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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n 27. 2023

한 달간 밥, 빵, 면, 떡을 안 먹을 수 있을까?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다. 점심을 뭘 먹을까 냉장고를 열어보니 건두부와 양배추가 있어 건두부 양배추볶음을 만들었다. 나는 지금 밥, 빵, 면, 떡을 제외한 식사로 한 달 살기에 도전하고 있다.


건두부 양배추볶음



 

  이 도전의 시작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막내를 임신했을 때 20kg이 쪘는데 출산 후에 빠진 건 15kg이 끝이었고 나머지 5kg은 원래 내 것인 양 딱 달라붙어 버렸다. 지인의 소개로 한약을 먹었다. 한약을 먹으니 입맛이 없어 많이 먹지 못했는데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에너지는 넘쳤다. 두어 달 정도 먹고 체중이 7~8kg 정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약을 끊고 난 뒤, 집 나갔던 입맛은 서둘러 돌아왔고 사라졌던 살도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왔다.


  살을 뺀 뒤에 유지를 위해서는 식단관리가 필수였지만 육아에 지친 내게 탄수화물과 맥주가 휴식이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취업을 하게 됐다. 아이 키울 때 입던 펑퍼짐한 옷을 벗어던지고 직장 다니는 여자라고 딱 표시 나는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사 입었다. 블라우스를 스커트 속에 집어넣었을 때 보이는 불룩한 뱃살을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일도 하고 살림도 하고 분명 전보다 더 바쁘고 힘든데 살은 오히려 더 쪘다.


  어느 날, 티브이 건강프로그램에서 밥과 빵만 안 먹어도 살이 빠진다는 놀라운(?) 정보를 얻게 됐다. 탄수화물이 살찌는 주범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밥과 빵이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니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회사 갈 때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도시락에서 밥을 빼고 계란, 채소볶음, 과일 등을 챙겼다. 마침 초여름이라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챙기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점심을 간단하게 먹는 대신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저녁에는 고기볶음, 나물과 채소류 위주의 반찬으로 밥, 빵, 면, 떡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배불리 먹었다. 라면을 먹고 싶으면 라면 국물에 콩나물과 실곤약을 넣어 끓여 먹었다. 치킨은 밥, 빵, 면, 떡에 해당되지 않으니 가끔 먹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난 뒤에 6kg이 빠져 있었다.

6년 전에 싸가지고 다녔던 도시락


  1년 뒤 직장을 옮기게 됐는데 여기는 다 같이 나가서 점심을 먹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수도 있었지만 동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점심을 같이 사 먹었다. 회사 근처에는 맛있는 음식이 넘쳐났고 식후에 달달한 음료를 한잔씩 마시는 날이 많았다. 몇 개월 뒤에 체중이 살짝 늘었을 때, 회사 사람들과 친해졌다고 판단해 점심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운동(커브스)을 40분간 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산 샐러드나 샌드위치등 간단한 점심을 먹으며 체중을 유지했다.


  운동이 한참 재밌던 6개월 후에 사무실을 이전하며 다니던 운동 센터를 다니지 못하게 됐다. 이전한 동네에는 딱히 운동을 할 곳이 없어 점심시간에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자주 가던 식당은 인심 좋고 맛 좋은 한식 뷔페였다. 나름 관리한다고 채소와 고기 위주로 가져다 먹었는데 양 조절에 실패한 건지 야금야금 체중이 늘더니 5kg이나 늘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에 코로나가 시작됐다. 코로나로 인해 점심을 다 같이 먹지 않고 각자 자리에서 도시락을 먹는 분위기가 됐다. 전처럼 탄수화물 없는 도시락을 싸보려고 했지만 이번엔 잘 되지 않았다.


  남편의 지인이 당뇨 조절을 위해 단식을 한다는 말을 듣고 단식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년 전 여름이었다. 단식 관련 책을 몇 권 읽고 직접 해보기로 했다. 예전에 어떤 연예인이 1일 1식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사람이 하루 한 끼만 먹고살 수 있냐고 생각했던 내게 그것은 커다란 모험이었다. 물과 소금을 먹으며 5일간 단식을 하면서 점심시간에 산책을 했다. 내가 경험한 단식은 식단조절로 하는 다이어트 보다 훨씬 쉬운 체중 감량법이었다. 적게 먹으면 몇 시간 뒤 허기가 찾아오는 게 힘들었는데 단식은 이틀 정도 지나고 나면 몸이 편안한 상태가 됐다. 두 번의 5일 단식으로 6kg을 몸에서 덜어냈다. (내가 쓴 단식 관련 글 : 단식할 때 극복해야 할 것은 배고픔이 아니었다 / 다이어트에서 해방됐다 / 내게 단식이 휴식인 이유 )


  또다시 체중이 늘어난 건 지난겨울 달콤한 간식에 빠지면서부터다. 이번에는 5kg까지는 아니고 2~3kg 정도가 늘었는데 배둘레에 두툼한 보호대를 찬 느낌이 불편하다. 나이 들어서 체중이 늘 때의 문제는 허벅지는 가늘어지고 배둘레가 커진다는 거다. 이로 인해 무릎이 아프고 한동안 열심이던 달리기를 멈췄다. 단식을 한 번 할까 했지만 가족들 식사 준비를 하면서 식욕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아 미루고만 있었다.




 

 지난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점심을 뭘 먹을까 냉장고 속을 들여다보니 오래전 시댁에서 주신 메주콩과 남편이 다이어트한다고 사놓고 안 먹는 실곤약이 많았다. 그걸 보는 순간 다시 밥, 빵, 면, 떡 없는 식사를 해보고 싶었다. 오래 할 자신은 없고 딱 한 달만! 메주콩으로 콩국물을 만들어 면 대신 오이를 채 썰어 넣어 먹고, 실곤약은 여름 입맛 살려주는 비빔국수가 생각날 때 면 대신 넣어 먹기 좋다. 4일 동안 콩국물, 실곤약으로 만든 비빔면, 아몬드가루로 부친 야채 전, 고기와 채소를 먹으며 밥, 빵, 면, 떡을 멀리했다. 이런 식으로  달 버티는 거, 참 쉬울 것 같았다.

실곤약 열무비빔면
소고기구이와 어린잎 채소, 구운 감자
아몬드가루로 부친 야채 전(부침가루 약간 섞음)

  5일째 날 낮이었다.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회사 앞으로 와. 같이 점심 먹자."

"그래. 근데 나 탄수화물은 안 먹는다."

남편과 보쌈을 먹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남편이 들고 온 쟁반 안에는...

"나 탄수화물 안 먹는다니까! 도넛은 왜 사 왔어?"

"이건 도넛이 아냐. 사랑이지~"

"이보세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이렇게 나쁜 걸 먹으라고요? 나 안 먹어. 자기 다 먹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생각해 보니 이렇게 나쁜 걸 남편한테 다 먹으라고 하는 건 조금 이기적인 것 같다. 결국 도넛을 반으로 잘라 남편과 나눠먹었다. 잠깐동안 행복했다. 곧 후회했지만 도넛 반 개 먹은 걸로 내 결심을 포기할 수는 없고, 한 달간 밥, 빵, 면, 떡 안 먹기는 다시 1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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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 뒤에 시댁을 갔다. 시어머니가 정성껏 만든 깻잎찜을 주셨다. 달콤 짭짤한 깻잎을 하나 집어서 입안에 넣는 순간, 한마디 외침이 들렸다.

"으악, 쌀밥이 필요해! 밥 없이 이걸 먹는 건 반칙이야!"

나의 1일은 또다시 다음 로 미뤄졌다. 입이 즐거운 음식과 몸이 즐거운 음식이 다르다는 건 인생 최대의 숙제다. 나를 유혹하는 맛있는 것들이 널린 세상에서 나는 과연 한 달간 밥, 빵, 면, 떡 안 먹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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