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의 한 달은

신입간호사 일기

by 수써니샤인

입사 후 많은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사회초년생은 본인의 삶만 살피기 바쁠 줄 알았는데

내 생각보다 타인의 삶을 바라볼 시간이 많았다.


우리가 보는 누군가의 삶은 극히 일부,

특히 그 수많은 시간의 조각들 중

가장 빛나는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두려움이 많은 존재여서

자신의 아픔과 고민을 선뜻 드러내기 두려워한다.

누군가 나의 상처나 두려움을 이용할까 봐,

내가 나약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혹은 스스로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힘들까 봐.

나 또한 이런 이야기들을 나열할 수 있다는 것은

비슷한 시간을 보내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도저히 흘러나오는 감정들을 어찌할 줄 몰라

휴지조각을 붙들고 눈물들로 흘려버리기도 했고

도피하듯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필사적으로 잠을 청하기도 했으며

스스로를 괜찮다고 다독이며 받았던 다이어리에

내 시간들을 토해내듯 적어버렸다.




참 잔인한 현실이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더 두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그런 흔해 빠진 위로를 건네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신 옆의 너무나도 괜찮아 보이는 누군가도

당신과 비슷한 고민을 끌어안고

하루하루 겨우 눈을 감아대며,

그렇게 턱턱 올라오는 숨을 겨우 쉬며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환자들은

모두 당신처럼 평범한 하루하루들을 보내다

갑작스레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들이다.


골초처럼 줄담배를 피우거나,

매일같이 술을 마셨거나,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질환이 아니다.

유전적 소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하루아침에

“백혈병 환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이들도 항암으로 숭숭 빠진 머리를 곱게 밀고,

혈액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가며,

햇빛을 보지 못해 뽀얗게 변한 얼굴로

매일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살아가고 있다.

환자가 되면 당연히 예민해지고

누군갈 만나는 걸 꺼릴 수밖에 없는데

와중에도 인사를 보내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는 비로소 생명 속 강인함을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하루들을 보내겠다는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겼다.

나의 힘듦을 인정하고 직시하되

나의 힘듦에 취해 타인의 힘듦을 가볍게 여기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이처럼 내가 겪은 혈액내과는

살얼음판을 걸어가듯 고요한 곳이지만

그 내실엔 매일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들이

이토록 간절하게, 이토록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다.


부디 나다운 하루를 아름답게 쌓아가는 사람이 되길.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저 말고

내 아픔을 드러낼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길.

복잡한 다짐들과 고민들이 뒤얽힌 시간들이 지나간다.

얼기설기 얽힌 마음들을 다 끌어안고

내일은 0.1%라도 성장한 간호사로

환자들을 보살필 수 있기를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린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는 거다.

매일 처음 겪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어느 부분에서는 초짜이며

어느 부분에서는 누군가를 알려줘야 하는 입장이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스스로를 다독이고 안아주고

나의 어설퍼만 보였던 그런 하루를

쓰다듬어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 어설퍼도 괜찮다!

우리 모두 오늘을 보내는 게 처음이니까!



-2025.10.10 22:21-

keyword
작가의 이전글sin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