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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Mar 03. 2023

당신은 내 운명

박효신 보러가서 베토벤에 반하다


2월의 마지막날 아침, 아직 바람이 차가운 날씨였지만 나는 봄이 찾아온 듯 설렜다. 오늘은 지난달에 예약한 나를 위한 선물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 뮤지컬 베토벤 공연, 아니 박효신을 보러 간다. 내가 집에서 박효신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남편이 약간의 질투심을 보이곤 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기야, 나 저녁때 뮤지컬 보러 갈 건데 이번엔 나 데리러 안 와도 돼. 예술의 전당 너무 멀어서 피곤하니까 일찍 들어와서 쉬고 있어~

사실 내 속마음은, 자기는 집에서 아이들 저녁을 좀 챙겨주었으면 해. 그리고 자기가 옆에 있으면 내가 맘껏 좋아할 수가 없으니 그냥 혼자 갔다 오고 싶어, 였다.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이 먹을 저녁을 준비해 놓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예술의 전당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정도 거리인데 두 시간 전에 나왔다. 여유 있게 도착해서 로비를 어슬렁거리며 사진을 찍고 프로그램북을 한 권 샀다.


베토벤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 부터 학대받았고 청력까지 잃게 되며 우울증에 시달린다. 그의 사후에 불멸의 연인에게 모든 재산과 곡을 넘기겠다는 유서와 함께 세 통의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그 연인이 누구인지 가설이 분분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는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이 동생의 아내인 것으로 밝혀진다. 이 뮤지컬에서는 애가 셋귀족 부인이 베토벤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어떤 것이 사실이든 축복받지 못할 사랑이었으니 안타깝기도 하지만 베토벤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마다 명곡이 나왔다는 점에서 음악을 듣는 우리에게는 축복인 일이다.


사실 이 뮤지컬에 대해 별로 큰 기대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박효신을 무대에서 제법 가까운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로 온 것뿐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박효신의 노래는 역시나 완벽했고 전반적으로 군더더기 없는 전개, 화려한 무대 연출이 좋았다. 아쉬웠던 점은 이렇다 하게 기억에 남는 넘버가 없었다. 귀에 익숙한 베토벤의 곡을 사용해 노래하듯 대사를 하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약간 억지 감동을 주기 위해 끝부분을 갑자기 고음처리 하는 몇 곡의 노래가 거슬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건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나의 견해일 뿐이다.


공연 1부가 끝나고 휴식시간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은 먹었는지 아이들은 뭐 하는지 묻자 집 신경 쓰지 말고 즐기고 오랜다. 웬일이지?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 얼마 전까지도 남편은 내가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퇴근하고 왔을 때 내가 집에 없으면 짜증을 냈다. 나는 거의 집과 회사를 오가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혼자 다니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처음엔 걱정하던 남편도 이젠 즐기라고 말한다. 아마도 우리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 같다.



공연을 보고 온 후 베토벤에 대해서 조사를 좀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랑받는 음악가가 됐으나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으로 괴로워했던 베토벤, 청력 상실뿐 아니라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받으며 예술 속에서만 살기로 다짐했던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을 완성했을 당시에는 완전히 들리지 않았다는데 그에 대해 말하기에 천재라는 표현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사망한 날짜는 1827년 3월 26일, 안중근의사가 순국한 날짜도 3월 26일이었는데... 3월 26일에는 나의 두 영웅을 위한 추도식이라도 가져야 하는 건가.


나의 플레이리스트가 박효신에서 베토벤으로 바뀌었다. 그의 삶을 알고 음악을 들으니 음악이 더 아름답게 들린다. 설마 남편이 베토벤까지 질투하지는 않겠지. 남편에게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을 들려주고 싶다.

빠바바밤~ 빠바바밤~넌내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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