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당신 얼굴을 보며 든 생각,
"어둠 속에 그대를 보고 있으니, 작지만 아름다운 얼굴이 꽉 찬다. 당신은 결국 내 전부다."
새벽 여섯 시 반, 알람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아이폰 만의 독특한 알람 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다. 영국은 밤이 길다. 아침이 늦는 건 아니지만, 유독 밤이 깊고 길다. 해 지는 시간이 오늘 기준 오후 3시 40분이다. 수업을 듣고 나오면 밤이 되어 있으니, 이것도 참 한편으로는 웃길 일이다. 이제나 저제나 하여간 여섯 시 반 알람 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알람을 끄며 보니 이미 1번과 2번 타자 알람은 내가 가볍게 무시해 준 흔적이 남아있다. 듣지도 못했다.
아직 해가 오르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의 아침의 어둠이 밤보다 더 깊다. 칠흑 같은 어둠이다. 창문 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난 지금 아직 누워있는 상태다. 집에 아날로그시계도 없다 보니 오직 하나뿐인 그 사람의 가지런한 복식 호흡만 공기 가운데를 진동하며 흐른다. 들숨과 날숨의 헤르츠(HZ)가 긴 것을 보니, 아직 깊은 잠 속에서 그대 만의 꿈을 꾸며 기쁨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럴 때는 깨우지 않는 게 국제 매너일 것이다.
한국에서 일을 10년 가까이하며 스스로의 경력을 쌓던 나의 그대는 나와의 미래를 위해 한국을 함께 떠나왔다. 10년의 직장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그 날의 파티에서 그렇게도 눈물이 쏟아지더라는 말을 하던 그대의 표정이 문득 생각이 났다.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아까웠을 것이다. 스스로의 꿈을 향해 달리던 트랙에서 그녀는 갑자기 멈추어 옆 오솔길로 나와서 나란 이방인과 함께 새로운 인생길을 걷는 중이다. 다른 땅과 물, 그리고 공기 속에서.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 테두리가 아련하게 눈에 서려왔다. 빛 하나 없는 이 칠흑의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동그란 옥빛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어두워 보이지도 않는 그대의 이목구비가 머릿속에 상상으로 비쳐왔다. 화장기 없는 그대의 옥 같은 낯 틀을 응시한다. 이 순간만큼은 근심 없이 저렇게 깊은 숨을 쉬며 삶을 역으로 느껴가는 당신의 깊은 잠을 그저 난 미안한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매번 우리를 쫒아오는 아침보다 당신이 그렇게 깊이 침잠하여 더 깊고 편한 숨을 쉴 수 있는 이 밤이 고마운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영국 스타일의 여우비다. 나가서 맞아도 맞는 것 같지 않지만, 맞다 보면 그 정체성이 비가 맞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중성적 기상이다. 그래서 그 깊은 아침의 밤에도 저 비가 땅을 치는 소리는 내 귀를 울리지 않았나 보다. 고마운 비다. 덕분에 운동을 하지 않을 명분이 생겼기 때문에. 오늘 그대가 깊은 잠 속에서 일어나 어둡지만 밝은 이 아침을 맞는다면, 수업을 마치고 같이 우산이라도 쓰고 나가 시원한 영국의 초겨울을 느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