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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May 22. 2023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진짜 퇴사 사유


  나는 주로 회사에서 글을 쓴다. 출근길에 생각난 것들을 출근하자마자 고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고 들어와서 또 쓴다.  일이 없어도 대놓고 딴짓을 할 수는 없어서 누가 가까이 오는 것 같으면 재빨리 업무 화면으로 바꾼다. 그렇게 눈치 보며 야금야금 글을 쓰던 어느 날, 영화 <브레이브 하트> 속 주인공 멜깁슨처럼 "프리덤~~~!!"을 외치고 싶었다.




  몇 달 전 저녁, 가만히 앉아있는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누군가 몰래 내 뒤로 다가와 소리를 쳤거나 조용한 마룻바닥에 구슬이 떨어졌을 때처럼 심장이 지 혼자 놀랐다. 그리고 얼마 뒤부터 심장이 자꾸만 덜컹덜컹 신호를 보냈다. 꿈에서도 글을 쓰며 잠을 잘 못 자던 때였다. 잠을 잘 자면 괜찮았다가 잠을 잘 못 자 피곤해지면 증상이 나타났다.


내 심장이 지 맘대로 날뛰다가 멈춰버리면 내가 가장 후회할 일이 뭘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내가 갑자기 죽을 때 가장 아까운 건 시간일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이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 그걸 깨닫고도 난 퇴사를 결정하지 못했다. 크게 어려운 일 없이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 그 돈 중 일부를 나를 위해 썼던 것, 그리고 날마다 걷던 점심시간의 산책길 등 나의 안온한 일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십여 년을 전업주부로 살다가 다시 일을 하고 싶어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교육을 받았다. 보험사의 전산 프로그램을 익혀 보험 가입에 필요한 전산업무를 담당하는 일이었다. 3개월간 교육을 받고 처음 취업했을 때는 휴일에도 출근하고 싶을 정도로 일이 재미있었다. 집에서 대충 살림을 하며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쓸모 있는 사람이 됐다 생각했다. 6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재미는 사라졌고 돈이 생기니 출근을 하고, 나이 많은 아줌마가 다니기에 이만큼 편한 직장이 없을 거라 감사하며 다녔다.



  얼마 전에 책장 정리를 하다가 중3 둘째 딸이 초2 때 쓴 일기장을 발견했다. 내가 회사를 다니기 전에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얼마나 대단한 시간들이었는지를 그 일기장이 말해주고 있었다. 난 아이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었다. 지금 초3인 막내딸을 보니 많이 미안했다. 막내딸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쉽게 좌절하며 좀 이기적인 성향이라고 걱정했는데 그건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퇴근하고 급하게 저녁을 먹고 나면 나는 휴대폰을 다. 낮에 쓰던 글을 붙들고 있거나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 드라마를 보며 쉬던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겐 유익했지만 아이를 방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막내딸은 그 시간에 대부분 걸그룹이 나오는 유튜브에 빠져있다. 그만 보고 숙제를 하라고 좋게 말했는데 성질을 내더니 다. 숙제하기 귀찮다며 한참을 울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화가 났다. 원래는 화를 내는데 그날은 아이를 달래 줄넘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움직이니 기분이 좋은지 또 금방 웃는다. 아이를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아이와 함께 웃으려면 지금 하는 일 중 하나를 멈춰야 한다. 회사와 글쓰기 둘 중 하나.


  난 회사를 만두기로 마음먹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보니 내가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반복했던 이 일이 너무너무 하기 싫어졌다. 왜냐면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싶으니까.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쓰고 싶으니까.  자유를 원해~~~!!



  6년 전에 남편은 내가 일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 언제부턴가 반대하지 않는다. 혼자 벌어서도 충분히 세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세월과 함께 많이 작아진 듯하다. 남편은 최근 내게 부정맥 증상이 있었던 것이 불안하다며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찬성했다. 속으로는 내가 계속 일하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싶어 몇 번이나 그만둬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동안 내 월급의 절반은 저축을 하고 나머지는 보험료를 내고 시댁에 용돈을 보내드렸다. 그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남편과 상의했다. 노후대비라 생각했던 주식을 일부 팔아 집 담보 대출을 갚기로 했다. 그리고 또 줄일 건 식비밖에 없다. 앞으로 치킨은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먹을 것 같다고 했더니 막내딸이 그냥 일 계속하란다. 치킨값 알바라도 해야 하나.



   다음 날 차장에게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이 일이 너무너무 하기 싫어요. 난 자유롭게 살고 싶어 졌어요."

라는 가장 솔직한 퇴사 사유는 밝히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나를 들여다보니 나는 퇴사하기 위해 아이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차장에게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 문제로 퇴사를 원한다면 아쉽지만 붙잡을 수가 없네요,라고 차장이 말했다.


  내가 잘하는 건지 확신은 없다. 나중에 적어도 한 번은 이 결정을 후회할 것 같다. 나는 후회가 더 적을 것 같은 쪽을 선택했다. 두렵지만 그냥 밀고 나간다. 하나의 문을 닫았는데 다른 문이 열리지 않으면 어쩌지?


주먹 불끈 쥐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거지.
인생 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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