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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l 26. 2022

그녀들이 하지 못한 이야기

엄마와 딸 : 꺼내지 못한 속마음


결혼한 지 15년 되었을 때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아직 어린 삼 남매와 남겨진 서른여섯의 그녀는 슬퍼할 겨를 조차 없었다. 사회생활 한번 해 본 적 없었던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손수 옷을 만들어 입을 정도로 바느질에 자신이 있던 그녀는 한복 학원에 등록해 한복을 배우고 삯바느질을 시작했다. 옷이 잘못 나와 험한 말을 듣기도 했고, 다 만든 옷을 다시 뜯어내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1년 후 작은  가게가 딸린 집으로 이사해 한복점을 시작했다. 그때는 명절이나 잔치 때 한복을 한벌씩 맞춰 입던 시절이기도 했고 그녀의 솜씨가 워낙 좋아 주문이 끊이질 않았다. 며칠씩 밤을 새워 일을 하다 재봉틀에 손가락을 박기도 했고 장이 꼬여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명절에 친척집을 방문할 때는 아이들에게 꼭 새 옷을 사 입혔고 아비 없는 자식 소리 들을까 염려되어 늘 엄하게 대했다. 사춘기가 된 아이들은 밖으로 돌았고 그녀는 홀로 그 작은 한복점에서 외롭게 나이 들어갔다. 어느 날은 남편이 그리웠다가 어느 날은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마흔아홉에 할머니가 다. 그녀의 큰딸이 얼마 전 예쁜 딸을 낳았다. 작은 딸은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고, 아들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잘 커 준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15년간 했던 한복점을 접고 집을 팔았다. 동네가 재개발될 예정이라 집을 좋은 금액으로 팔고 신도시에 다가구주택을 구입했다. 복층구조의 꼭대기층에 아직 미혼인 두 자녀와 그녀가 살고 아래층 몇 가구 월세를 받으며 좀 편하게 살아보려고 한다. 하지만 평생을 부지런히 살았던 그녀는 편한 게 체질에 맞지 않는다. 아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도 큰 집을 반짝반짝 광이 나게 열심히 청소하고 화단에 각종 채소를 키우고 문화센터로 수영과 필라테스 등 운동을 다니고 도토리를 주워다 묵을 만들고 쑥을 캐다가 떡을 만든다.


그녀는 이제 칠순이 지났다.

아이들이 한참 크는 시기에 일 하느라  아이들의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미안함이 마음에 남아 틈만 나면 반찬을 만든다. 이제는 모두 각자의 가정이 생긴 세 자녀와 그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걸 생각하면 너무나 행복해진다.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내가 무친 나물 한 접시 오이지무침 한 접시에 담긴 나의 마음을.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그녀가 열세 살 되던 해 봄, 진달래가 막 피기 시작한 산에 아빠를 묻고 돌아왔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괜찮은 척했다.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슬픔은 오랫동안 그녀 주위를 맴돌았다. 다정했던 아빠는 없었고, 차가운 엄마만 남았다. 옷감으로 둘러 싸인 작은 방에 쭈그리고 앉아 밤낮으로 일만 하는 엄마는 늘 힘들어 보였다. 엄마에게 기댈 수가 없어서  조용히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했고 그렇게 엄마와는 거리감이 있었다. 엄마는 대단한 분이었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몰랐다. 그녀의 엄마가 남편을 잃고 세 아이와 남겨졌을 때 고작 서른여섯이었다는 사실을.

그녀의 아들이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생각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가 내 동생이 이 아이 만할 때였지. 동생은 아빠 얼굴이나 기억하고 있을까... 앗, 그때 엄마는 고작 서른여섯이었네.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었어...'


이제 마흔아홉이 된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다.

오늘은 친정에 다녀왔다. 칠순이 넘은 엄마가 싸준 반찬으로 식탁이 풍성하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반찬 안 좋아해. 나도 요즘 짠 거 잘 안 먹으니까 힘들게 이런 거 하지 마요."

그런 말을 하면 엄마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 같아 "와~맛있어 맛있어" 하며 챙겨 온다. 밥을 한 공기 가득 퍼서 엄마의 미안함에 한입, 고마움에 한입, 사랑을 가득 올려서 또 한입 배불리 먹는다.


과거로 갈 수 있다면  홀로 밤을 새우며 옷감과 씨름하는 서른여섯에서 마흔아홉 살 사이의 외로운 엄마 옆에 가 있어주고 싶다. 철 모르는 수다쟁이 아이가 되어 귀가 아프니 그만 좀 하라고 밀쳐낼 때까지 조잘조잘 떠들어주고 싶다.

"엄마가 만든 한복은 정말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거 같아. 난 우리 엄마가 세계 최고의 한복 디자이너라고 생각해. 울 엄마 최고야! 엄마 힘들지? 내가 어깨 주물러 줄게. 힘내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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