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산티아고 순례길도 걷고 올레길을 걸은 후에 달라진 점이 있냐고 묻는다면 사실 없다고 말하고 싶다. 말그대로 1000km 를 넘게 걷는 다 하여도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졌거나 더 후져졌다고는 말 못한다. 어찌우리의 인생이 퍽퍽한 길바닥 하나로 변하겠나. 그래도 나에게 남은것 하나는 그 시절을 추억하는 낭만이다.
지난날의 낭만을 꺼내보기에는 일기장 만한게 없었다. 퇴사를 하고 한국으로 갔더니 책장에서 너무 익숙한 빨간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바로 10년전 순례길에서 써오던 일기장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아주 쪽팔릴만큼 두서도 없었고 의식의 흐름대로 낙서하듯 쓴 일기장이었다. 올레길을 걷기로 다짐했던차에 10년전 일기장을 보니 글을 다시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가방에 쏙들어갈만한 가벼운 수첩을 하나 사서 배낭에 넣고 제주도로 향했다.낭만은 결국 내가 만드는거였다.
스페인에서 쓴 1개의 수첩과 제주도에서 써왔던 2개의 수첩을 들고 매일 난 도서관에서 글을 썼다. 퇴사를 마침 한터라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했던 나는 나름 10년전과 10년후의 이야기를 쓰니 새삼 다시 여행을 하는 느낌이 났다. 물론 글을 쓰며 내 글은 왜 이렇게 구린걸까 수천번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 둘은 스페인 순례길이 끝나고 장거리연애를 시작했다. 둘다 동갑이고 학생이었던 터라 매일 스카이프를 달고 살았다. 우린 스페인, 독일, 한국, 영국, 프랑스 4개국을 넘나들며 약 7년간 장거리연애를 했고 지난 3년간은 독일에서 동거해왔었다. 연애기간 총 10년을 지나 올해 1월 독일에서 공식적으로 결혼했다.
10년 연애끝에 독일에서 결혼 한 우리를 어딘가에라도 남기고 싶었다.이게 우리의 끝도 아니고 종지부도 아니지만 괜스레 곱씹고 싶은 소소한 추억들. 한장씩 일기장을 뜯어 폴라로이드처럼 그때 그 순간을 공유해보고 싶었다. 우린 이제 다른 길을 찾아 또 떠날것이다. 다시 걸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렇게 땀흘리며 걸어내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응원해주는 부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다고 , 할 수 있다고 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