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이라는 이름 앞에서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고, 가슴속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손에는 익숙한 우울증 약과 함께, ‘ADHD에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약 콘서타의 처방전이 들려 있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으로 가득했다. ADHD라니. 생소하면서도 낯익은 그 단어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것이 나와 직접 연결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선생님의 설명은 명확하고 논리적이었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 반복된 실패와 무력감, 감정 조절의 어려움까지 놀랍도록 정확히 꿰뚫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진단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나 자신을 ‘게으른 사람’, ‘의지력이 부족한 사람’, 혹은 ‘늘 우울해서 무기력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 익숙한 자기 인식의 틀을 하루아침에 깨뜨린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두렵고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정말 내가 ADHD일까?’, ‘선생님이 뭔가 잘못 판단하신 건 아닐까?’, ‘나는 그냥,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힘든 시간을 많이 겪은 사람일 뿐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리를 헤집었다. 특히 흔히 알려진 ‘과잉행동’과는 거리가 먼 나의 조용한 모습은, 여전히 ADHD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틀에 맞지 않는 조각 같았고, 진단이라는 이름표가 오히려 어색하게 달라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 이름이 가지는 사회적인 무게가 두려웠다. 만약 내가 그 진단을 받아들인다면, 그 순간부터 나는 ‘정상’에서 벗어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혹시라도 이 사실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그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그런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조여왔다. 진단은 분명히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일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낙인의 시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날 진료실에서 잠시 스며들었던 안도감은 다시금 두터운 혼란의 안개에 가려졌고, 나는 진단이라는 낯선 이름 앞에서 끝없이 망설이며 서 있었다. 나를 옥죄던 오랜 익숙함과, 이제 막 마주한 낯선 가능성 사이에서, 나는 도무지 어느 쪽으로도 발을 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며칠 동안 깊은 혼란 속에서 방황했다. 진단이라는 이름 앞에 선 나는 아직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고, 처방받은 약 콘서타를 손에 쥔 채 한참을 망설였다.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판단조차 내릴 수 없는 마음이었다. 머릿속에는 '정말 내가 ADHD일까?'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맴돌았고, 그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릴 자신이 없었다. 이 막막함과 혼란 속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어쩌면 가장 본능적으로 취한 행동은 정보를 찾는 것이었다. 무엇이 맞는지, 무엇이 내 안에서 뒤틀린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의 이 낯선 불안이 정말 그 진단명으로 설명 가능한 것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검색창에 조심스럽게 몇 글자를 입력했다. ‘성인 ADHD’. 엔터를 누르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정보들. 의학 기사, 전문가 칼럼,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치료 방법, 다양한 경험담까지. 나는 마치 길 잃은 여행자가 처음 보는 낯선 지도를 들고 방향을 찾으려 애쓰듯, 그 정보의 바다를 헤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짚어갔다. ADHD의 정의, 진단 기준, 주요 증상(부주의, 과잉행동, 충동성) 그리고 그것이 성인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 생소한 용어들, '실행 기능', '작업 기억', '정서 조절' 같은 단어들도 하나하나 검색하며 그 의미를 이해하려 애썼다. 읽으면 읽을수록, ADHD는 단순히 산만한 성격이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특정 영역에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과 기능 차이로 인해 나타나는 복합적인 신경 발달 장애이며, 그 영향은 단지 학업이나 업무에 그치지 않고 삶의 전반에 걸쳐 깊게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하지만 그런 이론적인 설명만으로는 내 안의 의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머리로는 어느 정도 이해되었지만, 마음은 아직 그 낯선 이름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가 빠져 있었다. 나는 단지 개념이나 진단명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나처럼 고민하고, 나처럼 방황했던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 경험의 의미를 확인받고 싶었다. 나의 불안이, 나의 혼란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실체를 가진 누군가의 말로 듣고 싶었다.
이론만으로는 메워지지 않던 의문과 막막함 속에서, 나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성인 ADHD 당사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았다. 익명의 공간에 흘러나오는 그들의 글은 놀랍도록 생생했고, 낯설지 않은 장면들로 가득했다.
“오늘도 휴대폰 찾다가 30분 날림… 냉장고에서 발견했어요. 저만 이런 거 아니죠?”
“프리랜서인데 마감 없으면 진짜 손에 안 잡혀요. 결국 밤새워서 겨우 마무리… 맨날 이래요.”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어요. 사소한 말에 혼자 서운해서 터뜨리고, 결국 후회하고… 반복이에요.”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워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잠도 안 오고, 집중도 안 돼요. 어떻게들 견디세요?”
그 글들을 읽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숨을 멈췄다. 웃음이 났다가, 이내 가슴이 저릿해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안을 훔쳐본 것처럼, 내가 써왔던 일기장 속 문장들이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만 이상하다고, 나만 부족하다고 여겼던 나의 모습이, 그곳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어려움으로 이야기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밀려온 감정은 큰 안도감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 한 문장이 지닌 위로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동안 스스로를 짓눌렀던 외로움과 수치심, 설명할 수 없었던 고립감이 천천히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고장 난 존재가 아니라는 확신을 조심스럽게 품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부분들을, 유머로, 공감으로, 때로는 따뜻한 격려로 나누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비로소 나를 마주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다르게 작동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강렬한 연결의 경험은 단순한 위안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너무나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어떤 기준, 어떤 신념을 근본부터 흔들어놓았다. 내가 그토록 집착하며 좇아왔던 그 말 ‘평범함’과 그것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늘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다. 특별할 것 없이 일상을 유지하고,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며, 감정을 매끄럽게 다루고, 적당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 그것이 ‘정상’이고 ‘성공’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삶은 언제나 미완성이고, 실패처럼 느껴졌다. 특히 긴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정한 ‘적절한 시기’와 ‘알맞은 경로’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내 삶을 끊임없이 깎아내렸다. 다른 이들이 커리어를 쌓고 성취를 해나가던 그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내 회복의 시간마저 ‘뒤처진 시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은 달랐다. 그들은 넘어진 채로도 살아 있었고, 비틀거리면서도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내가 꿈꿨던 매끄럽고 완벽한 ‘평범함’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는 각자 다른 색깔과 결을 가진 삶의 증거였다. 나는 그제야 물었다. 과연 내가 좇아온 ‘평범함’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 깨달음은 내 안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온 기준이 허상이었다는 생각은 깊은 상실감과 슬픔을 남겼다. 내가 그토록 애써왔던 것이 결국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였다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타게 달려왔던 걸까. 그 생각은 나를 한동안 멈춰 세웠다.
하지만 그 슬픔의 밑바닥에는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그리고 내 삶의 리듬을 이제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작고 단단한 자유. 그들은 나를 통해 나를 보게 했고, 더 이상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 발견은 나에게 ADHD라는 진단을 받아들이는 전환점이 되었다. 수치가 아닌 이해로, 두려움이 아닌 탐색의 대상으로. 그 순간부터 나는 나의 고통을 처음으로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제는 그 고통이 말해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 안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나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깊은 위안과 '평범함은 허상일지 모른다'는 깨달음. 이 두 가지 경험은 마치 강력한 자석처럼 내 삶의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스스로 정보를 찾고 다른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접하면서, 나는 비로소 ADHD라는 진단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만으로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던 내 안의 의심과 저항감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그들의 경험이 놀랍도록 나와 닮아 있다는 강력한 사실, 그리고 내가 좇던 '평범함'이 실체가 없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 점차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넘어, ‘이것이 바로 나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이름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점차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제 ADHD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내 삶을 다시 바라보았을 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명료함과 설득력으로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가며 하나의 일관된 그림을 완성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모든 어려움 — 주의가 산만하고, 계획을 세워도 지키지 못하고, 감정이 극단적으로 출렁이고, 자꾸만 중요한 일을 미루거나 까먹는 일들 — 이 단지 ADHD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분명 나는 뇌의 작동 방식에 특성이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깊숙한 차원에서, 나는 오랜 시간 반복된 실패와 좌절 속에서 점점 자신을 좁혀왔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어차피 안 될 것이다’라는 믿음이 굳어졌고, 그 믿음은 어느새 내 가능성을 가로막는 벽이 되었다. 부정적인 경험을 떠올리면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고, 다시 시도하려는 마음은 매번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그렇게 나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애써 피했고, 결국 기회가 와도 스스로 문을 닫아버리며 돌아서곤 했다. ADHD의 문제는 분명 존재했지만, 그보다 더 단단히 나를 묶고 있었던 건, 실패한 과거가 만들어낸 심리적 굴레였다. 나는 이미 ‘나는 할 수 없다’는 확신 속에 살고 있었고, 그 믿음이 변화의 문 앞에서 나를 매번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그 순간은 마치, 오랫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한 퍼즐 조각 하나가 천천히 맞물리며 처음으로 내 삶의 전모가 어렴풋하게 드러나는 듯한 감각이었다. ‘아,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내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이 되뇌었던 ‘도대체 왜’라는 질문에 비로소 조용한 대답이 돌아온 느낌이었다. 나는 왜 남들처럼 매끄럽게 살아가지 못했는지, 왜 반복되는 오해와 실패 속에서 지치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깊고 오래된 이유를 마침내 나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더 이상 나를 '의지 부족', '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라 몰아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그 단순하지만 간절했던 허락이 처음으로 내게 주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ADHD’라는 이름은 단지 과거를 설명해주는 진단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그려볼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이 되었다. 이 어려움이 내 잘못이나 나약함이 아니라 나의 신경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제 나는 그 차이를 이해하고 조율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워볼 수 있었다. 자책 대신 긍정을, 회피 대신 조율을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용기가 생겨났다. 그것은 오랫동안 나를 짓눌러왔던 무거운 짐을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비로소 숨을 고르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준비를 하는 순간 같았다. 나는 마침내 내 고통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고, 그 이름은 내 안에 희미하지만 분명한 가능성의 빛을 밝혀주고 있었다.
내 삶의 오랜 퍼즐 조각들이 마침내 맞춰지고, 내 고통에 ‘ADHD’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때, 마음속에는 단순한 후련함만이 남은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를 괴롭혀 온 혼란의 근원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건 분명 해방감이었지만, 동시에 그 이름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는 아쉬움과 허탈함이 조용한 슬픔으로 스며들었다.
‘왜 이걸 이제야 알게 된 걸까.’ 그 질문은 쓸쓸한 메아리처럼 마음속을 오래도록 울렸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을 오해하며 살아왔던 걸까. 또 얼마나 가혹하게 몰아붙이고, 얼마나 깊이 스스로를 상처냈던 걸까. 돌이켜보면 피할 수도 있었을지 모를 많은 실패와 좌절의 순간들이 떠올랐고, 그 기억 하나하나가 조용히 가슴을 아리게 했다. 아주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쩌면 내 삶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어긋난 관계들,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 그리고 흘러가버린 시간들. 그것들이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편에서는 깊은 미련과 후회의 감정이 잔잔하게 피어올랐다.
특히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오랜 투병의 시간과 이 ADHD라는 이름이 겹쳐지면서 감정은 더 복잡하게 뒤엉켰다. 그 지난한 시간 동안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들이 단지 병의 후유증 때문이라고만 여겨졌지만, 어쩌면 그 안에는 ADHD라는 설명되지 않았던 고통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성적인 피로, 집중력 저하, 쉽게 무너지는 감정들, 복잡하게 흐려지던 사고의 흐름. 그 모든 것들이 단순히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애초에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던 나의 뇌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혹은 누군가 조금만 더 일찍 내 안의 신호를 알아차려 주었다면, 나는 더 빨리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은 상실감을 넘어, 세상에 대한 억울함과 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졌다. 왜 나는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이중의 고통을 홀로 감당해야 했을까.
ADHD 진단은 분명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작은 불빛이었지만, 동시에 그동안 걸어온 길 위에 흩어져 있던 상처와 어긋난 기억들을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고통이기도 했다. 안도감과 슬픔, 해방감과 상실감, 희망과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드는 그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이 어쩌면 나만의 애도의 방식이었다.
이렇듯 안도와 슬픔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고 마침내 나를 이해할 실마리를 찾았다는 생각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이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싶지 않았다. 가장 먼저 기대고 싶었던 건, 나의 가장 가까운 울타리이자 늘 곁에 있어준 가족이었다. 진단이라는 거대한 발견을 솔직히 털어놓고, 이해받고 싶었고, 위로 받고 싶었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나는 가장 먼저 누나에게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릴 적부터 내 속마음을 비교적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도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누나, 나… 얼마 전에 병원 다녀왔는데… ADHD 진단받았어.”
짧지만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 그 몇 초가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혹시 “그게 뭐야?” “네가 왜?” 같은 반응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누나는 오히려 놀라움 속에서 천천히 무언가를 짚어가기 시작했다. “ADHD? 진짜? …근데 생각해보니까…” 누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과거에 내가 아버지의 충동적인 성향을 닮아간다고 걱정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 것도 다 관련이 있을 수 있겠네. 그리고… 너 그거 아냐? 우리 사촌 OO이도 어릴 때 산만해서 학원에서 쫓겨났었는데, 결국 ADHD 진단받고 치료받고 있대.” 누나는 내 이야기를 단순한 고백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연결해보려 애썼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조용한 응원을 덧붙여주었다. “힘들었겠다.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지. 약이든 치료든, 삶이 나아질 수 있다면 뭐든 해보는 게 좋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누나의 담담하고도 다정한 말은, 그 순간 내 안에 작지만 분명한 용기의 불씨 하나를 지펴주었다.
누나와의 통화를 계기로,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어머니께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역시 어머니셨다. 내가 낯선 진단명과 정신과 치료에 대해 어렵게 설명을 이어가자, 어머니는 그 어떤 편견이나 판단 없이 그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차분히 이야기를 들으셨다. 모든 말을 마친 뒤, 어머니는 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힘들면 언제든 엄마한테 말해. 네가 웃는 모습만 봐도 엄마는 괜찮다.” 그 말에는 어떤 설명이나 조건도 없었다. 그저 아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만이 담겨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내 수많은 실수와 부족함을 묵묵히 감싸주셨던 어머니는, 진단이라는 이 낯설고 거대한 사건 앞에서도 여전히 가장 깊고도 따뜻한 보금자리로 나를 품어주셨다. ‘나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구나.’ 그 확신은 불안에 흔들리던 내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힘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형에게 이야기했을 때는, 사실 가장 망설여졌다.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나의 서툰 모습들을 가까이서 지켜봐 온 형이기에, 어쩌면 실망하거나, 내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형의 반응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놀라거나 실망하기는커녕, 형은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나도 한창 힘들 때 상담받은 적 있어. 도움이 되더라. 네가 힘들었다면 병원 간 거 진짜 잘한 거야.” 그리고 이어서 카페 일에서 내가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했다. “솔직히 네가 가끔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웃음), 그게 ADHD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근데 그런 거 다 떠나서, 처음 하는 일인데 이만큼 해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스스로 너무 몰아세우지 마.” 형의 말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내가 계속해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갈 수 있는 진짜 지지가 되어주었다.
물론 가족이라고 해서 ADHD라는 이름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내 삶의 구체적인 어려움까지 모두 공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나름의 혼란과 걱정을 안고 있었을 테고, 앞으로의 내 변화를 지켜보며 함께 배워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불확실함 속에서도 중요한 건 하나였다. 그들은 나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고, 내가 전한 진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했으며, 내가 나아가려는 방향을 응원해주었다는 점이다. 진단 직후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 가족이라는 첫 번째 울타리는 예상보다 더 깊은 안정감과 용기를 주었다. 그들의 지지를 통해 나는 다시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되새겼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앞으로의 여정을 버텨낼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생겼다.
길고 어두운 터널 같았던 시간이었다.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나 자신을 미워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보낸 수많은 날들. 카페 아르바이트는 사회라는 문턱 앞에서 또 한 번의 깊은 좌절을 안겨주었고,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함이 나를 다시 병원으로 이끌었다. 얼어붙은 첫 진료실의 침묵, 그리고 종이 위에 조심스레 쏟아낸 나의 민낯. 마침내 마주한 ‘성인 ADHD’라는 낯설고도 생소한 이름 앞에서, 나는 또다시 혼란과 망설임, 그리고 어렴풋한 안도감 사이를 헤맸다.
하지만 그 이름은 단순한 낙인이나 선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내 삶의 조각들을 처음으로 하나로 꿰어 맞추게 해준 열쇠였고, 나를 끊임없이 괴롭혀온 수많은 ‘왜?’라는 질문들에 처음으로 건네진 조심스러운 대답이었다. 온라인에서 만난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고백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깊은 위안과 함께, 내가 오랫동안 좇아왔던 ‘평범함’이라는 이름의 환상과 작별할 용기를 건넸다. 무엇보다도,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는 이 모든 혼란의 한가운데에서도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무언가를 처음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건, 때로는 오래된 슬픔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수많은 물음표들을 마침표로 바꿔가며, 이제야 비로소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갈 준비가 되었다. 진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제는 나를 이해하고 돌보는 삶, 그 첫 발을 내디딜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