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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기적 Aug 08. 2024

잊지 못할 그 해 여름

"첫째 언니"

우리 아버지는 십남매로 서열은 여섯번째, 아들 중에서는 두번째다.

아버지는 중학교 때 일찍이 할아버지를 여위었다 들었다. 경기도로 떠난 큰 아버지를 제외하고 집안의 둘째 남자였던 아버지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지금까지도 정년을 넘게 일하고 있는 건축업을 계속 하시면서 남은 형제들과 할머니까지 먹여 살렸던 것이다. 나의 유년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상당히 엄하고 가부장적인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언니들이 아버지한테 회초리를 맞으며 혼나는 모습을 보며 소파 의자 뒤에서 흐느끼며 우는 날들이 많았다. 


아버지의 엄한 가르침 때문이었을까. 큰 언니는 일찍이 아버지한테 상처를 받고 마음을 닫은 모습이었고 집에 오면 늘 문을 닫고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집이라는 한 공간에 머물러 있었지만 문으로 가로막힌 서로를 향한 벽은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었다. 큰 언니와 밥이라도 함께 먹을 때면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이사를 했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 한 할머니와도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처음 이사를 가게 된 집은 2층짜리 복층이었고 집 안에 계단이 있었다. 1층에는 부모님 방, 2층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다. 첫 번째 방은 큰 베란다가 있는 햇볕이 잘 들어오는 방이었고, 두 번째 방은 붙박이장 하나와 창문 두 개가 나 있었지만 어두웠던 방이었다. 큰 언니는 나에게 방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다. 나는 햇볕이 잘 들어오는 첫 번째 방을 선택했다. 그렇게 첫 번째 방은 나와 작은 언니가 쓰고 두 번째 방은 큰 언니가 쓰게 되었다. 


고등학교 자퇴 후 세상과 마음의 문을 닫은 큰 언니는 붙박이장 안에 노트북 하나를 가지고 들어가 생활을 했다. 주로 방 밖으로 나오는 시간은 새벽 1~3시 사이. 도둑 고양이 마냥 사람이 없는 시간에 주방으로 나와 한끼 정도를 먹는 것 같았다. 


이상한 날이었다.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는 야간에도 일이 있으면 밤낮 없이 현장으로 가서 일을 하셨다. 평소 어머니는 따라가곤 하셨는데 그날따라 가지 않겠다고 하셨고, 힘든 어머니를 대신해 내가 가야겠다고 나섰다. 모기가 들끓는 열대야의 한 여름이었다. 새벽 1시 트럭 조수석에 앉아 새벽에서 힘들게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집에 갈 기미는 안 보이고 모기가 몸을 물고 졸음이 몰려오는 그 짜증을 나는 눈물로 표출해내고 말았다. 


새벽 4시가 다 되어 우리 부녀는 집으로 돌아왔고 첫 번째 '사건'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 뒤, 인생 최대의 비극을 맞이했다. 수능이 끝나고 갓 스무 살이 되어 맞이한 설날 차디찬 겨울에 큰 언니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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