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마라톤 하프코스 달리기(비대면 달리기 대회)에 도전했다. 그동안 달리기를 거의 안 하고 게으름을 피웠는데 런데이 챌린지에 신청한 2월 달리기 일정이 돌아오고야 말았다. 한 달 전에 신청할 때의 마음은, 이제 날이 조금 풀렸으니 연습을 꾸준히 하면 21.1km를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주에 10km 한번 달려보고 걷기만 열심히 했는데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갔다. 포기해야 하나 망설이다 날이 좋아 일단 나갔다. 바람이 많이 불긴 했지만 차갑지 않았고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이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달려보자고 마음먹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불광천에서 시작해 한강공원 난지 지구로 넘어가니, 상쾌한 기분과는 달리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멈추고 걸으며 강물에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봤다.작년 가을에 처음 10km 달리기 대회에 나갔을 때, 반짝이는 윤슬이 나를 응원하는 듯해 열심히 달렸던 기억이 되살아나 힘을 내어 다시 달렸다. 반짝이는 마음과는 달리 이제는 발목까지 아파왔다. 달리기를 멈추고 그냥 걸었다. 강물도 보고 나무도 보고 사람들도 보면서 즐겁게 걸으면 힘들지 않을 것 같았는데, 17km쯤 지나자 걷기조차 힘들고 아무 데나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좀 앉았다 갈까 망설이고 있을 때 막내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배고파 죽을 거 같아. 언제 와?
-엄마 곧 끝나니까 조금만 기다려.
밥 먹은 지 세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배고파 죽겠다는 막내딸의 말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인데 왜 아이들이 배 고프다고 하면 그렇게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움직이지 않으려고 버티는 다리를 질질 끌고 나머지 거리를 걸었다. 21.1km를 완주하는데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역시 아직 내게 하프코스 도전은 무리다.
집에 돌아와 막내딸이 배고파 죽기 전에 밥을 하고 고기를 볶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뻐근했다. 허벅지 뒤쪽이 당겨서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다. 오늘 무리한 도전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것만큼은 칭찬해 주고 싶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까지 멀리 갔다 와서 그런지 여행에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 불광천에서 본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었다. 추위 속에서 조용히, 천천히 꽃을 피워내고 있는 나무의 위대함이 보였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나무가 꽃을 피우는 일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꽃을 피우고 싶다면 추위를 견디고 바람이 따뜻해지길 기다려 꽃망울을 터트리면 된다. 오늘 내게 21.1km 달리기는 욕심이었다. 꽃망울이 터지려면 아직 멀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꽃은 피어나겠지. 꽃을 기다리는 나의 계절은 언제나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