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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May 08. 2023

어머니는 햄버거가 싫다고 하셨어


"오늘 점심 뭐 먹을까?"

일요일 낮에 내가 막내딸에게 물었다.

"햄버거 먹자."

"그래, 나가자."

"배달시키자."

"안돼."


점심 메뉴로 햄버거를 고른 것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밖으로 나갈 기회가 생긴 것은 잘 된 일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열 살 어린이는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것을 좋아해야 할 것 같은데 이 어린이는 유튜브를 보거나 마인 크래프트 게임을 하며 집안에서 나가려 하지 않는다. 어울려 노는 것보다 혼자 노는 것을 편안해하는 아이의 모습이 걱정된다.


배달비 대신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꼬여서 막내딸을 데리고 나갔다. 중간고사 공부 중인 첫째와 둘째가 먹을 것은 포장해 가기로 했다. 햄버거 매장 1층에서 키오스크로 세트메뉴 두 개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햄버거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오랜만에 먹는다. 햄버거 포장지를 벗겨보니 가격은 올랐는데 안에 채소는 거의 없어지고 좀 부실해진 느낌이다. 막내딸이 감자튀김을 섞지 말고 각자 먹자고 한다. 다 함께 섞어놓고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아이들이 이런 성향인 건지 내 딸만 이런 지 조금 당황스러웠다. 굳이 안된다고 할 일은 아니라서 그러자고 했다.


햄버거를 다 먹고 1층으로 내려가니 입구에 손님들이 꽉 차 있었다. 어느 교회에서 단체로 오신 듯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딸에게 속삭였다. 밖으로 나와 집 쪽으로 몇 발자국 걷다가 생각났다. 아, 집에 있는 애들 거 포장해 가기로 했지... 큰일 날 뻔한 게 아니라 큰일 났구나!


다시 햄버거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키오스크가 총 3개 있다. 가장 빠를 것 같아 보이는 곳에 줄을 섰다. 앞에 주문하는 모습을 보니 교회에서 단체로 오신 게 맞았다. 교회 어르신들께 젊은이들이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있었다. 설명하고 해 보시라고 하며 주문하니 내 차례가 오려면 한참이 걸릴 것 같았다.


얼마 전 뉴스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익히지 못하여 자존감 하락과 불안감을 느끼며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기분마저 든다는 6~70대 어르신들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났다. 아직 오십밖에 안된 나도 오랜만에 키오스크 앞에 서면 많이 버벅거린다. 뭘 선택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이미 선택한 게 사라지기도 해 뒷사람 눈치를 보며 무슨 시험이라도 치르는 양 식은땀이 흐르기도 한다. 디지털 기기가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키오스크 주문을 하느니 안 먹는 쪽을 택할 확률이 높다.


우리 엄마는 혼자 햄버거를 사 드실 수 있을까? 엄마가 햄버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은 드시고 싶을 수도 있다. 돈 때문에 짜장면이 싫다고 하는 시절은 지났고 키오스크 주문이 어려워 햄버거가 싫다고 하는 시대가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패스트푸드점  아니라 커피점, 동네 해장국집에도 키오스크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서빙을 로봇이 대신하기도 한다. 앱을 사용해 미리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식당도 많다. 어르신들만 사는 가정은 앞으로 외식 자체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멍 때리고 있는 내게 앞쪽에 어르신들께 설명하던 젊은이가 먼저 주문하라고 양보했다. 내가 먼저 주문하는 게 그분들도 편할 것 같아 얼른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고 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본다. 감자튀김기 앞에 한 사람, 햄버거가 만들어져 나오는 기계 앞에 한 사람, 왔다 갔다 며 음식들을 쟁반이나 포장봉투에 담는 사람이 있다. 기계의 일부인 양 헛걸음 없는 움직임이다.


띵동, 모니터에 찍힌 내 번호를 보고 카운터 앞으로 다. 햄버거와 음료가 담긴 봉투를 전해주는 직원과 마주 섰다. 그녀는 회사에서 교육받은 기계적인 말투와 미소로 주문내역을 확인시켜 주고 인사를 한다. 전에는 그 기계적인 인사말에 영혼 없이 대꾸하고 나왔었다. 오늘은 그녀의 눈을 보고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소통 가능한 사람을 마주할 수 있는 일상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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