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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Oct 04. 2023

아래층 천장에서 물벼락이 쏟아진다는 전화를 받았다


"천장에서 물벼락이 쏟아져요."


아래층 어르신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과 내가 이승철 콘서트에 가서 신나게 놀았던 9월 23일 토요일 저녁 여덟 시쯤이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차에 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며 주차장을 막 빠져나가던 중이었다.


이게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소리? 깜짝 놀란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아래층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방과 거실 사이 천장 벽지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삼십 분 전에 갑자기 물이 차 올라서 벽지를 뜯어냈고 쏟아지는 물을 세숫대야로 두 번 정도 받아서 버렸다고 하셨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너무 놀랍고 당혹스러웠지만 웃으면서 죄송하다고, 최대한 빨리 조치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 거야? 우리 집이 문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 집으로 올라와 주방 싱크대, 세탁실을 둘러봤지만 물이 넘치거나 샌 흔적이 없었다. 배관에 문제가 생긴  같으니 어디가 문제인지부터 찾아야 했다. 휴, 추석을 앞두고 돈 나갈 일이 많아서 한숨이 나왔었는데 예정에 없던 일이 또 생겼다.


"일단 나가서 저녁 먹고 들어오자."

"잠깐만, 보험 증권 좀 찾아볼게."

"갔다 와서 찾아. 오래 걸릴 거 같으면 그냥 라면이나 끓여 먹던지."

남편의 목소리가 예민해졌다.


"이왕 벌어진 일 스트레스받지 말자. 보험으로 해결될 거야."

나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고요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이고 막을 수도 없었던 일이니 내려놓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횟집에 가서 요즘 제철인 전어에 소맥을 몇 잔 마시고 나니 이까짓 일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까 들었던 이승철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전어구이


다음 날 새벽에 일찍 눈이 떠져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누출 손해와 관련해 보상받을 수 있는 담보는 실비보험에 가입된  일상생활배상책임과 화재보험에 가입된  급배수시설누출손해 담보이다. 누출손해시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해서 가입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보상에서 제외되는 부분이 많았고 자부담금도 2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보상 청구와 관련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우선 누수탐지 업체를 찾아 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일요일이라 쉬지 않는 업체를 찾기가 힘들었다. 남편이 검색으로 찾아낸 업체에서 오후에 찾아왔다.


두 명이 와서 이런저런 기계들을 꺼냈다. 싱크대 배관으로 내시경을 넣어 보는데 기름 때문에 속이 꽉 막혔다고 한다. 기름을 대충 하수구에 버린 게 부끄러웠다.


가스를 주입해 부글거리는 소리로 누수부위를 찾는다는 기계를 들고 돌아다니다 욕실 온수 배관에서 소리가 난다고 했다. 실 바닥을 팠다. 드릴로 바닥 타일을 여러 장 깨부쉈다. 욕실 온수관이 새서 안에 물이 고여 있었다.


업체 대표가 처음에 백만 원 정도를 얘기했던 비용은 뭐가 어렵고 뭐가 힘들고 누수 부위를 못 찾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자극하며 삼십 분에 오십만 원씩 올라가 250만 원이 되어 있었다.


누수 부위를 못 찾을까 봐 걱정했는데 찾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3~4시간 누수 탐지 한다고 기계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욕실 한 곳 파서 새는 온수관 수리하는 공사비가 250만 원이라고? 너무 터무니없이 느껴져 누수탐지 공사 비용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업체 로그를 찾아보니 아무리 비싸도 비용이 100만 원 정도면 되는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이 우리가 보험 처리를 한다고 하니까 바가지를 씌우는 느낌이 들었다.


"사장님, 제가 생각해 보니까 비용이 너무 비싼데요."

"제가 사전에 다 말씀드렸고 동의하셨잖아요? 이제 와서 왜 그러십니까?"

지금껏 싹싹하던 업체 대표의 표정이 싹 달라졌다. 나는 얼굴이 훅 붉어졌다.

"아니, 그건 통보였잖아요. 제가 인터넷 찾아봤는데 이건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요."


"자긴 가만있어. 내가 얘기할게."

욱하는 나를 말리고 남편이 업체 대표와 이야기를 했다. 업체 대표는 자신들이 가진 기술력이 아니면 이 미세 누수를 찾지 못했을 거라며 깎아줄 수 없다고 했다. 말을 길게 하고 같은 말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성격인 듯했다.


나 혼자였다면 화를 내고는 결국 그 돈을 다 주고 말았을 거다. 남편은 웃으면서 그의 터무니없는 비용 책정에 공감도 해주며 아무리 그래도 앞자리가 2로 가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몇십 분을 앉아서 이야기 한 끝에 결국 남편이 제시한 금액을 결제했다.


업체를 부르기 전에 술을 마시며 마음을 릴랙스 할 게 아니라 사전 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동네 업체였다면 바가지를 씌우지 못했을 텐데 하루 더 참을걸 그랬나... 누수탐지 업체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먼지를 닦아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남편은  모든 게 경험이 없어서이고,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운 거라 생각하자고 했다. 이런 일들을 함께 해결할 남편이 있어 다행이다. 남편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누수탐지 업체에서는 온수관을 고치고 위에 시멘트칠까지만 해주고 돌아갔다. 나머지 마감은 타일 하는 사람을 불러서 해야 한다고 했다. 타일로 덮을 때까지 물이 닿으면 안 된다고 해서 샤워기를 쓸 수 없었다. 아이들을 근처에 사는 언니네 집으로 데려가 씻게 했다.


다음날 오전에 타일 업체를 돌아다녔다. 사진을 보여주며 타일 몇 장 붙여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니, 그건 배관 공사한 사람들이 붙여주고 가는 건데 그냥 갔어요?"

"배관 공사하는 사람들은 시멘트까지만 발라준다고 하던데요."

"원래 다 해줘요."

휴, 우리 완전 호구 잡혔구나.

집수리 업체에서 다음날 타일을 붙이러 오기로 했다. 타일 몇 장 붙이는데도 인건비가 꽤 비쌌다.


"얘들아, 오늘 하루 씻지 말자. 타일 붙이러 내일 온대."

"안돼. 나 오늘 땀 많이 흘렸단 말이야."

"하루 안 씻어도 괜찮아. 라때는 말이야. 이삼일에 한 번씩 머리 감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하고 그랬어."

"엄마 더러워~"


오랜만에 아이들과 찜질방을 갔다. 훈제계란과 식혜를 사 먹었다. 아이들이 즐거워했다.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이 고생을 하고 있지만, 덕분에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

찜질방에선 식혜와 훈제란 꼭 먹어줘야해~


 몇 달 전에 꿈을 꿨다. 공중화장실을 갔는데 변기에 똥이 그득했다. 그 많은 문을 다 열어봤지만 다 그렇게 똥이 차 있었다. 똥꿈은 무조건 좋은 꿈인 줄 알고 풀이를 찾아봤다. 그런데 그 꿈은 자금 조달이 어렵거나 계획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신호입니다,라고 나와 있었다. 그 꿈 때문인지 요즘 돈 문제로 신경 쓸 일이 많아졌다. 돈에 신경 써서 그런 꿈을 꿨을 수도 있지만.


내년에 방 네 개, 화장실 두 개인 집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다. 오늘 밤엔 우리 집 변기에 황금색 똥이 가득한 꿈을 꾸고 싶다. 뜨끈한 탕 안에 앉아 똥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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