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날아올라(작가님)
To: 날아올라(작가님)
[감상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되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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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brunchbook/still-mom
날아올라 작가님, 작가님의 글은 단순히 과거를 고발하는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을 재료로 삼아지어 올린 희망의 성전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속에서
'복구'라는 재능을 발견해 낸 작가님의 통찰은 많은 이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줍니다.
특히 어머니를 향한 미움이 연민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아들에게는 다른 세상을 보여주겠노라는 다짐은 인간의 의지가 운명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작가님의 삶 자체가 이미 하나의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스스로의 천장을 받쳐준 남편분과, 작가님의 온전한 우주가 된 아드님과 함께 이제는 가시덤불이 아닌 꽃길만 걸으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작가님의 '날아오름'이 더 많은 이들의 하늘이 되어주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작가님의 다음 행보를 함께 응원하고 싶습니다.
2026년 3월 날아올라 작가님께 드리는 편지 김지영 올림
"날아올라" 작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되었다》를 읽고
우리는 누구나 선택하지 못한 운명의 굴레 속에 던져진 존재들입니다.
날아올라 작가의 글은 그 운명의 폭풍우
중에서도 가장 시리고 아픈 곳, ‘조현병 어머니’라는 거친 바다 위에서 홀로 조각배를 저어온 한 인간의 처절한 생존 기록이자 숭고한 승전보입니다.
그녀의 문장은 화려한 수식어 대신,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고도 따뜻합니다.
유년의 기억을 ‘가시덤불에 갇힌 어린 새’로 비유한 대목에서 우리는 숨을 멈추게 됩니다.
돌봄의 주체가 되어야 할 부모가 오히려 공포의 근원이 되었을 때, 아이가 감당해야 했던 그
고독은 우주의 검은 구멍처럼 깊고 적막했을 것입니다.
날아올라 작가의 삶은 '자기 구원'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어머니의 병색을 의학적 지식(간호사)으로 이해하는 것과, 그 병이 할퀴고 간 마음의
상처를 수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비극임을 그녀는 고백합니다.
흰 가운을 입고 타인을 치유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내면에서는 비명을 지르던 어린아이를 마주하는 과정은, 마치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길과 닮아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대물림의 고리를 끊어내는 결단’입니다.
아들을 품에 안았을 때 느꼈던 그 지독한 공포
'나도 엄마처럼 되면 어떡하지? 는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 공포에 함몰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상처를 '복구'라는 강점으로 승화시키며, 아들에게는 가시덤불이 아닌 따스한 햇살을 물려주겠노라 선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모성애의 발로를 넘어, 한 인간이 자신의 역사적 비극을 주체적으로 종결짓는
철학적 도약입니다.
남편이라는 ‘무너진 천장을 받쳐준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육아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눈물겨운 위로를 건넵니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 줬을 엄마를 위해, 나 자신을 다독이기 시작했다"는 고백은 원망을 연민으로, 고통을 승화로 바꾼 인격적 완성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이제 더 이상 가시덤불 속의 어린 새가 아닙니다.
자신의 상처를 별자리 삼아 누군가의 밤길을 비추는 길잡이별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아픈 과거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절박한 기도이자, "우리도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실재하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날아올라" 작가님 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초신성이 폭발하며 남긴 잔해 속에서 비로소 새로운 행성이 태어나듯, 우리의 가장
처참했던 무너짐은 단지 당신이라는 아름다운 "성계"를 빚어내기 위한 우주적
"산고"였음을....,
[작은 안내]
제 글에 소중한 발자국을 남겨주시는
작가님들의 공간에 자주 머물곤 합니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작가님의 글이 제 마음을 타고 흘러 이곳에 따뜻한 감상문으로 배달될지도 모릅니다. 그 기분 좋은 우연을 기쁘게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