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말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가슴 떨려하던 시간이 있었어.
10시에 일어나던 내가 7시에 일어났던 이유는 너의 목소리를 조금 더 듣기 위함이었고
12시만 되면 기절하듯 잠들던 내가 12시에 전화를 걸던 이유는 너와 2시간 정도 추억을 쌓기 위함이었어.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그저 찰칵대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로드하던 게 다였던 것이
너와의 카톡창을 대신 채우게 되고
네가 보내는 이모티콘이 하트를 들고 있을 땐 내 심장도 동시에 쥐어잡히듯 흔들렸지.
남들이 보면 뭐가 웃기나 싶은 주제로 밤새 떠들고 웃음소리를 주체할 수 없어 배를 부여잡고 깔깔거렸고
길을 걷다 문득 보고 싶어 진 네 눈. 뭐가 그리 좋은지 이유도 없이 헤실거렸지.
아, 그땐 그냥 네 눈동자가 내 온 세상 같았어. 한강보다 예뻤고 별이 심장에 콕 박히는 느낌이었어.
날아다니는 별들이 가슴에 담긴다는 건 특별한 거잖아. 그게 우리가 특별하다는 걸 증명해 줬어.
나는 둔한 사람이라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면 사랑이 아닌가 싶었거든.
그런데 너랑 있으면 그런 느낌이 빈번히 들었고 이건 절대 흔한 게 아니었거든.
카페에서 처음 먹어본다는 아인슈페너를 시키고 크림을 윗입술에 잔뜩 묻힌 바보 같은 너도,
돈가스를 먹다 튀김가루를 바지에 오소소 떨어뜨린 엉뚱한 모습도.
그냥 너였기 때문에 다 이해되고 좋아했던 시간이었어.
나도 부족하고 너도 부족했지만 서로를 채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나아간 게 아닌가 싶어.
그렇게 시작된 약속은 어느새 하루하루 쌓여서 X 년이란 시간을 만들고,
누구나 그러하듯 고갈되었지.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
아마 사랑을 시작할 때 처음 속에 품은 양이 소진된 게 아닌가 싶어.
이기적이지?
그렇지만 내 마음이 그랬어.
그리고 문득 내가 고백했어, '나 권태기인 것 같아.'
그 이야기를 듣는 넌 겉으로는 괜찮다고 답했어.
그렇지만 눈에 맺힌 눈물이 내가 너에게 칼을 꽂았음을 깨닫게 해 줬어.
말 안 해도 다 알았어.
나는 이미 너를 너무 잘 알아서, 모르고 싶은 순간에도 너를 알았어.
그런 널 보고 있자니 난 잔뜩 잘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았어.
널 힘들게 하기 싫어서 얼른 멀어져야겠다고 생각했어.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너를 알았어.
있지, 난 너를 너무 잘 알아서 확신할 수 있었어.
네가 모르던 너의 모습까지.
나는 길을 걷다 바라보던 너의 눈 속에서 강인함을 보았고
내게 든든한 어깨를 내줄 줄 아는 모습에서 독립심을 봤어.
우린 잘 살 거야.
서로가 곁에 없어도.
그래도 우리 행복했었지 뭐.
술 마시다 이런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을 사이로 마무리하고 싶었어.
나에게 넌 그저 삶의 여러 장 속의 행복한 기억이었음 했어.
헤어짐을 고한 뒤 사진첩에 있던 수천 장의 추억을 순식간에 지워버렸고
감당도 안되게 쌓인 카톡방은 '나가기'를 눌러 도피하듯 떠났고
번호는 그냥 지웠어. 그냥.. 지워야 할 것 같았어.
지난날의 특별함을 보여주듯 다닥다닥 네 별명 주위에 붙은 이모지들이 조금은 날 울렁거리게 했어.
그 울렁임이 이별에서 온 건지, 미련에서 온 건지, 사랑에서 온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공교롭게도 우리가 처음 사랑을 시작했을 때처럼 예쁜 밤이 내려앉은 시간대였어.
헤어진 다음날, 매일 오던 너의 애정 어린 연락이 오질 않았어.
난 또 똑같이 7시에 일어났는데,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어졌어.
혼자는 생각보다 외롭더라고.
그래서 점차 바빠지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어.
난 너의 연인이 아니더라도 자랑스럽고 싶었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 움직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지.
모든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사랑을 찾아 박쥐처럼 퍼덕였어.
웃기지? 바보처럼 이리저리.
그래서 넌 어떻게 지내?
우리, 이 정도는 물을 수 있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