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진단이라는 이름 앞에서

by 이상

실존적 공백


과거의 나는 투병이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학생'이라는 정체성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미래에 대한 희미한 계획조차도 모두 희미해지거나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새로운 내가 명확히 그려진 것도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환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사회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과거와 단절되고 미래는 불확실한 채, 나는 아무런 의미도 방향도 찾을 수 없는 텅 빈 현재 속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이 실존적 공백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길을 물었다.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세상이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길은 비교적 명확해 보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늦었지만 다시 수능을 준비해서 대학에 가고, 남들처럼 취업 준비를 하는 길. 그것은 사회라는 거대한 흐름에 다시 합류하고,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안전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길은 나에게 너무나 멀고 버겁게 느껴졌다. 이미 학창 시절 공부 앞에서 처절하게 맛보았던 좌절감, 집중하지 못하고 겉돌았던 나의 모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기에, 다시 그 길을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다른 길은 없는 걸까? 수능이나 대학이라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 하지만 그 길은 더욱 짙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투병 외에는 내세울 만한 경험도 없었고, 세상 물정에도 어두웠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그 어떤 실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이 실존적 공백 속에서 길을 잃고 표류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나만의 길을 용기 있게 개척하지도 못한 채. 이쪽을 바라보면 과거의 상처가 나를 붙잡았고, 저쪽을 바라보면 미래에 대한 막막한 두려움이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어떤 선택도 내리지 못한 채, 무의미한 시간 속에서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렸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나만 홀로 이 텅 빈 공간 속에서 정체되어 있는 듯한 감각. 그 무력감과 소외감은 나를 더욱 깊은 곳으로 침잠하게 만들었다.


세상이라는 낯선 문턱


이십대 중반, 그 공백을 메우려는 작은 시도로 형이 새로 오픈한 카페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다. 멈춰 있던 내 삶의 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고, 나를 세상 속으로 다시 한번 이끌어줄 소중한 기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회라는 낯선 문턱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갑고 가팔랐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도 잠시, 나는 또다시 익숙한 좌절과 마주해야 했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 앞에서 나는 극도로 긴장했고, 간단한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한 시간만 일해도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고, 심장은 불안하게 뛰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혔던 것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는 고질적인 문제들, 즉 설명할 수 없는 부주의와 반복되는 실수였다. 주문받은 메뉴를 잊어버리거나 잘못 입력하고, 포장 여부나 음료 온도를 헷갈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음료 제조 시 레시피를 틀리거나 양 조절에 실패했고, 배달 주문에서는 필수적인 것들을 빼먹기 일쑤였다. 특히 손님이 몰리는 바쁜 시간대에는 머릿속이 하얘지며 무엇부터 처리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 허둥댔고, 결국 손님의 불만을 사거나 주문을 취소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곤 했다.


이것은 단순히 '처음이라서' 겪는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나의 모습은, 학창 시절 나를 괴롭혔던 바로 그 문제들이 장소만 바뀐 채 또다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잔인한 현실을 깨닫게 했다. 학교에서는 성적 하락과 선생님의 꾸지람으로 나타났던 문제가, 이제는 손님의 짜증 섞인 표정, 동료의 불편한 시선, 그리고 나의 생계 문제라는 훨씬 더 무겁고 현실적인 무게로 다가왔다. 반복되는 실수와 좌절 속에서 나의 자존감은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과거의 실패 기억들이 끊임없이 되살아나 현재의 나를 옭아맸고, 자기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카페에서의 좌절은 다시 나를 깊은 우울과 무기력 속으로 밀어 넣었다. 실존적 공백은 메워지기는커녕, 사회 부적응이라는 새로운 좌절감으로 인해 더욱 깊고 어두워지는 듯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외침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카페 일은 여전히 버거웠고, 실수는 반복되었으며, 감정의 파도는 예측 불가능하게 나를 덮쳤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에 숨이 막혔고, 잠시 품었던 희망은 다시 짙은 절망감으로 바뀌어 갔다. 나는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계속 살아야 하나?’,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인가?’ 하는 어두운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나를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가끔 집에 들르시는 아버지는 여전히 당신의 방식대로, 때로는 감정적으로, 때로는 강압적으로 나를 대하셨다.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 깊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정작 나 역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가족들에게 똑같이 날카롭고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내가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는 끔찍한 자각.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든 끊어내고 싶었다.


몸과 마음은 완전히 방전되어 있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아니 버티고 싶은 의지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고통이었고, 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것조차 버거운 과제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속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는지도 몰랐다.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듯한 위태로운 느낌. 아주 작은 충격에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아득한 어둠 속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공포감.


나는 다시 한번, 아니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병원을 생각했다. 이전의 치료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회의감과 불신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무언가를 고치거나 나아지고 싶다는 적극적인 희망보다는, 그저 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수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숨이라도 쉬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 컸다.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검색창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입력하는 손가락이 무겁게 느껴졌다. 수많은 병원 목록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과연 이번에는 다를까? 정말 도움이 될까?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집 근처 병원 한 곳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예약 날짜를 확인하는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것이 어쩌면 내 마지막 희망의 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 지긋지긋한 우울과 무기력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더 이상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간절함이 마침내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첫 진료실, 얼어붙은 시간


예약 당일,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정신과 진료실 문턱은 여전히 높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병원 특유의 무거운 정적이 나를 감쌌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잔뜩 굳은 얼굴로 접수대를 지나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았다. 이름이 불릴 때까지의 몇 분은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그리고 곧 마주하게 될 낯선 나 자신. 문이 열리고 내 이름이 불렸을 때,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셨다. "어떤 점이 불편해서 오셨나요?" 아주 평범하고 당연한, 진료의 시작을 알리는 질문이었다. 분명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없이 되뇌었던 말들, 꼭 털어놓고 싶었던 고민과 상처들이 가슴 속에 켜켜이 쌓여있었는데, 막상 입을 열려고 하니 목구멍에 뜨겁고 단단한 무언가가 꽉 걸린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혀가 굳어버린 듯, 머릿속이 텅 빈 듯, 나는 그저 입술만 달싹일 뿐이었다.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 뒤죽박죽 엉켜버린 생각과 감정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충동적으로 찾아온 탓에 내 상태를 미리 정리하지 못했고, 오랫동안 혼자 담아두기만 했던 혼란스러운 내면의 풍경을 말이라는 서툰 도구로 표현하려니 횡설수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몇 마디 더듬거리며 횡설수설하다가는, 이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진료실에는 숨 막힐 듯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가 내 불안한 심장 박동 소리와 뒤섞여 유난히 크고 날카롭게 들리는 듯했다. 시간은 마치 정지된 것처럼 더디게 흘러갔고,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얼어붙은 듯 앉아 있었다.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어색하고 고통스러운 침묵의 순간조차, 어김없이,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나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왜 이렇게 바보같이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거야?’, ‘사람들 앞에서는 늘 이 모양이지. 이러려고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온 거니?’, ‘역시 난 글렀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야. 도움받을 자격조차 없어.’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비난하고 상처를 냈다.


내 삶은 늘 그런 패턴의 반복이었다. 어떤 상황에 부딪히든, 문제가 발생하든, 나는 언제나 가장 먼저 화살을 나 자신에게 돌리는 데 익숙했다. 실패했을 때, 무언가를 잊어버렸을 때,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을 때, 나는 외부의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기 전에, 모든 원인을 나의 근본적인 부족함과 타고난 결함으로 돌리는 사고 패턴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처럼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도움을 구하러 온 이 절박한 첫 진료의 순간에서조차, 나는 나 자신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날의 짧은 진료 시간 대부분은 무거운 침묵과 나의 서툰 옹알이 같은 몇 마디, 그리고 선생님의 조심스러운 질문 몇 개로 허무하게 흘러가 버렸다. 선생님이 내 상태에 대해 어떤 잠정적인 진단을 내리셨는지(아마도 깊은 우울 상태였을 것이다), 어떤 약을 처방해주셨는지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진료 기록에는 아마 ‘심한 우울감과 불안 증상’ 정도로 적혔을 것이다.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일말의 후련함이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었다. 또다시 밀려오는 깊은 자책감과 사무치는 무력감.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아무런 실질적인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생각. 나는 또다시 소중하고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를 기회를 스스로 망쳐버렸다는 지독한 패배감과 함께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깊은 좌절감과 후회,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에 휩싸였다. 기껏 큰 용기를 내어 찾아간 병원이었지만, 정작 내 마음속 이야기의 십 분의 일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에 속이 상하고 분했다. 이대로라면 다음번 진료 역시 오늘과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것이 뻔했다. 아니, 어쩌면 나는 다시 병원에 갈 용기조차 내지 못할지도 몰랐다.


첫 진료의 처참한 실패를 통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금의 나로서는, 말이라는 실시간 소통 방식으로는 도저히 내 안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해왔던 나만의 유일한 소통 방식, 바로 글쓰기였다. 말주변은 형편없었지만, 혼자 조용히 앉아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데는 그나마 조금 더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나는 다음 진료를 위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잠시 심호흡을 한번 하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처음에는 무엇부터 써야 할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일단 ‘나의 이야기’라고 제목을 붙이고 나니, 마치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내면의 댐 수문이 열리듯 마음속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진료실에서 차마 다 하지 못했던 말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삭혀왔던 감정들, 어린 시절부터 나를 괴롭혔던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들, 반복되는 실수와 실패에 대한 지독한 자책감, 아버지와의 뒤틀린 관계에서 오는 깊은 상처와 분노,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마지막 남은 절박함까지. 어떤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내 모습, 부끄럽고 초라하지만 숨길 수 없는 솔직한 내 마음이 검은 글자들이 되어 하얀 화면 위로 쏟아져 나왔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키보드 위로 한숨을 쉬었다. 때로는 과거의 억울했던 기억에 사로잡혀 격한 분노로 손을 떨었고, 때로는 깊은 슬픔과 외로움에 가슴이 먹먹해져 한참 동안 깜빡이는 커서만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갈수록, 신기하게도 뒤죽박죽 엉켜 있던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흩어져 있던 생각과 감정의 조각들이 글로 옮겨지면서 비로소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안개처럼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내 고통의 실체가 조금씩 더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내는 듯했다.


이것은 단순한 하소연이나 일기가 아니었다.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처절한 자기 분석의 과정이었고, 다음번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께 나를 제대로 보여주고 진정한 도움을 받기 위한 간절한 노력이었다.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 나는 비로소 내면의 목소리를 찾고 그것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었다. 다음 진료를 기약하며, 나는 이 글이 부디 의미 있는 소통의 시작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며칠에 걸쳐 써 내려간 글은 A4 용지로 여러 장이 될 만큼 꽤 길어졌다. 나는 프린터로 출력한 그 종이 뭉치를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그동안 애써 외면하려 했던, 혹은 나조차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나의 민낯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반복되는 실수와 그것을 만회하려는 서툴고 비효율적인 노력,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깊은 자책의 악순환. 예측 불가능하게 널뛰며 나 자신과 주변을 지치게 만드는 변덕스러운 감정기복, 그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허우적거리는 나약한 모습. 야심 차게 세웠지만 늘 시작조차 못 하거나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수많은 계획들과 그로 인한 깊은 무력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미묘한 어려움과 소통의 단절감, 그리고 그로 인한 깊은 외로움.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가장 밑바닥에 질기고 어둡게 깔려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미래에 대한 막연하지만 강력한 불안감.


글을 통해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때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어떤 대목에서는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고, 어떤 부분에서는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나 가슴이 아려왔다. 차라리 읽지 않고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 혹은 이 글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그냥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느꼈는지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고통스러운 직면의 과정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깊은 혼란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를 얻었다. 더 이상 외면하거나 그럴듯한 변명으로 합리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어려움과 상처를 인정할 준비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마치 오랫동안 방치되어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내 마음의 방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아주 작지만 분명한 인식의 변화가 내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끝없는 자책의 목소리 대신,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힘들었을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의문과 질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 내 오랜 고통의 진짜 이유를 알고 싶다는 간절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완성된 글이 담긴 종이들을 소중하게 접어 깨끗한 봉투에 넣었다. 다음 진료 날, 이 글이 얼어붙었던 나와 의사 선생님 사이의 소통을 녹이는 따뜻한 다리가 되어주기를, 그래서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갈 실마리를 마침내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바랐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변화를 향한 나의 첫 번째 구체적인 행동이었다.


우울증 너머의 그림자


다음 진료일, 나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으로 진료실 문을 열었다. 지난번처럼 극심한 긴장감에 시달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써 내려간 솔직한 기록을 선생님께 건네야 한다는 생각에 여전히 약간의 불안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이번에는 내 손에 나를 설명해 줄 글이 있다는 생각에, 지난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든든함과 함께 ‘이번에는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마저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준비해 온 봉투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선생님께 건넸다. “선생님, 지난번에는 제가 너무 긴장해서 말씀을 제대로 못 드렸어요. 그래서… 그동안 제가 겪었던 어려움이랑 생각들을 글로 좀 적어왔습니다.” 내 목소리는 여전히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지난번처럼 얼어붙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말없이 봉투를 받아 들고, 그 안에 담긴 나의 기록들을 천천히, 그리고 매우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때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글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진지한 표정이었다. 선생님이 내 글을 읽는 동안, 나는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내 모든 취약함과 혼란, 오래된 상처와 분노가 담긴 글을 읽는 선생님의 마음은 어떨까.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부끄러움과 불안감,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번에는 나를 제대로 이해해주실 거야’ 하는 간절한 희망이 교차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선생님은 마지막 장을 덮고 잠시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으시고는,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정말 힘든 시간을 혼자서 오랫동안 견뎌 오셨네요." 선생님의 첫 마디는 따뜻한 위로였다. “지난번 진료 때도 느꼈지만, 이 글을 보니 확실히 우울감이 아주 깊으신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글 덕분에 그 배경과 구체적인 어려움들이 훨씬 더 명확하게 이해됩니다.”


그 말은 예상했던 것이었고, 동시에 내 글이 선생님께 제대로 전달되어 내 어려움의 깊이를 이해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이미 두 차례나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고, 내 글 속에도 우울과 무기력, 절망감이 절절하게 녹아 있었으니 ‘깊은 우울감’이라는 진단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선생님은 과거 투병 중에 복용했던 항우울제와 수면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확인하셨고, 나는 기억나는 대로 대답했다. 익숙한 진단명인 ‘우울증’이 다시 한번 확인되면서, 한편으로는 ‘역시 내 문제는 우울증이었구나. 이제 약을 제대로 먹고 치료하면 분명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의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글 속에는 단순히 우울하기만 한 사람의 모습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듯한 뿌리 깊은 산만함,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고 금세 포기하는 변덕스러움, 사소한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감정이 극단적으로 오르내리는 불안정함,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딴생각에 빠지는 모습, 시간 관리에 번번이 실패하고 물건을 잃어버리는 부주의함까지… 우울증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나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또 다른 종류의 어려움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것들이 단순히 우울증이 심해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증상일 뿐일까? 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내 글 속에 담긴 구체적인 어려움들, 특히 우울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로 옮겨갔다. 나는 우울증 진단에 동의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대해 용기를 내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가 우울해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사실 제가 쓴 글에도 자세히 적었지만,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좀 유별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학교 다닐 때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초등학생 때는 자리에 5분 이상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선생님께 매일같이 혼났어요. 수업 시간에 멍하니 다른 생각에 빠져 있다가 이름 불리면 깜짝 놀라기 일쑤였고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기억의 조각들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준비물이나 숙제 같은 것도 매일같이 빼먹어서 엄마 속을 정말 많이 썩였죠. 중요한 물건 잃어버리는 건 뭐… 지금까지도 계속되고요. 집중하는 것도 너무 어려워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려고 해도 머릿속에서 온갖 잡생각이 떠다니고, 주변의 작은 소리 하나에도 쉽게 신경이 팔려서 금방 흐름을 놓쳐버려요."


나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목소리에는 수십 년간 쌓인 답답함과 간절함이 묻어났다. "계획 세우는 것도 좋아하는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거나, 금방 다른 재밌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끝내는 일이 거의 없어요. 시간 약속도 자주 늦거나 까먹고요. 감정도 좀 이상해요. 어떤 때는 별거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이나 표정에 너무 쉽게 상처받아서 하루 종일 곱씹으며 괴로워하다가도, 또 어떨 때는 갑자기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충동적으로 뭔가를 사거나 일을 벌이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해도 제 감정이 너무 오락가락해서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나는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며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이런 문제들이… 정말 단순히 우울증이 심해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증상일 뿐일까요? 아니면 혹시… 제가 모르는 뭔가 다른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요?"


내 질문 속에는 수십 년간 나를 괴롭혀 온 이 설명되지 않는 내 삶의 조각들의 진짜 정체를 알고 싶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단순히 '우울해서 그래'라는 익숙하고 편리한 설명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내면의 외침이었다. 마치 복잡한 퍼즐의 가장 중요한 핵심 조각 몇 개가 여전히 빠져 있는 듯한 느낌, 내 오랜 고통의 진짜 뿌리에는 아직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하고 불안한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우울이라는 짙고 익숙한 그림자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무언가, 그것의 정체를 밝혀내야만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의 출구를 마침내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선생님의 답변을 숨죽이며 간절히 기다렸다.


나의 간절한 질문과 내가 건넨 상세한 기록, 그리고 두 번의 진료 동안 선생님이 직접 관찰하신 나의 모습들(말투, 행동, 사고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신 듯, 선생님은 잠시 침묵하며 무언가를 신중하게 검토하시는 듯했다. 진료실에는 잠시 동안 선생님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의 시간이 나에게는 마치 내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처럼 길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선생님은 이전과는 다른, 좀 더 확신에 찬, 그러나 여전히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단순히 현재 나의 기분이나 우울 증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글에 적혀 있는 나의 과거, 특히 아주 어린 시절의 발달 과정과 그때부터 지속되어 온 행동 패턴들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질문들을 던지셨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부터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나타난 지속적인 부주의함, 정리 정돈과 시간 관리의 어려움, 충동적인 행동 패턴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하셨다. 또한, 특정 분야에는 깊이 몰입하지만 흥미 없는 일에는 시작조차 어려워하는 극단적인 집중력의 편차에 대해서도 물으셨다. 선생님의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질문들을 따라 기억의 강물을 다시 한번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잊고 있었거나 혹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겨버렸던 어린 시절의 모습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1장에서 힘들게 복기했던 그 수많은 어려움들 – 교실에서의 안절부절못함과 끊임없는 주의 산만함, 반복되는 건망증과 정리되지 않는 주변 환경, 공부에서의 극심한 기복과 동기 부여의 어려움, 감정 조절의 미숙함과 예측 불가능한 충동성까지. 마치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내 삶의 판도라 상자가 마침내 활짝 열리듯,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내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끈질기고 일관되게 나타났던 문제들이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한참 동안 나의 과거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시고 추가적인 질문들을 통해 확인하시던 선생님은, 잠시 안경을 고쳐 쓰시더니 마침내 아주 조심스러우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내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그 결정적인 진단명을 다시 한번, 그러나 이번에는 훨씬 더 명확한 가능성으로 내 앞에 꺼내놓으셨다.


"환자분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보내주신 글도 꼼꼼히 읽어보니, 단순한 우울증보다는… 성인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물론 확진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평가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ADHD. 지난번 진료 때 스치듯 지나갔던 그 이름이, 이번에는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나의 오랜 고통과 혼란을 설명해 줄 가장 유력한 이름으로 내 앞에 다가왔다. 선생님의 말은 단정적인 확진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진단보다 내 마음에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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