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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pr 11. 2023

우산이 필요한 날엔 빨래를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있다. 뮤지컬 '빨래'의 넘버 중 <비 오는 날이면>이다. 이 넘버는 비가 쏟아지는 날 만원 버스 안에 탄 사람들의 서울살이 사연을 이야기하고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펼쳐 들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며 부르는 곡이다.

♪누가 안쓰러운 우리 삶을 위로해 줄까요? 누가 서글픈 우리 삶을 위로해 줄까요? 비 오는 날이면 외롭고 쓸쓸한 마음 우산 하나 받쳐 들고 또 하루를 살아가요 ♬ 비 오는 날이면 떠나고 싶은 마음 우산 하나로 가리고 또 하루를 살아내요 ♬


3월 마지막 수요일에 대학로에서 뮤지컬 '빨래'를 봤다. 1막 끝부분에 나온 이 곡을 들으면서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날마다 비가 내리는 것만 같았던 이십 대의 내가 떠올랐고 이 곡이 비를 맞고 혼자 걸어가는 내게 우산이 돼 주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로에서 15년 넘게 공연 중인 뮤지컬을 이제야 게 되다니... 아니, 이제라도 게 돼서 참 다행이다. 나는 최근에 뮤지컬 배우 홍광호가 부른 '참 예뻐요'라는 곡을 듣고 너무 좋아서 '빨래' 검색했다. 2년 전에 '놀면 뭐 하니?'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뮤지컬을 소개한 영상을 다. 그 영상을 보면서 '참 예뻐요' 외에도 몇 곡의 가사가 듣는 이에게 위로를 전하는 아름다운 내용이라 느껴 공연 티켓을 예매했다. 실제로 공연을 보니 빨래에 나오는 모든 곡이 하나같이 다 멜로디가 쉽고 가사가 좋았다.


<뮤지컬 빨래 줄거리>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혼자 사는 스물일곱 살 나영은 서점 직원이다. 새로 이사한 집에는 주인할머니와 동대문에서 옷장사하는 희정엄마가 살고 있다. 옆집 옥탑방에 사는 몽골청년 솔롱고는 몽골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했지만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한국으로 와 공장에 다니고 있다. 옥상에서 빨래를 널며 이야기를 나누는 나영과 솔롱고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나영이 다니는 서점 사장은 직원을 제멋대로 부리며 왕처럼 군림하려 하고 해고된 선배언니를 위해 한마디 했다는 이유로 나영을 창고로 보내버린다. 주인할머니가 장애인 딸을 숨겨놓고 돌보는 사연, 희정엄마와 애인의 이야기, 공장에서 월급을 떼인 솔롱고와 베트남 청년 마이클, 서점 직원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웃음과 감동을 준다.



서점 판매직에서 창고로 쫓겨난 나영에게 주인할머니와 희정엄마가 슬플 땐 빨래를 하라고, 빨래에 슬픔을 녹여버리고 깨끗하게 잘 말려진 나를 입고 내일을 살아가라고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2차 눈물샘이 터졌고 마지막에 전 출연자가 '당신의 아픈 마음 내가 잘 말려줄게요~' 노래할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봤던 대형극장 공연과는 다른 소극장만의 매력을 느꼈다. 배우들의 표정이 잘 보이고 눈을 마주친다는 느낌이 들 때는 감동이 배가 되어 공연을 보는 내내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비 오는 날 누군가 내 손에 우산을 쥐어준 듯한 따스함이 느껴졌다.



사실 손빨래를 한 게 언제인지, 옥상에 빨래를 널어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세탁기에서 잘 빨려 나온 빨래를 건조기에 뽀송하게 말리는 편안한 삶을 산 지 오래다. 다음에 힘들고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손빨래는 자신 없고 발로 이불 빨래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힘든 마음을 발로 꾹꾹 밟아 눌러버리고 햇볕 좋은 옥상에 널어 잘 마른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자면 마음까지 따뜻해질 것만 같다.


이 뮤지컬은 언제 봐도 좋을 것 같지만 특히 비가 오거나 막 울고 싶거나 해서 우산이 필요한 날, 그리고 세탁기가 고장 났을 때 보기를 추천한다. 다달이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 공연 티켓이 50% 할인된다. 이번 달 마지막 수요일에도 나는 대학로에 있을 예정이다.



https://youtu.be/U1j-dA_Tp5A


https://youtu.be/ZttytffhC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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