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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n 14. 2023

다낭에서 만난 그녀의 손길이 그립다

베트남 다낭 3박 4일 여행기 #3


  오늘 처음 만난 여자가 내 몸을 만진다. 그녀와 나는 가벼운 눈인사를 나눴을 뿐이다. 심지어 그녀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얌전히 그녀의 손길을 기다렸다. 그녀는 말없이 내 발을 정성껏 닦는다. 갈라진 발뒤꿈치와 발톱무좀을 숨기기 위해 슬리퍼도 잘 신지 않았건만 낯선 여자에게 치부를 들키고 말았다. 그녀가 이번엔 내 어깨를 쓸어내리어눌하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언니, 조아요?"

"네, 좋아요."

내가 누워있는 곳은 베트남 다낭의 한 마사지샵이다.




  우리(나, 막내딸, 언니, 조카) 다낭 공항에 도착한 건 현지시각 7일 오전 1시 30분쯤이었다. (우리나라보다 두 시간 느리다) 비엣젯 항공이 연착을 밥 먹듯 한다는 후기를 보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탄 비행기는 제시간에 출발했다. 좌석이 좌우 세 개씩 여섯 개인 작은 비행기라 롤러코스터 탈 것을 어느 정도 각오했지만 흔들림이 거의 없는 편안한 비행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뒤쪽에 빈 좌석에 많았다는 거다. 세 개의 빈좌석 팔걸이를 다 올리고 출발 때부터 지쳤던 몸을 뉘었다.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잠을 조금 자다가 일어나니 어느새 도착했다. 밥을 안 줘서  섭섭했지만 비즈니스석 부럽지 않은 4시간 40분을 보냈다. 역시 걱정은 땡겨쓸 필요가 없는 거였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각자를 기다리는 푯말 앞으로 찾아갔다. 우릴 기다리는 가이드는 귀엽게 생긴 베트남 청년과 까까머리가 눈에 띄는 한국인 아저씨였다. 버스를 타고 바로 리조트로 들어갔다. 나만 리트리트 리조트, 지금껏 패키지여행 상품에 포함된 적 없었던 좋은 곳이란다. 정말 좋은 곳이었지만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빡빡한 일정이 짜여있어 리조트에 머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오전 열 시에 리조트를 나와 첫 일정이 마사지였다. 나를 담당한 마사지사는 커트머리에 20대 중반정도, 얼핏 보면 운동선수인가 싶은 인상이었다. 처음에 살살 주무르던 어깨를 주먹을 이용해 지압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동작에 어깨가 아팠지만 아프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통증 뒤에 밀려오는 시원함을 익히 알고 있기에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무언의 파이팅을 보냈다.


  이번엔 그녀가 뜨거운 돌을 이용해 내 배를 문지른다. 뱃살의 출렁임이 과도하게 느껴져 살짝 부끄럽지만 다행히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다. 다음에는 다리와 발을, 그녀는 매우 꼼꼼하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구석구석 주물렀다. 그녀가 엎드려 누운 내 등을 쓰다듬을 때는 깜빡 잠이 들 뻔했다. 막 잠이 들려는 찰나 그녀가 내 손에 뭔가를 쥐어준다. 고개를 들어보니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네. 아, 그거 제가 다음 주에 해드려도 될까요?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휴가 중이라서요."

평소에 잘 오지도 않는 고객의 전화를 마사지샵에 누워있는 두 시간 동안 두 번이나 받았다.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녀가 내 엉덩이 옆쪽을 무릎으로 누르며 지압했다. 이번엔 꽤 아파서 '윽' 소리가 나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녀가 물었다.

"언니, 갠찬요?"

"네, 괜... 찮아요."


  손에도 감정이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오늘 처음 만난 그녀의 손길에서 다정함을 느꼈다. 그녀가 내 못난 발톱을 정리하고 발가락 하나하나 문질러 줄 때 부끄러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샵에서 얼마간의 돈을 받고 일하겠지만, 내가 그녀에게 준 팁은 시간당 2달러,  4달러로 조금 미안한 금액이었다. (내가 환전할 때 달러 환율이 1,310원 정도였다) 그녀는 매우 밝은 표정으로 그 돈을 받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양손으로 엄지 척을 해주었다.

  가벼워진 몸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가이드가 말했다. 여기 사람들 대부분의 연소득이 한화 400만 원이 안되고  덥고 습한 날씨에 에어컨도, 냉장고도 없는 집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바쁘게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여기 사람들이 더 행복해하고 만족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고 한다.


  나는 마사지를 받으며 누워있을 때,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처음 만나는 여행객들의 몸을 주물러야 하는 젊은 그녀가 안 됐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나를 보며 휴가 와서까지 업무 전화를 받아야 하는 불쌍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휴가 중에도 휴대폰을 끄지 못하는 것이 책임감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며칠의 자유에도 불안함을 느끼는 노예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3박 4일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났다.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막내딸한테 어버이날 받은 안마쿠폰을 내밀었더30초 정도 꼬집고 때리다가 달아났다. 베트남 다낭에서 만난 그녀의 다정한 손길이 그립다.


나만 리트리트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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