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자리, 해미읍성 내아(內衙)

고요한 한옥, 그리운 삶의 터

by 내셔널지영그래픽
시간이 머무는 자리, 해미읍성 내아(內衙)
(고요한 한옥, 그리운 삶의 터)


​굳건한 성벽이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해미읍성, 그 안에 숨겨진 고요한 심장과도 같은 곳이 있다. 바로 관리와 그 가족들이 삶의 숨결을 나누었던 '내아(內衙)' 다.

해미읍성 내아(內衙)

사진 속 내아(內衙)의 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푸른 잔디밭 위에서 소박하지만 정갈한 아름다움을 고요히 뽐내고 있다.


거대한 성벽의 위용 뒤에 숨겨진 소박한 '살림집'이라는 설명은, 이곳이 단순한 행정 공간이 아닌,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깃든 따뜻한 공간이었음을 말해준다.

해미읍성 내아(內衙) 입구

​투박한 돌을 쌓아 올린 담장과 단단한 목재 기둥,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운 깨끗한 흰색 벽. 내아(內衙)는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바라본 나무 창살문은 무수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을 문, 그 안에서 새어 나왔을 가족들의 웃음소리, 혹은 한밤중 호롱불 아래에서 나누었을 소곤거리는 대화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하다.


​이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한 가족의 하루가 펼쳐지던 무대였다.

관복을 입고 근엄한 표정으로 성을 다스리던 관리가 문을 닫고 들어서는 순간, 한 집안의 평범한 아버지이자 가장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아이들이 마루를 뛰어다니고, 어머니는 소박한 밥상을 차렸으며, 때로는 근심과 걱정이 밤을 지새우게 했을 그 흔적들이 이 공간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창호지 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은 때로는 따뜻한 위안이 되고, 때로는 희망을 비추는 등불이 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2000년 11월,

발굴 조사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비로소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훼손되었던 과거의 흔적을 파헤쳐 그 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을 재건하는 것을 넘어 잊혔던 역사의 숨결을 되살리는 숭고한 작업이었으리라. 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정교한 목조 구조물과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은, 과거의 기술과 현재의 정성이 만나 이루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이제 내아(內衙)는 더 이상 낡은 폐허가 아닌,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가 되었다.

푸른 잔디밭 위를 걸으며 옛 삶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동안, 우리는 잠시 잊고 지냈던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하게 된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곳에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이 돌담과 나무 기둥에 새겨져 바람이 불 때마다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것만 같다.

​해미읍성 내아(內衙)는 그렇게 조용히 서서, 화려한 유적지보다 더 깊은 감동을 전한다.

이곳은 단지 '옛 관사'가 아니라, 삶을 살아냈던 사람들이 남긴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집이다.

성을 지키는 굳건한 힘과 함께, 그 안에서 피어난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가 바로 해미읍성.내아(內衙)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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