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이름이 없던 시절

by 이상

이름이 없던 시절


나를 설명하는 말들은 늘 비슷했다. 나는 '산만한 아이', '주의가 산만하고 정리가 안 되는 애', '가만히 있질 못하는 애'로 불렸다.


수업 시간이면 어느새 딴생각에 빠져 있었고,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연필을 손에 쥐고 있으면 낙서하기 바빴다. 선생님은 내 이름을 자주 불렀고, 나는 매번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교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차 소리, 햇빛의 움직임, 옆자리 친구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고 귀를 기울이게 했다. 어떤 날은 참다못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교실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목적지는 화장실이 아니었다. 1층 복도 끝까지 갔다가, 다시 반대편 끝까지 걸어가고, 윗층으로 올라가서 또 복도를 왕복하고 나서야 교실로 돌아오곤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나의 이런 안절부절못함은 비단 학교 교실에서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듯하다. 훗날 엄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가 그 증거였다. 지인이 운영하는 학원에 나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 원장님이 엄마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결국 나는 그곳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숨 막히는 교실의 정적 속에서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시간은 체육 시간이었다. 그 넓은 운동장에서만큼은, 마음껏 뛰어다니고 소리쳐도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았다. 공을 따라 힘껏 달릴 때, 바람을 가르며 몸을 움직일 때, 나는 비로소 속박에서 풀려난 듯 자유로웠다. 어쩌면 그때만큼은 나도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 어쩌면 그 이상으로 살아있다는 생생한 감각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체육 시간은 늘 간절히 기다려졌고, 짧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허락된 몇 안 되는,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즐거움은 언제나 짧았다. 체육복에 밴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교실이라는 네모난 상자 안으로 돌아오면, 나는 어김없이 이해할 수 없는 눈총과 잔소리의 표적이 되었다. 자리에 묶인 몸은 다시 좀이 쑤셨고, 마음은 창밖 어딘가를 헤맸다. 결국 칠판 앞에 불려 나가거나, 벌로 복도에 서 있어야 하는 익숙한 벌칙이 나를 기다렸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점점 입을 다무는 법을 배웠다. 내 안의 소란을 잠재울 수 없다면, 차라리 겉으로라도 조용한 아이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몸은 여전히 교실에 있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다른 곳으로 달아났다. 손이나 발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안절부절못함은 여전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들키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책상 아래에서 조용히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거나, 교과서 귀퉁이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작은 낙서를 그리며 지루한 시간을 버텼다.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조용해졌고,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그러나 속으로는 여전히 길 잃은 채 방황하는 아이로 자라나고 있었다.


잊어버리는 건 늘 내 몫이었다


내 기억은 마치 밑 빠진 독과 같아서, 아무리 애써 담아두려 해도 중요한 것들이 속절없이 흘러나가곤 했다. 무언가를 놓치고, 까맣게 잊어버리는 일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그러나 끊임없이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일상이었다. 어제 선생님이 칠판 가득 적어주신 다음 날 준비물 목록은 다음 날 아침이면 내 머릿속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결국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허둥지둥 교문 앞 문방구로 달려가거나, 옆 반 친구에게 빌리는 일이 셀 수 없이 반복되었다. 집에 가져와야 할 준비물들이나 중요한 안내장은 책가방 가장 깊숙한 곳, 구겨진 교과서 틈새에서 며칠 뒤에야 발견되기 일쑤였고, 연필이나 지우개 같은 작은 학용품들은 마치 제 발로 달아나기라도 하는 듯 끊임없이 자취를 감췄다. 가장 억울했던 것은, 밤새 머리를 싸매고 겨우 끝낸 숙제를 책상 위에 고스란히 두고 오는 날들이었다. 노력의 증거는 방 안에 있는데, 정작 학교에서는 빈손인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야 했다.


처음 몇 번은 그저 '실수'라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주변에서도 "다음부턴 잘 챙겨"라는 가벼운 꾸지람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다음'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선생님의 눈빛은 점점 더 싸늘해졌고, 친구들은 나를 '덜렁이' 혹은 '정신없는 애'로 여기기 시작했다. 나 자신조차도 이 반복되는 망각 앞에서 점점 지쳐갔다.


가장 힘든 사람은 아마 엄마였을 것이다. 엄마는 나의 잃어버린 기억을 대신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에 내팽개치듯 던져놓은 내 책가방을 열어보는 것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언제 넣었는지도 모를 쓰레기와 뒤죽박죽 엉킨 교과서, 그리고 구겨진 종이들 사이에서 내일 가져가야 할 준비물을 확인하고 챙겨주는 일.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엄마의 깊은 한숨 소리는 어린 내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처럼 내려앉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음속으로만 수백 번 '다음엔 정말, 정말 잘 챙길게요'라고 되뇌었지만, 그 다짐은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균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내 자존감이라는 유리벽에 깊고 촘촘한 금을 냈다. 나는 왜 이렇게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왜 다른 아이들은 당연하게 기억하고 챙기는 것들을 나는 매번 놓치는 걸까. 내 머릿속에는 구멍이라도 뚫린 걸까. 왜 이렇게 중요한 것들을 깜빡깜빡하는 걸까. 그 끝없는 물음들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 무겁고 버거운 짐이었다.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기에, 나는 결국 가장 쉬운 답을 선택했다. '나는 원래 이런 애야', '나는 남들보다 부족한 아이야', '나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렇게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고, 점점 더 깊은 체념 속으로 가라앉았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었지만 개선되기 보단 오히려 더 큰 문제들을 일으켰다. 아버지께서 대학 입학 선물로 사주신 지갑은 채 3개월도 쓰지 못하고 어디선가 잃어버렸다. 또 한 번은 은행 ATM 기계 위에 현금이 든 지갑을 통째로 두고 나와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지갑은 사라진 후였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결국 부모님은 성인이 된 나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셨다. 병원에 갈 때면 내가 수납 영수증이나 처방전을 제대로 챙겼는지, 집에서 나올 때 신용카드는 가져왔는지,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셨다. "카드는 꼭 지퍼 달린 주머니에 넣고 잠가라!"는 잔소리는 외출 때마다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였다. 결국 내 명의의 통장, 카드, 신분증, 심지어 운전면허증까지 부모님이 직접 관리하시는 상황에 이르렀다. 가끔 부모님이 답답함에 "너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뭐냐!"고 핀잔을 주실 때면, 나는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매번 혼나고 지적받고 잊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점점 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겼다. 그 상처는 보이지 않지만 깊게 남아, 오랫동안 나의 발목을 잡는 무거운 족쇄가 되었다.



반짝였지만 금세 식어버린 공부의 불씨


공부에 대한 나의 감정은 마치 변덕스러운 날씨 같았다. 어떤 날은 햇살처럼 맑고 뜨거웠다가, 또 어떤 날은 먹구름처럼 어둡고 무거웠다. 분명한 것은, 나는 공부 자체를 싫어하는 아이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어떤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공부에 열정적이었다. 특정 과목이나 흥미로운 단원에 마음이 꽂히면,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밤늦도록 수학 문제집 씨름하며 풀이의 희열을 맛보기도 했고, 역사가 재밌어서 역사책을 사서 탐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은 날씨처럼 변덕스러웠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기말고사 성적에 어떤 '보상'이 걸렸던 적이 있다. 희미한 기억 속 보상의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나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평소의 나와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남아 질문하고 또 질문하며 파고들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평균 90점을 훌쩍 넘어 전교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을 때, 친구들과 선생님의 놀란 눈빛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 반짝이는 몰입의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뜨겁게 타올랐던 의욕의 불씨는 예고 없이 사그라들었고, 처음의 열정은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안개처럼 흩어졌다. 머릿속은 어느새 공부가 아닌 다른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찼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다시금 고역으로 변했다.


"처음엔 그렇게 잘하더니, 왜 끝까지 꾸준히 못 하니?" 선생님의 안타까움 섞인 질문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나 역시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도 끝까지 해내고 싶었다. 성실하게, 꾸준하게 노력해서 안정적인 성과를 내는 친구들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의지탓을 하고, 의욕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패턴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더욱 극심해졌다. 중학교 3학년 때 찾아온 백혈병이라는 불청객은 1년이라는 긴 학업 공백을 만들었고, 이는 가뜩이나 위태로웠던 나의 학습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뒤처진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틀었지만,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한 내용 앞에서 집중력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학교 수업과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결국 나는 처절한 패배감과 함께 공부라는 끈을 놓아버렸다. 시험 기간에 잠시 벼락치기를 시도하다가도, 이내 '해봤자 안 될 거야'라는 무력감에 빠져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짧은 집중력, 희미한 시간 감각,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 나는 몇 번이고 계획표를 새로 짜고 다짐했지만, 현실은 늘 나의 의지를 배반했다. 어느 날은 교과서의 글자들이 눈앞에서 흩어지는 듯 읽히지 않았고, 또 어떤 날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공부를 쉬기도 했다. 주변 친구들의 꾸준함과 비교될 때마다 열등감은 더욱 깊은 뿌리를 내렸다. 계획을 세우고, 묵묵히 실천하며, 차곡차곡 성과를 쌓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은 나에게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다. '왜 나는 안 될까?', '왜 나는 이 간단한 계획조차 유지하지 못할까?' 매일 밤, 이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마치 마라톤 출발선에서 힘차게 뛰쳐나갔지만, 몇 걸음 못 가 숨이 차서 주저앉아 버리는 주자의 심정이었다. 그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해내고 싶었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자꾸만 발목을 잡는 듯했다. 그때 느꼈던 깊은 무력감, 스스로를 향했던 날카로운 비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었던 좌절의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에 흉터처럼 남아 지금의 나를 이루는 감정의 밑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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