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elo Oct 16. 2023

해보기로 했다. 장거리 연애

2012 까미노

2012. 8. 26 (일)


피니에스테라로 가는 두 번째 날. 오늘은 32km를 걸었다. 첫날 다시 걸어서 힘들었지만 둘째 날은 생각보다 몸이 가벼워졌다. 어제만 해도 내가 왜 버스를 안 타고 이 길마저 걸어야 하나 후회 있었는데 오늘이야 말로 내가 걸어서 바다를 보러 가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전의 길과 달리 주변에 식당도 없고 아침 해결할 공간이 없어 애를 좀 먹었으나 여기는 끝도 없는 산길이라 힘들긴 했다. 그래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걷는 게 힘들진 않았다. 


역시 풍경이 아름다워야 걸을 맛이 난다. 중간엔 넓은 들판도 보이고 그림에서만 볼 것 같은 얼룩소들도 보였다. 길 중간에 여유롭게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강아지도 보였다. 사진을 찍어도 일어나지도 않는 마을 강아지. 이곳의 평화로움은 이전에 경험했던 길과 분명 달랐다.  피니에스테라로 가는 길은 바다를 향해서 그런지 덥지도 않고 바람 때문에 시원하다. 이런 날씨에 내가 걷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던지. 모든 순간과 풍경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시 한번 이 길을 걷기를 잘했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짝꿍과 아침에 걸어가는 동안 별별 이야기를 다했다. 나는 내 감정을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반면 이 친구는 돌려서 말하거나 숨기는 듯했다.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더더욱 이 친구는 외국인이 우리의 대화가 모국어로 진행되지 않아 이렇다면 우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사람에게만큼은 모든 걸 말하고 싶고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둘 다 약속했다. 절대 서로 숨기는 것 없도록. 이 아이도 상처받는 게 두려웠다고 한다. 나도 그 마음 충분히 이해했다. 나조차도 너무 상처받는 게 무섭고 짝꿍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으니. 이 친구도 나에 대한 확실히 없었고 그냥 타이밍을 기다렸다고 말해줬다. 그렇지만 이제는 서로를 신뢰한다. 아직도 우리의 미래는 모르지만 서로 노력할 거다.


걷는 동안에도 영화 얘기를 계속했다. 참 좋은 게 둘의 공통 관심사가 많다는 것. 같이 길에서 원스노래를 손잡고 부르며 걷는데 귀여웠다. 그때만큼은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우린 약속했다. 9월엔 내가 프랑스로 가고 10월엔 짝꿍이 독일로 오고 그리고 12월엔 같이 스페인 집으로 같이 가자고. 듣기만 해도 꽤나 멋진 계획 같았다. 이제 우린 곧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기 위해서 스카이프도 하고 페이스북도 하고 카톡도 하기로 했다. 연애하기에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우리 둘 다 큰 문제가 없다면 오래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의 희망사항이다. 


내일은 마지막 순례길이다. 앞으로 또 이렇게 걸을 날이 올까.

그냥 날씨만 좋았으면 좋겠다.



이전 20화 올레꾼의 여름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