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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필 Apr 06. 2024

사람이 살고 있었다

 서울에서 밀려난 내가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학원 강의를 시작했을 때가 20대 후반쯤이었다. 강사로 들어가서 원장이 되어 나왔던 그 학원 건물은 도시의 기차역 주변 홍등가 골목 끝자락에 있었다. 룸살롱처럼 고급스러운 술집들이 아니라 엄지, 꼭지, 청실홍실, 인연, 뭐 이런 이름들의 간판들이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늘어서 있는 골목이었다. 학원 건물의 1층에는 걸핏하면 사고를 치는 사춘기 둘째 딸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장님 부부가 하는 화원이 있었다. 크고 넓고 멋대가리 없이 번듯한 건물이었다. 다행히 큰 길가에 있긴 했는데 바로 옆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홍등가였고 그 홍등가 끝에 다시 큰길이 있고 농협이 있었다. 처음 학원에 방문하는 학부모들이 농협 쪽 큰길에서 학원 쪽으로 차를 몰고 들어서면 홍등가를 뚫고 지나야 했다. 대략 난감했던 학부모들로부터 가끔은 '**학원이죠? 학원 상담 가는 중인데요, 여기 청실홍실 앞인데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돼요?'라는 전화도 걸려 왔다.               

 

 나는 그 골목을 최소한 하루 한 번은 왕복해야 했다. 인터넷뱅킹이나 텔레뱅킹 같은 것이 아직 없었거나 내가 할 줄 몰랐거나 어쨌든 농협에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5-6시 전에 은행에 다녀오려고 애썼다. 그 시간쯤이면 홍등가는 이제 막 기지개를 켠 시간이라 지나다니는 아가씨들이 좀 보이기는 해도 술 취한 손님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늦은 시간에 은행에 가야 할 일이 있으면 심호흡을 해야 했다. 밤이면 골목은 꽃단장을 한 화려한 아가씨들과 눈이 개개풀린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아가씨들과 손님들 사이에 자주 싸움이 벌어져 악다구니가 넘쳐 나는 사이를 뚫고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암 치료를 받기 전까지 테일러칼라 정장만 입고 앞이 새부리처럼 뾰족한 7cm  굽의 구두만 신었다. 그 차림으로 수업을 했고 수업이 없을 때는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교실들을 돌아보았다. 동네 구두 수선집 아저씨가 보험 판매일 하느냐고 물으실 만큼 구두굽이 빠른 속도로 닳게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 차림에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그 골목을 지나가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도 어색해서 고개를 들지도 못했고 누가 나와서 시비를 걸 것 같아 무섭기도 했다. 돌아가는 길도 있었으나 돌아가는 길에도 어차피 여관, 모텔뿐이라 차라리 홍등가를 뚫고 다니는 것이 나았다.

              

 그런데 그 건물에서 몇 년 학원을 하는 동안 나는 술집 언니들과 친해졌다. 첫 번째 계기는 다소 당황스럽게 찾아왔다. 어느 날 수업이 한창인 밤 시간이었다.     

 "여기 원장님 어디 있어요? 좀 나와 보라고 하지."     

강의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학부모라고 하기에는 화가 많이 난 터프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학부모님들과의 마찰도 종종 있었던 터이지만 그 목소리는 아무래도 학부모의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다 듣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얼른 나가 봤다.     

"제가 원장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미스코리아 헤어스타일에 굉장히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은 아주머니가 허리춤에 양손을 짚고 서 계셨는데 나를 보더니 그분도 나처럼 당황한 눈치였다.     

"어머나, 원장님이 젊은 언니였네."     

나를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젊은 언니가 원장인 것이 다행히도 그분의 언성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했다.     

 "원장님, 우리 아들이(아가씨들이) 손님 받고 있는데 여기 아들이(학생들이) 가게 지붕 위로 자꾸 뭘 던져서 손님들이 화를 내. 우리는 분위기가 젤로 중요한 장산데 그러면 안 되지."     

그 아주머니는 당신을 '마담'이라고 소개하셨다. 고등학교 때 프랑스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그 단어를 대한민국 강원도 소도시에서 듣게 될 줄이야. 물론 교과서에서 보았던 마담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일단 죄송합니다, 학생들에게 주의 주겠습니다,라고 사과에 사과를 거듭하여 마담을 돌려보냈다.

 

며칠 후 은행에 가는데 그 마담 분이 보였다.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아 망설이다가 예의가 바른 축에 속하는 나는 마담에게 인사를 하고 지난번에는 죄송했다, 만약 아이들이 또 그러면 전화 주시라, 그런 말씀을 드렸던 것 같다. 환한 햇살 아래서 보니 짙게 한 화장이 오히려 주름만 두드러지게 할 만큼 나이가 꽤 든 분이셨다.     

"아이고, 내가 맨날 언니가 이 골목 지나다니는 거 볼 때마다 저런 옷 입고 저렇게 참한 언니는 뭐 하는 언닌가 싶었는데 학원 원장님인 건 그날 처음 알았네. 내가 화가 나서 막 떠들었는데 미안해."     

그다음부터는 볼 때마다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한 번은 내가 마담에게 부탁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농협에 갈 때마다 골목에서 마주치기를 며칠 동안 기다렸는데 이상하게도 기다리니 만나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밝은 햇살에 힘입어 가게문을 노크하면서 마담을 불렀다. 큰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마담 님, 마담 님, 계세요?"     

사실 뭐라고 불러야 되나 고민했는데 술집 언니들이 '마담 언니'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응용하여 '마담 님'을 선택했다. 자다 깬 것 같은 노란 머리의 아가씨가 문을 열더니 나를 보고 흠칫했다.     

"누... 구세요?"     

"저, 여기 골목 입구에 있는 학원 원장인데 마담 님 만나러 왔어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 키 크시고 머리 파마한 분요."     

"........ 들어오실래요? 괜찮겠어요?"     

들어가도 괜찮은지 아닌지 생각할 틈도 없이 얼떨결에 평생 다시 들어가 볼 일 없을 것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원장 언니가 웬일이야? 여길 다 오고! 야, 음료수 한 잔 가져와라! 이뿌게 담아 와! 원장님, 배 안 고파? 김밥 있는데 줄까?"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저, 마담 님,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학원이 끝날 무렵 자녀들을 데리러 오는 아빠들을 상대로 아가씨들이 호객 행위를 하는 일이 잦았다. 쉬었다 가세요.... 놀다 가세요..... 학원을 옮길 생각은 없으시냐는 학부모들의 건의를 거의 매일 듣던 시절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는데 얼마 전부터 고등학교 남학생들 몇몇까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니 교복만 벗으면 학생인지 총각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일 것 같기도 했다. 또 그 녀석들이 호기심에 골목 안을 기웃거렸을 가능성도 있고. 여자인 나조차도 세상의 모든 예쁜 여자들은 다 여기 모여 있구나 싶을 때가 있었으니까.

              

 그날 마담 분께 학원 학생들이 골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테니 학생일 것 같아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호객 행위를 삼가 달라고 동료 마담분들에게 좀 말씀해 주셨으면 하는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학원 끝나는 시간에 학원 근처에 차를 세우고 앉아 있는 분들은 거의 학부모님들이시다....... 사실 상당히 쫄아든 상태로 그런 말씀들을 드렸는데 언제나처럼 마담 님은 화통했다.     

"하모, 하모. 나는 그런 건 생각도 못했네. 우리 가게 아들(아가씨들)도 그랬나 모르겠다. 내가 동네 다른 언니들한테도 얘기해 줄게. 우리도 다 아들을(자식들을) 키우는데 아들(학생들)한테 그러면 안 되지."     

빨갛게 선팅된 가게 안에서 각종 '아들'이 등장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자정이 지나면 큰일 나는 신데렐라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이 더해졌다. 손님이 쑥 들어오면 어쩌지? 아직 대낮이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       

        

 그런 저런 일을 겪으며 술집 언니들하고 안면을 트고 지내던 시절 나는 30대 초반이었는데 외모에 몹시 신경을 썼다. 예뻐 보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권위 있어 보이고 싶었다. 원장 중에서는 나이가 어린 편이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부모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만만해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 돈을 내고 다니는데도 학생들을 '자른다'는 소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나의 학원은 화제성에서 수위를 다투는 편이었다. 그런 학원 이미지 때문에 상담을 온 학부모들이 나를 보고 말하는 첫마디는 항상 둘 중의 하나였다.               

"원장님이세요? 어머, 원장님이 굉장히 젊으시네요...."     

"원장님이세요? 어머, 원장님이 여자분이셨네요...."                 

 테일러칼라의 재킷, 흰 셔츠, 무릎 선에 딱 걸리는 H라인 스커트를 입고 검은색 7cm 굽의 구두만 신었다. 그리고 짧은 단발머리에 검은색 네모난 뿔테 안경. 항상 그렇게 하고 있어도 체격이 작고 나이가 적어 내 노력만큼의 효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아무튼 누군가가 나를 만만하게 볼까 봐 전전긍긍하던 때였다.               


 짧은 단발머리를 일정한 길이로 항상 유지하기 위해 2-3주마다 미용실에 가서 코딱지만큼씩 다듬곤 했는데 15분 정도 걸으면 시내 미용실이 즐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머리를 자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예상치 않은 상담을 하느라 시간이 늦어졌다. 다음 날 잘라도 되련만 성격이 못돼 먹어서 미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원 근처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원장 언니가 웬일이야?"     

"누구라고?"     

"아, 왜 골목 입구에 학원 있잖아. 거기 원장 언니야."     

"진짜? 그 학원 원장님이 여자였어?"     

"그래, 마담 언니가 그랬잖아. 이대 나온 원장님이라고."     

 왁자지껄, 중구난방, 정신이 없었다. 그 미용실은 동네 술집 언니들이 영업 전에 모두 모여 머리를 하는 '언니들의 미용실'이었던 것이다.               

"원장님, 일로 와. 여기 앉아. 오뎅 좀 드시고."     

"야, 원장님이 오뎅 먹겠냐? 커피나 한 잔 타 드려..."     

미용실은 밖에서 봤을 때처럼 코딱지만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 봤자 손톱만 한 넓이였고 머리를 하는 언니들이 앉는 의자 뒤에 연탄난로가 있고 그 위에는 세숫대야만 한 냄비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언니들은 연탄난로 주변 소파에 앉아 화장을 하고 오뎅을 먹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머리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방송국의 연예인들 대기실과 거의 흡사한 모양이었고 각자 앞에 놓인 화장 바구니에는 온갖 알록달록한 케이스가 가득했다.               

 

 예상치 못했던 내부 풍경이었지만 문을 열고 다시 나가기도 그렇고 해서 쭈뼛쭈뼛 한 걸음 떼며 영화 차이나타운의 김혜수가 울고 갈 만큼의 포스를 풍기는 원장님과 시선을 맞췄다. 덩치는 김혜수의 두 배 정도 되어 보였다.     

"저, 많이 기다려야 하면 다음에 올게요."     

그냥 나가기 위한 최선의 작전이었다.     

"야야, 원장님부터 하시라 그래."     

"그래그래. 원장 언니 바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포스의 미용실 원장님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원장님, 요 언니 머리만 마저 하고 먼저 해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셔."               

언니들이 궁둥이를 들썩들썩하니 1인분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언니들 사이에 꼭 낀 내게 누군가가 오뎅 막대기를 쥐어 주었다.     

"야, 미친년아, 원장님이 오뎅 먹겠냐고? 그리고 우리 먹던 거 막 드리고 그러지 마."     

"이년이 뭐래? 그럼 우리만 먹냐? 인정머리 없는 년아!"     

"저, 오뎅 좋아하는데요. 먹어도 될까요?"     

"아, 오뎅 좋아해요? 그럼 실컷 드셔. 오뎅 냉장고에 엄청 많아."     

술집 언니들은 나에게 반말과 높임말을 반반 섞는, 그네들만의 독특한 말투를 구사했다.               


사실 배가 몹시 고프긴 했다. 하루 한 끼 먹고 일하던 시절이라 내 신조 중 하나가 '있을 때 먹자'였을 정도로 늘 배가 고팠다. 그래서 언니들 틈에 끼어 앉아 오뎅을 간장에 찍어 우물우물 먹었는데 '요 언니' 머리 손질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오뎅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오뎅이 줄어들면 언니 하나가 냉장고에 가서 오뎅을 더 꺼내다 냄비 한편에 쑥 집어넣었고 언니들은 쉴 새 없이 양손을 움직여 화장을 하고 오뎅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나는 그 미용실 단골이 되었다. 우선 엄청난 포스의 원장님 손이 솥뚜껑처럼 생긴 것과는 달리 의외로 섬세했다. 미용실에 가서 아무리 조금만 다듬어 달라고 해도 항상 예상보다 많이 자른다는 것, 여자들은 다 알 것이다. 그런데 그 원장님은 안 그랬다. 미용실 원장님은 학원 원장님만 알 만큼 머리를 살짝 다듬는 재주가 있었다. 다음으로는.... 고백하건대 오뎅이나 김밥, 떡 그런 주전부리를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이 좋았고 언니들의 화장 솜씨를 보는 것도 경이로웠고 저 멀리 다른 행성의 이야기를 아무 부담 없이 마음을 슬쩍 풀어놓고 듣는 것도 좋았다. 학원일을 제외하면 누구에게 말을 걸 일도, 누구의 말을 들을 일도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2, 3주마다 언니들을 만나면서 그녀들의 세계를 꽤 많이 알게 되었다. 언니들은 '달머리'를 한다고 했다. 매일매일 와서 머리를 하고 한꺼번에 돈을 내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학생들도 할 만큼 대중화되었지만 그때는 아무나 못했던 붙임머리를 하는 언니들이 많았다. 그때 돈으로 수십 만 원이었고 붙임머리는 아침 일찍 예약을 하고 와서 몇 시간씩 하는데 모두들 꾸벅꾸벅 졸아서 원장님으로부터 '이년아, 고개 들어!'라는 호통을 듣는다고 했다. 또 언니들은 구불구불 굵은 웨이브 머리를 가장 많이 했는데 볼륨을 빵빵하게 살리고 밤새 스타일이 유지되도록 짱짱하게 마는 경우가 많아선지 언니들 머리를 말아 주는 가격은 일반인들을 상대로 하는 것보다 비쌌다. 하긴, 매일매일 미스코리아 대회 나가듯 손질하는 거니까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많았다. 기차역 주변의 홍등가는 술집 언니들 중에서도 잘 나가는 언니들이 오는 곳은 아니라고 했다. 세상의 예쁜 여자들은 다 여기 있구나 싶었는데 가까이에서 화장하기 전 얼굴을 보니 젊은 시절은 한참 전에 지났을 아줌마들이 대부분이었고 젊고 어린 분들은 매우 드물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나이 든 여자가 술 따라 줘도 남자들이 오나.            

   

 나는 지금까지도 화장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입을 약간 헤벌쭉 벌리고 감탄하면서 멋지게 화장하는 걸 지켜보는 건 좋아한다. 도무지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화장 전후가 다른 경우가 있는데 그 언니들도 그랬다. 화장을 안 한 언니들도 이목구비가 서구적으로 또렷하고 서글서글한 미인이었지만 시든 꽃처럼 푸석푸석하여 어디선가 먼지가 폴폴 날릴 것만 같았다. 그랬던 언니들이 화장을 하고 나면 새빨간 꽃처럼 피어나 생동감이 넘쳤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이 수분감이 충만해졌다. 이성복 시인이 '다시 봄이 왔다'라는 시에서 말한 것처럼 세차장 고무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기 같아졌다.


 언니들 대화의 주제는 돈, 병, 성형수술, 진상 손님, 이렇게 네 가지가 가장 많았다. 쓰는 돈이 많고 소소하게 성형 수술을 계속해선지 돈을 통 모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방의 소도시에도 유명한 성형외과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한 군데 두 군데 얼굴에 칼을 대기 시작해서 한 바뀌 돌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손을 대야 하고 그러다 보면 성형 중독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 간 이야기도 단골로 등장했는데 나이가 지긋한 언니들일수록 온몸에 성한 데가 없어 보였다. 오뎅과 함께 한 움큼 씩 약을 먹는 언니들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밤이면 밤마다 진상 손님은 가게별로 다 있는지 최고의 진상 손님을 뽑은 콘테스트가 열리곤 했다. 제일 흔한 게 비싼 술 왕창 시켜 먹고 나서 돈 없다고 배 째라 하는 손님 이야기였다. 언니들도 술장사, 사람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척하면 척인데 배 째라 할 것 같아 보여서 미리 돈부터 내라 하면 정말 배를 째려고 덤벼 드는 손님들이 많은 듯했다. 그다음으로는 각종 고약한 술버릇....     

"야야, 원장 언니 있는데 그런 얘기는 하지 마."     

"어머어머, 맞다. 원장님, 이렇게 지저분한 얘기는 들어도 못 들은 걸로, 알지?"     

이러면서 화제를 바꾸어도 어차피 이야기는 또 진상 손님을 주제로 이어지고 내 귀는 쫑긋해지고 내 입은 우물우물했다.        

       

 술집 언니들은 나를 좋아해줬다. 동경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가끔은 안쓰러워도 했다.     

"원장님은 내가 아는 여자 중에 가방 끈이 제일 긴 사람이야."     

"나도 이대 나온 여자 실제로 본 건 처음이야."     

"나는 이대 나온 여자랑 오뎅 같이 먹는 게 처음이다, 깔깔깔!"     

"나도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할 걸."     

"미친년, 공부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원장님은 왜 맨날 굶고 살아? 그렇게 돈 벌어 봐야 소용없어. 나중에 몸 망가지고 후회해."     

"원장님은 왜 명품 가방 안 사? 돈 벌어서 다 뭐 해? 집에 빚 있어?"     

"내가 원장님이면 맨날 초밥만 먹고 구찌만 살 건데!"               

그 언니들의 예언대로 나는 소용없는 돈을 벌었고 몸 망가진 후 후회했다. 그 언니들은 아직도 그 미용실에서 머리를 말고 오뎅을 먹고 화장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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