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아래 그대
윤봉길의사 부인 배용순 여사를 아시나요
소나무 아래 그대
푸른 하늘 아래 굳건히 서 있는 소나무들.
그 숲 속, 고요한 언덕 위에 당신이 있습니다.
당신은 단정하게 풀로 덮인 봉분 하나로,
그 옆에 놓인 비석은 당신의 이름을 말없이
새기고 있습니다.
사진 속 당신의 묘소는 평온해 보이지만, 당신의 삶이 그토록 평온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묘소 앞에서 한참을 서성입니다.
비석에 새겨진 '배용순' 석 자를 보며, 나는 당신의 삶의 무게를, 그 고단함을 감히 짐작해 봅니다.
15살의 어린 신부, 16살의 남편과 결혼하여 시작된 삶. 그 시절의 삶이 얼마나 고됐을지는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시작한 살림,
그리고 당신의 남편은 세상을 바꾸겠다며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울려 퍼진 의거의 함성은 당신에게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영원한 이별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스물다섯, 아직 꽃다운 나이에 미망인이 된 당신의 삶은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사람들은 당신을 '의사의 아내'라 부르며 존경의 눈빛을 보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눈빛 뒤에 숨겨진 당신의 고통은
얼마나 깊었을까요.
홀로 시부모를 모시고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나날들. 남편의 빈자리는 어떤 말로도 채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해가 뜨고 질 때마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홀로 견뎌야 했던 밤들은 얼마나 길었을까요. 당신의 마음은 매 순간 찢어지는 듯 아팠을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 경아. 아프지 마라."
아홉 살 어린 나이에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둘째 아들, 윤경. 자식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남편의 빈자리를 메우려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쳤을 텐데, 어린 자식마저 먼저 보내야 했던 그 비통함.
그 슬픔은 당신의 가슴에 영원히 묻힌 채,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저 묵묵히, 땅이 울리도록 눈물을 쏟으며 견뎌냈을 것입니다.
당신의 삶은 마치 한 편의 애틋한 서사시 같습니다.
남편의 뜻을 기리며 재혼하지 않고 시부모를 극진히 모신 효부. 그리고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
당신은 그저 한 사람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본분을 다했을 뿐이지만,
그 모습은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짊어진 한 여인의 위대한 초상이 되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조국에 대한 헌신을 포기하지 않은 당신의 굳건함은, 지금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1988년, 당신은 82세의 나이로 긴 삶의 여정을 마감했습니다. 긴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지나, 당신은 마침내 사랑하는 남편이 잠든 고향 땅, 예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평화로운 언덕 위,
이제 당신은 남편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영원히 잠들어 있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 아래, 당신의 삶을 기리는 글귀는 없지만, 당신의 삶 자체가 가장 숭고한 기록이 되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당신이 견뎌낸 고단함, 당신의 애틋한 모정, 그리고 조국을 향한 헌신은 이 땅의 소나무들처럼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당신은 진정, 이 시대의 위대한 어머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