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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pr 22. 2023

소곱창 보다 돼지곱창이 좋은 이유

 

-회사 앞으로 와. 곱창 사줄게.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남편의 카톡을 받았다. 전에도 가끔 남편이 회사 앞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고 했었지만 아이들 저녁을 챙겨야 한다면서 안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오늘은 구체적인 메뉴를 들이댔다. 내가 좋아하는 곱창, '곱창 사줄게'란 문장을 보는 순간 매콤한 곱창볶음이 떠올라 가슴이 설렜다. 남편이 나를 회사까지 불러 곱창을 사준다고 할 때는 내가 생각한 돼지곱창볶음이 아닌, 소곱창 구이일 것 같긴 했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이들에게중요한 약속이 생겨 좀 늦으니 라면을 끓여 먹으라고 하고 곧바로 남편의 회사 앞으로 갔다.


남편과 함께 간 곱창집은 소곱창에 빨간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구워주는 곳이었다. 1인분에 2만 원 정도 하는 곱창을 3인분 시켰다. 석쇠 위에 올려진 대창, 막창 3인분은 나 혼자 먹어도 모자랄 정도의 적은 양이었다. 직원이 왔다 갔다 하며 계속 뒤집고 구워주는 수고비가 포함된 것 같았다. 나는 안 구워주고 곱창을 많이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추가로 2인분을 더 시켜 먹고도 배가 안 불렀지만 남편에게 이제 볶음밥을 먹겠다고 했다. 양볶음밥 1만 4천 원, 이것도 비싸다. 볶음밥을 고 나니 배가 불렀다.


남편과 둘이 아무 날도 아닌데 외식을 하속으로 계산을 하게 된다. 이 날이 돈으로 조금 값싼 음식을 먹더라도 아이들과 다 같이 먹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즐길 수가 없었다. 맛있긴 했지만 만족감은 없는 식사였다.



온 가족이 곱창볶음을 먹으러 갔던 날이 생각났다. 우리는 매콤한 야채곱창과 알곱창을 섞어서 4인분, 막내를 위한 소금구이 1인분을 주문한다. 곱창이 나오기 전에 서비스로 나온 계란찜과 미역국으로 위장 준비운동을 한다. 채소와 당면, 돼지 곱창을 빨간 양념으로 볶은 곱창볶음 커다란 철판 위에 놓여 나온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5인 가족 젓가락 전쟁이 시작된다. 곱창과 볶은 야채를 한 젓가락에 집어 먹거나 곱창만 집어 쌈을 싸 먹는다. 조금 남은 곱창볶음에 톡톡 씹히는 날치알과 김가루를 잔뜩 넣고 볶은밥이야 말로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배가 터질 것 같다면서도 밥 한 톨 안 남기고 싹싹 긁어먹는다. 집으로 걸어가며 달콤한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행복하다.



내가 곱창볶음을 처음 만난 곳은 신림동 순대타운이었다. 건물 전체가 작은 순대곱창집으로 가득했던 그곳. 여기저기서 이리 오라 손짓하던 이모님들 중 인심이 가장 후해 보이는 이모님의 자리에 앉는다. 순대와 곱창을 야채와 섞어 매콤하게 볶아낸 그 맛은 떡볶이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줄 알았던 고등학생에게 신세계였다. 그 후로 곱창볶음은 직장 동료들, 친구들과 술 한 잔 기울일  즐겨 먹었고, 아이 낳고 육아로 지친 밤에 매콤한 곱창볶음을 시켜 먹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난 소곱창 보다 돼지곱창(곱창볶음)이 더 좋다. 돼지곱창이 좋은 이유가 진짜로 돼지곱창이 더 맛있어서 인지, 언제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소곱창은 남이 사줄 때 행복한데 돼지곱창은 남이 사주거나 내 돈 내고 먹거나 늘 행복하다는 것이다.


"우리 저녁에 곱창볶음 먹을까?"

"전 학원 가야 돼요."

"난 약속 있어."

"난 치킨 먹고 싶은데."

괜찮다. 곱창볶음에 소주 한 잔이면 혼자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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