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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Nov 06. 2022

느슨해진 운동화 끈을 조여 묶었다

초보 러너 훈련 일지 #4

2022년 10월 셋째 주

10월 15일에 국제연맹 런페스타에 나가 처음 10km 달리기를 했다. 몇 시간 행복했고, 다음 날까지 매우 피곤했다. 런데이 앱에서 말해줬다. 

-쇠를 불에 달구기만 한다고 강해지는 게 아닙니다. 찬물에 담가 식혀줘야 더 강한 쇠가 됩니다!

나의 목표, 오래도록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충분히 쉬기로 했다. 일주일간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2022년 10월 넷째 주

경찰관에서 화가로 꿈을 바꾼 매니저에게 지금껏 열심히 해 준 보답으로 60색 마카펜을 선물했다. 신이 난 매니저가 화목토 저녁 8시면 어김없이 내게 말한다.

-엄마, 알지?

날씨가 쌀쌀해지니 그 말이 무섭게 느껴졌다. 요즘 식욕이 늘어서 저녁을 많이 먹는다. 배가 부르니 쉬고 싶었고 대충 달리다 들어왔다.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한 달 후에 열리는 달리기 대회를 검색해 보니 마땅한 대회가 없었다. 그래서 11월 19일에 불광천에서 '나 홀로 10km 달리기 대회'를 열기로 했다. 지난번보다 딱 2분만 빨리 달려보자. 1시간 5분이 목표다.


봉사활동 관련 글을 쓰면서 1365 자원봉사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내가 불광천에서 혼자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19일에 '줍깅'이라는 자원봉사 활동이 있었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걷는 활동이다. 그날 오전 9시부터 10시쯤까지 달리기를 하고 11시부터 봉사활동을 하면 딱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청을 했다.


2022년 11월 첫째 주

11월이 되니 점심시간에 산책을 할 때 그늘을 피해 다닌다. 이제는 따스한 햇볕이 좋다. 문득 산책시간에 달리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질 것이고, 밤에 나가서 달리기 위해 수없이 나와 싸워야 할 것이다. 나랑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에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화요일과 목요일 점심시간에 30분간 달리기를 했다. 5분 정도 걷다가 30분 달리고 나머지 시간을 걷다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매일 걷던 길을 달리니 길가 풍경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걸어 다닐 때는 주로 생각에 빠져 있어서 봐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달리기를 할 때는 생각이 비워진다. 천천히 달리기 때문에 땀은 많이 나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 여섯 시에 불광천에 가서 한 시간 달리기를 했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느린 속도로 달리다가 중간 속도로 달리다가 마지막에 빠른 속도로 달리는 훈련이었다. 나의 가장 느린 속도와 가장 빠른 속도에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가장 편안하면서도 빠른 속도를 몸에 익혀야겠다. 


일주일간 술을 세 번이나 마셨다. 술을 마신 다음날은 탄수화물이 많이 당긴다.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무기력해진다. 나는 원래 열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좋아서 하는 달리기인데도 나를 끌고 밀면서 달린다. 나는 자꾸만 편해지려고 한다. 중간에 멈춰버리고 싶다. 열심히 달려서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둘러보니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 내가 쓴 글들과 응원의 말들을 다시 본다. 나는 아직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는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여기서 더 멀리, 더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한다 해도 멈추지 말자. 가만히 멈춰있다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달리면서 보게 된다. 


높은 온도에서 달군 금속을 찬물에 넣어 급격하게 식혀 쇠를 강하게 만드는 것을 담금질이라고 한다. 담금질이 거듭될수록 쇠는 더 강해진다. 나를 달구고 식히고 알맞은 모양으로 두드리는 과정이 인생일 것이다. 그만 식히고 이제 달궈 보자!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 묶었다. 



https://brunch.co.kr/@c1ac4f95da4246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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