 한 양상이라는 걸. 나는 원래부터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계획하고 준비하고 검색하는 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삶'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알아감’ 자체가 또 다른 함정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ADHD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오히려 고쳐야 할 점, 개선해야 할 점이 너무나 많은 ‘문제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며 깊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아는 것이 병이 되는 순간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지식 탐닉이 '해야 할 일을 미루기 위한 정교한 변명'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불편한 감정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현실의 문제(예: 일, 공부, 관계)를 직면하는 대신, ADHD에 대한 정보를 파고드는 행위에 몰두함으로써 그 불편함을 회피하려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 즉 '주지화(Intellectualization)'. ADHD에 대해 공부한다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정작 내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들은 뒤로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ADHD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면, 그때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거야"라는 착각 속에서. 그건 결국 '완벽하게 준비되기 전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고, 실패를 피하려는 방어선이기도 했다.


그 무렵, 성인 ADHD 커뮤니티에서 '필독서'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던 다섯 권의 책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이하 파랑이)를 가장 먼저 읽었다. 객관적인 정보와 구조화된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놀란 건, 내가 인터넷에서 수집했던 많은 정보들이 실제와는 다르게 과장되거나, 맥락 없이 조각난 상태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ADHD를 조절하며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삶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조금 덜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우리는 좀 더 반복적으로, 체계적으로, 꾸준히 노력을 기울여야 할 뿐이었다. 물론 그것은 분명 더 많은 에너지와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고, 때로는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관련된 정보가 이렇게까지 풍부하다는 것은, 곧 나에게도 선택지와 전략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이 다섯 권의 책을 나침반 삼아, 무분별한 정보 수집을 멈추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책에서 제안하는 전략들 중 지금 당장 내가 시도해볼 수 있는 가장 작고 현실적인 형태를 고민했다. 예를 들어, '계획표를 쓰라'는 조언을 보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대신, 이미 사용하던 일정 앱에 그날 해야 할 아주 단순한 할 일 두세 가지만 적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일단 시도해본다'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그렇게 아주 작게라도 시작해본 하루의 끝에서야 나는 깨달았다. 정보는 길을 밝혀주는 등대일 뿐, 진짜 길은 그 빛을 따라 불안과 의심 속에서도 한 발짝을 내딛는 나의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과거 어려움에 대한 분석을 멈추고, 현재의 서툰 걸음마에 집중할 때 비로소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무렵부터, 나는 약의 효과와 부작용, 그날의 컨디션과 시도했던 작은 행동들을 간단히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처음에는 의사에게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록은 나의 감각과 경험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나의 노력을 가시화하며, 스스로의 변화를 천천히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단순히 ‘오늘 기분이 어땠는지’를 넘어, 수면, 약 부작용 등을 기록하면서, 나에게 맞는 약물 용량과 생활 패턴을 찾아가는 여정은 단순히 ‘효과’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한계(과거 경험의 영향 포함)를 인정하고 현재의 나에게 맞는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즉 자기 이해를 통한 회복의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큰 각성 없이도 일상을 무리 없이 지속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바로 과거의 빈틈을 메우려는 욕심 대신, 현재의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가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나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내면의 소음 길들이기


객관적인 정보를 통해 ADHD를 이해하고, 약물과 컨디션을 기록하며 나에게 맞는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분명 중요한 진전이었다. 머리로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다. 바로 내 안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감정의 파도와 생각의 소음이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존재했다. 아무리 좋은 정보를 알고 계획을 세워도, 불쑥 찾아오는 불안감, 익숙한 미루기 습관, 그리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자기 비난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의 발목을 잡았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 부족'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반복된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내면에 깊이 새겨놓은 상처이자, 감정적인 패턴이었다. 이 내면의 혼돈을 다스리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전략도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뿐만 아니라, 그 행동을 방해하는 내면의 저항과 소음을 직접 다루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이때, 필독서 중 <당신이 ADHD라고 해서, ADHD가 당신은 아니다>(이하 지백이 1권)와 <ADHD를 위한 마음챙김 처방>(이하 하양이)이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특히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미루는 습관'과 그로 인해 반복되던 자기 비난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 '마음챙김(Mindfulness)'이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것은 단순히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을 넘어,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반응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이었다.


마음챙김은 현재 이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판단 없이 알아차리는 연습이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눈을 감고 앉아 호흡에 집중하려 했을 때, 오히려 주변의 작은 소음—자동차 소리, 시계 초침 소리, 심지어 내 숨소리까지—이 몇 배는 더 크게 들려왔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온몸의 세포가 움직이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듯했고, 가슴은 답답했으며, 다리를 떨거나 꼼지락거리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들었다. 마치 나의 '마음 그릇'이 이미 과거의 후회, 미래의 불안, 현재의 불만 같은 온갖 감정과 생각들로 넘치도록 가득 차 있어서, 더 이상 어떤 것도 담아낼 여유가 없는 상태 같았다. 가만히 있으려 할수록 오히려 그 가득 찬 내용물들이 요동치며 더 큰 소음을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시간이었다.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은 통제 불가능한 폭주 기관차처럼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마음챙김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내 안의 혼돈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 넘치는 마음 그릇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배우는 치열한 훈련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책 <ADHD를 위한 마음챙김 처방>에서 배운 가장 기본적인 실천은 '호흡'에 주의를 두는 것이었다. 불편한 생각이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마다, 의식적으로 지금 이 순간의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려 했다. 마음챙김 책에서는 호흡이 과거나 미래로 달아나려는 마음을 현재로 데려오는 가장 쉽고 강력한 닻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의심이 앞섰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앉아서 숨만 쉬는 게 대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지?' 머릿속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다른 사람들의 평온한 경험담은 나와는 너무 다른 세계 이야기처럼 들렸다. 과거의 실패 경험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회의감을 부추겼다.


하지만 '속는 셈 치고 딱 5분만 해보자'고 마음먹고 꾸준히 시도하던 어느 날, 아주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여전히 생각은 떠올랐지만, 그 생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나 휩쓸리지 않고 마치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바라볼 수 있는 아주 짧은 순간이 찾아왔다. 주변의 소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전처럼 나를 날카롭게 찌르지 않고 조금은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아주 잠깐의 고요가 찾아왔다. 이것이 바로 마음 그릇을 잠시나마 비워내는 경험일까? 넘치던 감정들이 잠시 잦아들고, 그릇 바닥에 아주 작은 여백이 생기는 느낌. 그것은 평온함 이상의 경험, 마치 혼탁했던 물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음챙김이란 결국, 끊임없이 요동치는 마음의 파도 속에서 이런 아주 작은 고요의 틈, 즉 마음 그릇의 여백을 발견하고, 그 공간을 조금씩 넓혀가는 연습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챙김의 효과는 성적표처럼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고, 내가 느끼는 감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도,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듣고 온전히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맞게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헷갈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완벽한 자세나 깊은 평온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 없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알아차리려는 '의도' 그 자체이며, 과거나 미래로 달아나려는 마음을 현재로 되돌리려는 '시도' 그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매일 조금씩 마음 그릇을 닦고 비워내는 습관과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챙김을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매일 가볍게 반복하는 연습'으로 대하기로 했다. 수십 년간 나를 지배해 온 사고방식과 감정 패턴(무력감, 자기 비난 등)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대를 내려놓았다.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2분을 할 때도, 10분을 넘길 때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오늘도 내 마음 그릇을 돌보려 시도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기록들이 쌓이면서, ‘나는 이런 연습을 꾸준히 해볼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과거의 실패 경험과는 다른 새로운 자기 인식이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이 꾸준한 시도는 마치 잔잔한 물결처럼 서서히 나의 태도를, 과거의 무게에 묶여 있던 나를 현재로 이끄는 힘을 키워주었다. 이것이 바로 '텅 빈 상태'가 아니라, '다시 채울 준비가 된 상태', '새로운 감정과 경험을 맞이할 준비가 된 상태'로 나를 회복시키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또한, 마음챙김은 내가 삶의 주도권을 조금씩 회복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무엇인가에 집중하다가 갑자기 유튜브를 보고 싶거나, 불쑥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충동이 들 때, 예전의 나는 그 충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과거의 회피 패턴을 반복했었다. 하지만 마음챙김 연습을 통해, 내 마음 그릇 안에서 어떤 감정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잠깐 멈출 수 있는 아주 작은 '틈', '여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여백 덕분에 나는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대신, 숨을 고르거나, '아, 지금 내 그릇에 불안이 차오르는구나' 하고 감정을 이름 붙여주거나, 잠시 다른 건강한 행동(물 마시기, 스트레칭)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과거의 자동적인 반응에서 벗어나 현재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즉 내 마음 그릇의 내용물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비록 매번 성공하지는 못더라도, 내 안에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이 ADHD라고 해서, ADHD가 당신은 아니다> 책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과거의 실패를 곱씹으며 스스로를 비난하는 부정적인 자기 대화 대신, 긍정적이고 지지적인 자기 대화를 건네는 연습도 병행했다. 완벽하게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이는 과거에 완벽하지 못해서 실패하고 좌절했다고 믿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대신, '일단 5분만이라도 시작해보자'는 아주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 시작 자체에 집중했다. 때로는 그 5분조차 버겁게 느껴졌지만, 그런 날조차 "괜찮아, 오늘은 마음 그릇이 유난히 무거웠네. 내일 다시 해보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려 애썼다. 과거처럼 실패 앞에서 무너지거나 자책하는 대신,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마음챙김이 나에게 가르쳐준 중요한 태도 변화였다.


놀랍게도, 그 '일단 시작'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마음 그릇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니, 시작이라는 행동을 담을 공간도 생긴 것 같았다.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5분만 시작하면, 관성처럼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물론 매번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미루고 자책하는 날이 더 많았고, 마음챙김 연습은 지루하고 효과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작'이라는 아주 작은 허들을 넘는 경험, 즉 과거의 실패 예언을 깨는 경험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경험들은 '나도 해보니까 아주 조금은 되네?' 하는, 작지만 소중한 성공의 기억이 되었고, 좌절감으로 얼어붙었던 내 마음에 '나도 ADHD를 조절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의 희미한 불씨를 지폈다.


마음챙김은 거창한 깨달음이나 완벽한 평온을 약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 순간 부딪히는 어려움—과거의 상처에서 비롯된 감정의 파도, 현재의 과제 앞에서 느끼는 불안과 무력감—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고, 내 마음 그릇의 상태를 점검하며, 다시 한번 시도해볼 용기를 건네는 실질적인 도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나를 지탱해주고, 과거의 기억과 공존하며 현재를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소란스러운 내면 아래 진짜 나와 다시 연결되는 길, 점진적인 회복과 성장을 위한, 마음 그릇을 꾸준히 돌보는 연습이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조금씩, 가볍고 서툴지만 꾸준한 마음챙김의 걸음으로 나의 내면을,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나의 마음을 다시 정돈해가고 있었다.


시스템


마음챙김 연습은 요동치는 내면의 파도를 조금이나마 잠재우고, '일단 시작'이라는 작은 행동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는 되었지만, 여전히 현실의 과제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많았다.


마치 엔진은 예열되었지만, 자동차를 움직일 핸들과 내비게이션이 없는 상태와 같았다. 마음챙김이 '시작'할 용기를 주었다면, 이제는 그 시작한 행동을 '지속'하고 '관리'하며 '완료'까지 이끌어갈 구체적인 방법론, 즉 실행력을 뒷받침해줄 실질적인 구조와 시스템이 필요했다.


진단 이후 한동안은 깊은 무기력과 우울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만 떠올리고, 막상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를 마치면, 그날은 마치 존재하지 않은 하루처럼 느껴졌다. 그런 날들이 며칠, 몇 주씩 반복되면 나는 점점 내 존재의 윤곽을 잃어가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무계획의 하루는 곧 무중력의 하루였고, 나 자신을 붙잡아줄 손잡이가 없다는 느낌은 매일을 허공 속에 흘려보내는 불안으로 되돌아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언가 해야 하는데...'라는 막연한 압박감만 느껴질 뿐, 하루를 이끌어갈 분명한 '구심점'이 없었다. 방향 감각을 잃은 배처럼 나는 시간의 바다 위를 표류했고, 그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 쉽고 즉각적인 자극, 즉 카톡, 인스타그램, 유튜브의 세계로 도피했다.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시작'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나는 어김없이 무너졌다.


계획 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나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회피 행동)' 사이의 끊임없는 내적 갈등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시작하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시작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멀고 험난하게 느껴졌다. 이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잡아주고 실행을 도와줄 구체적인 '틀'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인 ADHD의 대처기술 안내서>(이하 초록이)가 체적인 길들을 제시해주었다. 계획을 세우는 전략과 지속하기 위한 전략, 시간 관리 기법 등. 나는 이 설계도를 손에 들고, 어지러운 내 삶에 서툴지만 나만의 질서를 세워보려는 여정을 시작했다. 마치 난생처음 레고 상자를 열어본 아이처럼, 설명서는 복잡하고 부품은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했지만,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성인 ADHD의 대처기술 안내서 일부 요약


그래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 할 일 관리 시스템 구축이었다. 머릿속에 안개처럼 떠다니는 모든 생각, 할 일, 약속, 아이디어를 할 일 관리 앱의 'Inbox'라는 그물로 일단 건져 올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이 모든 것을 완벽히 잡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사소한 심부름부터 거창한 인생 목표까지 뒤섞인 Inbox는 곧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고, 오히려 더 큰 혼란과 압박감을 안겨주었다.


나는 우선 Inbox에 쌓인 항목들을 크게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속하는 일, 프로젝트에는 속하지 않지만 단독으로 처리해야 할 일, 그리고 언제 할지 알 수 없는 일. 이렇게 단순화된 분류만으로도 지금 내가 어떤 일에 집중해야 할지가 명확해졌다. 시간 날 때마다 앱을 열어 틈틈이 분류를 이어갔고, 처음에는 그 흐름이 괜찮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Inbox는 다시 정체되기 시작했다. 계속 쌓이기만 하고, 정작 분류는 미루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전환점을 맞았다.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 차라리 삭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처음엔 망설였다. "혹시 중요한 걸 잊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일은 이상하게도, 나중에 다시 떠올랐고, 결국 다시 Inbox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몇 번의 경험이 쌓이고 나자, 나는 깨달았다.


완벽하게 모든 걸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보다, 불필요한 일을 미련 없이 삭제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이후로 나는 Inbox를 '완벽히 정리해야 할 목록'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실제로 중요한 것을 걸러내는 통로로 여기게 되었다. 과거엔 모든 걸 기억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에 Inbox마저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이제는 필요 없는 것을 과감히 비우며 오히려 머릿속이 더 가벼워졌다. 이 단순한 행동 하나가, 실행력 이전에 ‘나에게 필요한 일만을 품는 선택의 힘’을 키우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머릿속이 조금 정리되자, 나는 그것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 배치하는 작업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이불 개기’, ‘양치하기’, ‘밥 챙겨 먹기’처럼 아주 사소한 일부터 적어 내려갔다. 그것들은 그 시기의 나에게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구체적인 문장이었다. 계획을 세우고 그걸 실천했다는 사실은, “오늘 나는 여기 있었다”고 삶 위에 작은 발자국 하나를 새기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나는 계획표를 '반드시 지켜야 할 엄격한 규칙'으로 여겼고, 계획한 일을 모두 완료하지 않으면 실패한 하루라고 생각하며 '나는 역시 계획적인 인간이 될 수 없어'라는 자기 비난만 쌓았다. 반복된 좌절 끝에, 나는 계획표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계획표는 일상의 흐름을 재단하는 도구가 아니라, 일상의 흐름 중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내가 어디까지 진행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주는 '도구'이자, 경로에 벗어났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중간지점'가 되어야 했다. 게임에서 세이브포인트가 있기에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음 단계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은가.


이 관점의 변화는 '성공'이 아닌 '완료'에 초점을 맞추게 해주었다. 계획대로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더라도, 일단 '시작하고 마무리했다'는 그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책 1챕터 읽기'를 계획했지만 3페이지만 읽었더라도, '오늘은 3페이지 완료'라고 기록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미완의 완료'가 성에 차지 않았지만, 점차 완벽주의의 압박에서 벗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작조차 못 하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계획표는 더 이상 나를 평가하는 성적표가 아니라, 나의 여정을 기록하고 다음 걸음을 내딛도록 돕는 도구, 무너진 하루 속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오늘의 나를 내일의 나에게 연결하는 작은 다리가 되어갔다. 계획표에 적은 한 줄의 할 일을 실천한다는 것은 결국, “나는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가장 작고 단단한 저항이었다.


나는 TickTick이라는 앱을 활용해 실천했다. 하루 중 떠오른 할 일들은 일단 'Inbox'에 모두 적어두고, 저녁에는 그것들을 정리하며 라벨을 붙이고 마감일을 설정했다. 만약 마감일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미정' 라벨을 붙이고,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마감일과 라벨이 정해진 항목들은 캘린더에 타임블록으로 배치했다.


계획을 세우는 방식도 달라졌다. 하루 시작 전에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수시로 계획을 업데이트하고 조정하는 유연한 방식을 택했다. 블록 형태로 할 일을 배치해두면, 시간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시간 감각이 흐릿한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어느 영역에 시간을 얼마나 쓰는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자체가 나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지도가 되어주었다.

타임블럭 예시 사진

특히 각 블록에 라벨 색깔을 다르게 표시하니, 내가 어떤 영역(업무, 개인 시간, 건강 등)에 시간을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실감을 처음으로 느꼈다. 막연히 '바쁘다', '시간 없다'고 느꼈던 날들도, 타임블록킹으로 들여다보면 회피 행동이나 딴짓으로 흘려보낸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계획표가 아무리 훌륭해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면 무용지물이었다. '시작'이라는 가장 높은 문턱을 넘기 위해 나는 두 가지 주요 전략이 도움이 됐다. 환경 조절과 10분 원칙.


환경 조절은 말 그대로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는 것이었다. 집은 편안했지만 동시에 침대 등 너무 많은 유혹과 방해 요소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중요한 작업은 가급적 집이 아닌 스터디카페나 조용한 카페에서 하려고 노력했다.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10분 원칙은 시작하기 어려운 과제 앞에서 특히 유용했다. '딱 10분만 하자!'는 마음으로 타이머를 켜고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은 심리적인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다. 놀랍게도, 일단 10분을 집중하고 나면 관성이 붙어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기 전에는 망설여지지만, 일단 들어가면 물놀이를 즐기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이 모든 시스템 구축 과정이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계획표를 빼곡히 채우고도 하루 종일 유튜브만 보다 죄책감에 시달린 날도 부지기수였고, Inbox에 쌓인 할 일이 너무 많아 부담스러워 앱 자체를 열어보지 않은 날도 있었다. 어느 날은 너무 정교한 분류와 마감일 설정에 집착하다가 계획 세우는 것 자체에 진이 빠져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기도 했다.


내가 시스템을 만든 이유는 삶에 대한 통제감을 되찾기 위함이었는데, 어느 순간 시스템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통제하려 드는 듯한 역설적인 느낌을 받았다. 완벽한 시스템에 대한 강박은 또 다른 형태의 자기 비난과 불안을 낳았다.


이 모순을 경험하고 나서야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나를 '보조'하기 위한 도구이지, 내가 스스로를 평가하거나 자책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계획을 못 지킨 날이 있었다고 해서 내가 실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그것을 완벽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현재 에너지와 상태에 맞춰 유연하게 시스템을 조정하고 활용하는 지혜였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좌절하기보다, 그 경험을 기록하고 '다음번에는 어떻게 다르게 시도해볼까' 고민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진짜 과정이었다.


이 서툰 시스템 구축의 여정은 단순히 효율을 높이는 기술 연마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너진 하루 속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혼란한 시간 속에서 나의 의도를 확인하며, 오늘의 나를 내일의 나에게 연결하는 회복의 구조물을 쌓는 일이었다. Inbox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계획표에 나의 의지를 새기며,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려 애쓰고, 작은 행동의 문턱을 넘어서는 그 모든 시도가 결국 "나는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가장 작고 단단한 저항이었다.


하루하루 내가 살아낸 기록, 성공과 실패의 모든 흔적들은 이제, 한때 내가 놓쳤다고 믿었던 정체성과 가능성을 다시 이어붙이는 소중한 조각들이 되었다. 그 기록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하지 못했던 나'가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가며 무엇을 시도하고 있는 나'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이 서툰 시스템 만들기를 계속해서 시도하는 이유였고, 앞으로도 계속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갈 이유이기도 했다.


몸과 마음의 선순환


그렇게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고 다듬어가는 과정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TickTick으로 머릿속 부담을 덜고, 계획표로 하루의 방향을 잡고, 타임블록킹으로 시간을 관리하며, 작은 실행 전략들로 행동의 문턱을 넘으려 애썼다. 이 ‘구조’들은 혼돈 속에서 나를 붙잡아주는 뼈대 같았다. 하지만 그 뼈대 위에 살을 붙이고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아무리 견고한 시스템을 구축하려 해도, 어떤 날은 도저히 그 시스템을 작동시킬 ‘에너지’ 자체가 바닥난 느낌이었다.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친 날이면 아무리 잘 짜인 계획표도 빛바랜 종잇조각에 불과했고, 몸이 마치 납덩이처럼 무겁고 깊은 무기력감이 온몸을 휘감을 때는 10분 원칙은커녕 침대라는 안전한 동굴에서 빠져나오는 것조차 거대한 도전이었다. 사소한 자극에도 불쑥 짜증이 치밀어 올라 애써 다스렸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결국 나는 변하지 않는 건가’ 하는 절망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깨달았다. ADHD와의 동행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고 기술(시스템)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시스템이라는 구조물이 튼튼하게 서 있으려면, 그 구조물을 받치는 땅, 즉 나의 기본적인 몸과 마음의 상태가 단단하고 안정적이어야 했다. 예측 불가능한 에너지 레벨,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무기력감, 요동치는 감정의 파도. 이 근본적인 문제들을 외면하고서는 애써 만든 시스템도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았다. 몸과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어느 한쪽이 비명을 지르면 다른 한쪽도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과거의 그림자는 단순히 나의 습관이나 생각 패턴에만 드리워진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돌보지 못하고 방치했던 내 몸 구석구석에도 그 흔적이 깊게 배어 있었다. 그 고인 상처와 피로를 흘려보내고 몸과 마음의 선순환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시스템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고 진정한 의미의 회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어쩌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필수적인 과제였다.


<우울할 땐 뇌 과학>(이하 노랑이)이 나에게 마치 등대처럼 새로운 관점과 구체적인 실천 방향을 비춰주었다. 이 책은 운동, 수면, 햇빛, 감사 표현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생활 습관들이 단순히 '기분 전환'이나 '건강 관리' 차원을 넘어, 뇌 기능 자체를 최적화하고 감정 조절 능력과 실행력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명확하게 설명해주었다. 마치 내 몸과 마음의 숨겨진 작동 원리, 과거에 내가 왜 그토록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는지에 대한 비밀 설명서를 드디어 손에 쥔 기분이었다. 더 이상 '의지력 부족'이라는 막연한 자책에 시달릴 것이 아니라, 뇌가 최적의 상태로 기능할 수 있도록, 즉 나의 모든 노력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환경과 습관을 의식적으로 조율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습관 개선이 아니라, 과거에 돌보지 못했던 나 자신을 현재 시점에서 적극적으로 보듬고 존중하며, 미래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었다.


가장 먼저 꾸준히 시도한 것은 운동이었다. 몸은 마치 과거의 무기력함과 좌절감이 그대로 굳어버린 무거운 감옥처럼 느껴졌다. 운동은 그 감옥을 탈출하려는 고통스러운 몸부림과 같았다. 그럼에도 책에서 강조하는 운동의 효과를 믿고, 매일 30분이라도 자전거를 타거나 강변을 걷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처음 며칠은 익숙하지 않은 몸을 억지로 움직이는 것이 고역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근육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이 고생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역시 난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하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땀방울이 마치 지난날의 자책감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는 기분 속에서도 페달을 밟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땀을 흘리고 난 뒤의 상쾌함, 몸이 아주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운동을 하고 나면 그날 하루를 뭔가 의미 있게 보낸 것 같은, 성취감이 밀려왔다. 저녁 시간대에 약효가 떨어져 흐트러지기 쉬웠던 충동 조절이나 집중력 유지에도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을 체감했다.


운동은 단순히 체력을 기르는 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던 과거의 감정 찌꺼기들을 땀과 함께 배출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무기력하거나 불안이 유독 심했던 날, 오히려 운동 후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을 했다. 자전거를 타며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면 마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먼지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운동은 나에게 더 이상 '해야 할 일' 목록의 하나가 아니라, 일상의 리듬을 되찾고, 흔들리는 내 감정의 중심을 잡아주며, 과거의 나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게 해주는 중요한 회복의 기제가 되어갔다.


수면은 여전히 가장 어려운 숙제이자, 어쩌면 나의 가장 깊은 불안과 연결된 문제였다. 규칙적으로 7~8시간을 자는 것이 뇌 기능 회복과 감정 조절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았지만, 실천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침대에 누우면, 낮 동안 애써 외면하거나 억눌렀던 과거의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들이 마치 밤의 유령처럼 깨어나 나를 괴롭혔다.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일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어떡하지?', '나는 왜 이 모양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후회와 걱정, 자책은 잠을 밀어내는 완벽한 불면의 주문이었다. 자기 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습관(불안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익숙한 방식)은 끊어내기 어려웠고, '자야 한다'는 압박감은 오히려 '오늘 하루도 제대로 못 살았는데 잠이라도 제대로 자야 한다'는 강박과 죄책감으로 변질되어 불안을 증폭시키고 잠을 더욱 멀리 쫓아버렸다. 결국 새벽녘에 녹초가 되어 잠들고, 다음 날 아침 무겁게 떠지지 않는 눈꺼풀과 함께 또 다른 피로와 좌절의 하루를 시작하는 악순환. 밤새도록 나 자신과 벌인, 승자 없는 전투의 결과였다.


의사 선생님은 수면 부족이 약 효과마저 떨어뜨린다며 수면 위생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셨다. 휴대폰을 다른 방에 두고 자거나, 잠들기 전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등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내 안의 요동치는 생각들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수면 문제는 단순히 의지나 습관을 넘어, 내 안의 깊은 불안, 즉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상처와 연결된 더 복잡한 문제임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바로 유튜브에서 찾은 명상 음악이나 잔잔한 연주곡을 배경으로 호흡 명상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눈을 감고 숨을 쉬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 후회스러운 과거의 기억들, 막연한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뒤죽박죽 떠올라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이전 같았으면 그 생각들에 빠져들어 곱씹거나 괴로워했을 테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다른 태도를 취하려 노력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붙잡거나 밀어내려 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연습. 마치 영화관 스크린에 비치는 장면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관객처럼, 판단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여전히 생각의 홍수에 휩쓸려 버둥거렸지만, 꾸준히 연습하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생각들을 붙잡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을 할수록, 그것들이 점차 힘을 잃고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시끄럽던 머릿속이 서서히 고요해졌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억지로 잠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란을 가라앉히며 자연스럽게 잠으로 이어지는 경험이었다. 이 연습은 즉각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하면 할수록 조금 더 깊고 편안한 잠, 즉 숙면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울할 땐 뇌 과학>은 긍정적 사고와 감사하는 마음 또한 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의식적으로 하루 중 감사했던 일을 찾아 기록하거나(감사 일기),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연습을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지독하게 어색하고 억지스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루가 엉망진창으로 끝난 날에는 ‘감사’라는 단어 자체가 나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좌절감만 가득한 하루 끝에 도대체 무엇에 감사해야 한단 말인가?’ 세상에 대한 분노와 내 처지에 대한 억울함이 먼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숙제를 하듯 억지로 한 줄이라도 써보려 애썼다. ‘오늘 점심은 맛있었네’, ‘창밖으로 잠시 파란 하늘을 봤네’ 같은 아주 사소하고 당연해 보이는 것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문장을 적고 읽는 순간,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음이 아주 미세하게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실패나 현재의 결핍에만 고정되어 있던 나의 시선이 아주 잠시나마, 지금 내 곁에 있는 아주 작은 것들로 옮겨가는 경험. 반복하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어쩌면 과거의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에 감사하게 되고, 부정적인 상황(과거의 상처를 건드리는 상황) 속에서도 아주 작은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현재의 나를 조금씩 긍정하기 위한, 서툴지만 중요한 연습이었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이 기본적인 생활 습관들은 ADHD 증상을 마법처럼 없애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가 ADHD와 함께, 그리고 과거의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튼튼한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마치 집을 짓기 전에 땅을 단단히 다지는 작업처럼, 이 꾸준한 노력들은 나의 전반적인 에너지 레벨을 높이고 감정의 파도를 조금 더 완만하게 만들어주었으며, 마음챙김이나 시스템 구축 같은 다른 대처 전략들을 시도하고 유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 즉 회복탄력성을 길러주었다. 몸과 마음의 선순환을 만드는 것, 그것은 과거에 돌보지 못했던 나를 현재에서 보듬고 존중하며, 미래의 건강한 성장을 준비하는, 지속 가능한 자기 돌봄의 핵심임을 온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서툰 걸음마의 증거


3장의 여정은 돌이켜보면,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길을 찾는 서툰 걸음마와 같았다. 약물, 기록, 책, 시스템, 마음챙김, 운동… 이 모든 시도들은 단순히 ADHD 증상에 대처하기 위한 기술 연마가 아니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크고 의미 있는 변화는 어쩌면,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왔던 과거의 경험들—투병으로 얼룩진 시간, 수없이 반복된 실패와 좌절, 그로 인해 깊이 뿌리내린 만성적인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그 변화의 증거는 나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의 눈에 먼저 비쳤다. 명절에 만난 누나가 놀라워했던 내 모습—집중해서 듣고, 조리 있게 말하며, 감정 기복이 줄고, 스스로를 챙기는 모습—은 단순히 행동의 변화가 아니라, 과거의 부정적인 자기 인식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고 있는 내 모습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기뻐하신 나의 활기와 표현력 증가는, 스스로를 '문제아'나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던 과거의 나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모습이었다. 가족들이 보내준 긍정적인 시선은,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며, 비틀거리는 나의 걸음마에 '너는 변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는 확신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나 스스로도 아주 작은, 그러나 분명한 변화들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계획의 일부라도 실천했을 때, 운동을 하고 난 뒤, 혹은 넘어진 나를 과거처럼 가혹하게 비난하는 대신 다독여주었을 때 느껴지는 뿌듯함.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기 효능감은, 수십 년간 '나는 안 될 거야', '나는 부족해'라는 믿음에 갇혀 살았던 나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소중한 감정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넘어, 과거의 실패 경험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자기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경험이었다. 실패 속에서도 이런 작은 성공들을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이 서툰 시행착오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물론, 이 희미하게 보이는 길 위에서도 여전히 짙은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나는 정말 ADHD일까?’, ‘약을 끊으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은 계속되었고, 미루는 습관, 충동성, 감정 조절의 어려움은 여전히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나의 부족함을 확인하는 사고방식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변화는 결코 매끄러운 우상향 곡선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어려움들을 마주하는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전처럼 이것들을 '역시 나는 글렀어'라는 자기 파괴적인 결론으로 직결시키기보다, '아, 이것이 내가 가진 어려움의 일부이구나. 그럼 어떻게 다르게 접근해볼까?' 하고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에는 여러 책들을 읽고 그 내용을 삶에 적용하려 애쓴 과정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두 가지 중요한 마음가짐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나는, 나의 부족함과 과거의 실패 기록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현재에 다시 시도할 힘을 내는 것, 일종의 '용기'였다. 다른 하나는,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경험들—우울감, 낮은 자존감, 수많은 좌절—마저도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나의 역사'의 일부로 끌어안고, 현재의 불완전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태도, 즉 현실에 기반한 '긍정' 혹은 '수용'이었다.


이 두 가지 마음가짐을 연습하면서, 과거의 경험들은 더 이상 나를 영원히 속박하는 '실패의 낙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그것들은 지금의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복잡하고 때로는 아픈 '배경'이 되었고, 심지어 그 속에서 미래를 위한 '성장의 자양분'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ADHD라는 진단 역시 나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굴레가 아니라, 나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나에게 맞는 도움과 전략을 찾아 나설 수 있게 하는 유용한 '열쇠'로 여기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서툴고 부족하며, 앞으로도 수없이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넘어져도 괜찮다는 것을. 과거의 실패가 현재의 나를 완전히 정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아도, 나만의 속도로, 나의 모든 경험을 짊어진 채 걸어가면 된다는 것을. 필독서의 내용을 내 삶에 녹여내는 과정은 나에게 완벽한 해결책이 아닌, 나 자신과 나의 과거를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선물했다. 나는 이 서툰 걸음마의 증거들과 새롭게 얻은 관점을 소중히 간직하며,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또 다른 의문을 외면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이토록 필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려는 노력이, 단순히 ADHD를 극복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 어쩌면 이것은 변화를 향한 건강한 노력이라기보다, 내 안의 더 깊은 불안이나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어떤 필사적인 '방어'는 아닐까? 마치 양파 껍질처럼, 한 꺼풀의 문제를 벗겨내자 또 다른, 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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