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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an 30. 2023

딸아, 결혼은 신중하자


"어이~사돈. 오랜만이야."

"오랜만이네. 사위는 잘 지내고?"

"우리 민우 독감 걸렸어."

"에고고. 고생하겠네. 장모님이 빨리 낫기를 바란다고 전해줘. 하하"

아침 출근길에 사돈이 될뻔한(혹시 진짜 될지도 모르지) 민우엄마를 만났다.




지금은 중2인 방실이(둘째 딸 애칭)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번째 소풍날이었다. 소풍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몇몇 엄마들이 공원에 놀러 갔다. 엄마들은 벤치에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고 아이들은 놀이기구 주변에서 놀고 있었다. 방실이가 영화배우 강동원을 닮은 남자애 손을 잡고 신나게 달려와 말했다.

"엄마, 나 지민이랑 결혼할래. 허락해 줘~"

"뭐... 결혼?"

다짜고짜 결혼을 허락해 달라니 매우 당황스러웠다.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하라고 해, 말라고 해? 지금의 나였다면 '어 그래. 그러던지~' 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매우 심각했다.

"결혼을 한다고? 음... 너네 공부 열심히 해서 둘 다 S대 가면 그때 허락해 줄게."

"그래. 지민아, 우리 공부 열심히 해서 꼭 S대 가자."


며칠 뒤에, 공부 열심히 해서 S대에 입학하면 꼭 결혼하게 해 달라는 장문의 편지까지 써서 내게 주었다. 하지만 공부는 전~혀 열심히 하지 않았고, 지민이랑 열심히 놀기만 했다. 그리고 2학년이 되고 나서는 서로 아는 척도 안 했다. 나만 심각했다.


그로부터 3년 뒤, 막내딸이 5세가 다. 어린이집 같은 반에 BTS 뷔를 닮은 민우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막내딸이 말했다.

"엄마, 나 내일 민우랑 약혼하기로 했어."

이번에는 허락이 아니라 통보였다.

"뭐... 약혼? 너 약혼이 뭔지나 알아? 하하"

둘째 때의 경험이 나를 여유롭게 했다.

"그래. 약혼해라."

다음 날, 가장 예쁜 원피스를 입혀 어린이집을 보냈다. 어린이집 카페에 둘이 귀엽게 뽀뽀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지금 민우와 막내딸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지만 서로 아는 척도 안 한다고 한다. 민우엄마와 나만이 가끔 길에서 만나면 사위와 며느리가 될 뻔했던 아이들의 안부를 물을 뿐이다.


딸아, 엄마가 인생 선배로서 말하자면 연애는 가볍게, 결혼은 신중하게 하거라. 그나저나 우리 딸들은 엄마 닮아서 남자 보는 눈이 참 높구나~!

내가 남자 보는 눈이 높다는 것은 나만 아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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