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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Mar 01. 2023

나의 영웅, 감사합니다


지난 연말에 영화 '영웅'을 보고 나오는데 어떤 남자의 통화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잘 생겨서 쳐다봤다는 것은 굳이 밝히고 싶지 않다.

-어 재밌었어. 그런데 뮤지컬이 더 재밌어.

아, 뮤지컬이 더 재밌구나. 나도 봐야지. 뮤지컬 '영웅'은 마곡에 위치한 엘지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었다. 오랫동안 안중근 역할을 했던 정성화 배우 캐스팅으로 예매했다. 공연날짜는 2월 11일 토요일이었다.


엘지아트센터는 원래 강남구 역삼동에 있었는데 작년 가을에 마곡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언니와 함께 마곡에 도착해서 일단 맛있는 밥을 먹고 엘지아트센터에 들어갔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는데,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였고 공연장 좌석 단차가 높았다.


뮤지컬 '영웅'은 영화와는 내용이 조금 달랐다.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일본순사와 독립군이 쫓고 쫓기는 장면을 군무로 표현한 부분이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하나하나 다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 현재는 용산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 중이니 아직 못 보신 분이 있다면 추천드리고 싶은 작품이다.



뮤지컬을 보고 며칠 후에 김훈작가의 소설 하얼빈을 읽었다. <하얼빈>은 서른한 살 청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기 전의 행적과 쏘고 난 후 감옥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당하기까지의 과정이 나온다. 소설이라기보다 실화를 기록한 것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책 뒷부분에는 안중근의사의 가족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안의사의 일가 중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지만 대부분 타국을 떠돌다 사망했다. 세 자녀 중 첫째 아들은 7세 때 사망했고 큰딸과 둘째 아들은 안중근의사의 뜻을 부인하라는 일본의 계략에 이용당하는 불운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후세에도 영웅으로 기억되는 분들의 가족들은 대부분 비참한 삶을 살아갔다. 독립유공자 후손들보다 일본 앞잡이의 후손들이 훨씬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늘 삼일절 104주년을 맞았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인가, 나의 안위를 위해 조용히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그 시대를 살아낸 분들께 감사한다.


이번 주말에는 막내딸과 함께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있는 남산길을 산책해야겠다. 1910년 3월 26일, 서른한 살 나이로 생을 마감한 청년 안중근이 그토록 사랑한 대한민국의 품으로 하루빨리 돌아와 잠들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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