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서툰 자기 돌봄의 시작

by 이상

'왜 나인가'를 넘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진단 직후 며칠 동안 나는 무기력한 감정의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마치 유리창 너머 세상을 바라보듯 모든 것이 흐릿했고, 나 자신의 감정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안도와 분노, 체념과 슬픔이 뒤엉켜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았고, 그 무감각은 오히려 내 마음 깊숙한 곳의 피로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매던 숲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줄 알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는 아주 조금 알게 되었지만,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 막막함조차, 예전의 그 무력한 물음과는 달랐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자책 대신, 그 상실들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려는 마음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 가능성을 붙잡기엔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 황무지 위에서도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분명 ‘왜 나만 이런가’라는 질문에 매달려 주저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내 고통에 이름이 생겼다는 사실,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 나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작지만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스스로를 책망할 수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대로는 정말 끝이다’라는 절박한 생존 본능에 가까웠다. 만약 지금 멈춘다면, 나는 정말 이 낯선 황무지에서 길을 잃은 채 끝없이 떠돌게 될 것만 같았다.


‘왜 나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충분했다. 그 질문은 더 이상 나를 앞으로 이끄는 힘이 되지 못했다. 대신, 나는 새로운 질문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질문은 결심이라기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몸부림에 가까웠다. 진단이 끝이 아닌 시작이어야 한다는 믿음은 아직 희미했고, 과거의 실패들은 여전히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나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불쑥 떠올랐다가, 이내 곧 수많은 좌절의 기억들이 그 희망을 다시 짓눌렀다. '이번에도 결국 변하진 못할 거야.' 익숙한 절망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고, 나는 그 목소리와 분투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변화에 대한 기대와 실패에 대한 공포가 내 안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나는 약 한 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길 바랐다. 단번에 세상이 바뀌기를, 내가 바뀌기를. 하지만 약은 그런 마법을 주지 않았다. 콘서타는 분명 내게 약간의 각성을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나였고,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약까지 먹고 있는데, 이래도 안 나아지면 정말 끝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나를 조용히 짓눌렀다. 그 무게는, 가슴을 눌러 숨 쉬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거기서 멈춰 있을 수만은 없었다. 완벽한 계획도, 명확한 확신도 없었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만 했다. 아주 작고 미약한 움직임이라도 괜찮았다. 그것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과, 또다시 실패할까 두려운 마음을 동시에 품은 채.


그렇게 내가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일은, 일단 약을 성실하게 복용하는 것이었다. 약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몰랐지만, 지금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나를 더 깊이 이해해보자고. 단순히 진단명 뒤에 숨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ADHD라는 렌즈를 통해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자고. 나는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어떤 상황이 나를 무너뜨렸고 어떤 패턴이 반복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나에게도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를 솔직하게 마주하기로 했다. 책을 읽고, 정보를 찾고, 그리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거짓 없이 기록해보기로 했다. 그 기록이야말로, 진정한 이해를 향한 나만의 여정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콘서타 사용 설명서


약을 받기 전날 밤, 나는 작은 알약 하나가 내 삶을 마법처럼 바꿔줄지도 모른다는 간절한 기대로 잠 못 이루었다. 수없이 반복되던 실패와 좌절의 고리, 그 끝에 드디어 출구가 열린 것만 같았다. 남들처럼 집중하고, 계획하고, 성취하는 삶.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다른 방향의 삶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꿈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약을 복용한 첫날, 내가 마주한 것은 달라진 삶이 아닌 낯선 신체 감각과 당혹감이었다. 입안은 바짝 마르고, 가슴은 조이는 듯 답답했다. 집중력이 향상되었다기보다는, 마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날처럼 몸만 과하게 깨어 있는 느낌. 정신이 또렷해진 듯한 각성은 있었지만, 기대했던 집중력이나 실행력 같은 본질적인 변화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게 전부인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기대는 순식간에 허탈함과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정서적인 낙차가 컸다. 설렘으로 벅찼던 마음은 이내 '역시 나는 약으로도 안 되는 건가' 하는 익숙한 무력감으로 가라앉았다. 며칠이 지나도 달라지는 건 없었고, 불안은 점점 커져 '내가 너무 낮은 용량을 처방받은 건 아닐까?', '다른 사람들처럼 36mg, 54mg은 되어야 효과를 보는 거 아닐까?' 하는 조급함으로 변했다. 커뮤니티에서 약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후기들을 찾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비교를 시작했고, 아직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내 모습에 초조함은 깊어졌다.


결국, 진료실에서 이 조급한 마음을 의사 선생님께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콘서타는 변화의 시작점이지, 완성은 아니에요. 약효가 발현되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시도하고 연습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약이 작동하는 동안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연습해보세요.” 그 말은 단순했지만, 약이 나를 구해줄 거라 믿고 싶었던 내겐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었다. 왜 또 나에게만, 이토록 지긋지긋하게 실패해 온 나에게만, 또다시 '노력'이라는 단어가 던져지는 걸까? 실패와 좌절로 뒤엉킨 삶 속에서 '노력'은 언제나 나를 더 지치게 만드는 말이었고, '어차피 또 포기하게 될 거야'라는 자기 확신은 깊었기에, 선생님의 말은 억울함과 깊은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약물 효과에만 의존하려 했던 내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 같아 외면하고 싶었다.


선생님과 상의하여 조금씩 용량을 조절해보기로 했다. 18mg에서 27mg, 그리고 36mg으로. 단계적으로 용량을 올리며 내 몸과 마음의 반응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27mg에서는 눈에 띄는 부작용은 거의 없었지만, 각성 강도가 미미했다. 집중이 조금 유지되는 듯했지만, '달라졌다'고 느끼기엔 부족했고 여전히 과거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초조함이 밀려왔다.

반면 36mg에서는 분명한 각성이 느껴졌다.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는 느낌,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 하지만 대가도 컸다. 식욕은 급격히 줄어 점심을 자주 걸렀고, 저녁이면 폭식을 하고,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몸은 깨어있지만 정신은 불안정했고, 일상의 리듬 자체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것은 내가 원했던 변화가 아니었다. 과거의 무기력을 벗어나려다 또 다른 형태의 불균형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27mg으로 돌아왔다. 극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최소한 큰 부작용 없이 일상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각성이나 '정상인'처럼 보이는 상태가 아니라, 과거의 혼돈과 현재의 불안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안정감이라는 것을. 강한 자극보다, 무리 없이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상태. 콘서타가 내 삶을 끌고 가는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을 잡고 약은 그 곁에서 조용히 나를 돕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약을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약이 만들어주는 기적적인 변화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약효가 지속되는 그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약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 내 삶 안에 약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약의 도움을 받는 동안 아주 작은 시도들을 해보기로 했다.


눈앞에 쌓여 있던 ADHD 관련 책 한 권을 집어 드는 아주 작은 실천부터 시작했다. 숨 막히는 두께, 낯선 용어들. 처음엔 억지로 읽어 내려갔고,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딴생각에 빠지거나 졸기 일쑤였다. '이것도 제대로 못 하는구나' 자책감이 스멀거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음 날 다시 책을 펼쳤다. 점점 페이지를 넘길수록, 책 속 문장들이 내 모습과 겹쳐졌다. 나와 같은 패턴으로 좌절하고, 같은 어려움을 느꼈던 사람들의 고백과 고군분투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과거의 실패 경험에 짓눌리지 않고,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현재의 노력을 시도해보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았다. 작심삼일은 반복되었고, 계획은 쉽게 무너졌다. 약효가 끝난 뒤 무기력감에 눌려 하루를 통째로 허비하기도 했고, 약효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실패의 경험마저도 내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과거에는 실패가 곧 나의 무능함의 증거였지만,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도했다'는 과정의 기록이 되었다. 시작한 적이 있다는 기억은, 나를 덜 비난하게 만들었고, 실패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작은 발판이 되어주었다.


때로는 완전히 무너져 하루 종일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떠돌며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변화가 이렇게 고되다면 차라리 과거의 무기력한 나로 돌아가는 게 쉬워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처음 병원 문을 두드렸던, 절박하고 지쳤지만 그래도 변화하고 싶다고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던 나 자신을 떠올렸다. 그 마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결정적인 회복의 순간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청소나 저널링 같은 아주 사소한 일상 행위에서 찾아왔다. 약 기운이 남아있는 오후, 널브러진 물건들을 하나씩 치우며 방바닥의 질서를 찾아가자 내 마음 안의 혼란도 차분해졌다. 어질러진 공간이 정리되어 갈수록, 나 자신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는 감각이 생겨났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감정과 행동을 기록하는 저널링은 처음엔 어두운 감정들이 주를 이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계획’, ‘시도’, ‘희망’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 주의 기록을 돌아보며 '아, 나는 정말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하는,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한 회복의 신호를 발견했다. 이 기록들은 단순히 감정을 쏟아내는 것을 넘어, 약의 효과와 부작용, 나의 컨디션 변화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나에게 맞는 패턴과 균형점을 찾아가는 데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결국 내가 배운 건, 콘서타는 변화의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는 사실이었다. 약은 기대했던 마법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나를 돌보고,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동안 잠시 손을 잡아주는 조용한 조력자였다. 나에게 맞는 '적정 용량'이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약효와 부작용 사이의 균형, 집중과 긴장 사이의 경계, 그리고 무엇보다 약과 변화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의 문제였다. 약은 삶의 방향을 대신 정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내 삶을 바꾸려고 마음먹고 서툰 걸음을 내디뎠을 때, 그 변화의 곁을 함께 지켜준 조용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이런 혼란과 좌절 속에서도 길을 찾아보려 애쓰는 나도, 다시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어쩌면 내가 버텨온 그 지난 시간들이 단지 어둡고 힘겨웠던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마음의 자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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