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인생에 해주고 싶은 말 한마디

윤동주의 자화상

by 최순주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 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그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은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에 쓰여진 시이다. 지식인으로서 윤동주는 민족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깊은 부끄러움과 자책감을 느꼈다. 이 시는 우물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자아 성찰과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아갈 것을 권유하고 있다.




열정과 삶을 마음껏 불태웠던 해외 자원봉사 시절 직장동료들과 공동생활을 했다.

젊다고 하기보다 어렸던 그 시설 동료들과 많이도 싸웠고, 내면적으로 갈등도 심했다.

살아가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내 가치와 사회적 통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은 말과 행동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는 때 말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가까이서, 긴밀하게 관계했기 때문에 가감 없이 서로의 연약함을 보이기도 했다.

보통의 기준,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작고 사소한 일로 많은 감정싸움을 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어?”

“그건 잘못된 거 아니야?”

그냥 미워하거나, 무시하거나, 혼자 단절하면 그만일 것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성숙한 사람이 되길 바랐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싶었다.

그러나 성숙으로 나아가는 길은 아주 좁고 힘겨웠다.



마주한 현실을 소화하기에는 버거움을 느꼈고 무던히도 고뇌했다.

넉넉한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러기엔 마음이 성숙하지 못했다.

고뇌의 결말은,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이었다.

『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 7장 1-5절) 』



내가 바라는 가치, 뜻을 이루며 사는데 성서는 중요한 가르침이었고,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깨닫게 하는 스승이었다.


나 자신에게서 보이는 흠, 부족함, 연약함을 깨닫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역지사지.


다른 이의 작은 약함도 내 눈에는 크게 보이지만,

나를 깊이 들여다보면 나에게도 똑같은,

어쩌면 그보다 더 큰 흠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성서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기로 결심했고, 연습했다.

어려웠고, 힘들었다.


끊임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고집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들로 대체해야 했다.


기다리고, 견뎌낸 시간을 보내고 나는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말 한마디’를 가슴으로 얻게 되었다.

이 한마디는 비단 관계를 넘어서 인생을 향한 중요한 한마디일 것이다.

‘그럴 수 있지’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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