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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n 12. 2023

3일간 여행 가는 엄마가 해야 할 일들

베트남 다낭 3박 4일 여행기 #2

 

  고2 아들과 중3 딸집에 놔두고 여행 갈 결심을 했다. 차마 초3 막내딸까지 두고 갈 수가 없어서 그 아이만 데리고 가기로 했다. 여행을 결심하면서 가장 걱정된 건 남은 아이들의 밥이었다. 물론 배달도 있고 인스턴트식품도 널리고 널린 세상이다. 평소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저녁을 대충 때우는 날들이 많았지만 엄마 없이 저녁을 대충 때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졌다.


  이번 여행은 언니와 언니의 아들인 스무 살 조카, 나와 막내딸 이렇게 네 명이 가기로 했고 3박 4일 일정이다. 언니가 갑자기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큰 고민 없이 동의했다. 남은 가족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내 무릎이 튼튼할 날이 많이 남지 않았으니 기회가 됐을 때 부지런히 다니자는 게 요즘의 내 생각이다.


  오늘 인천공항에서 여행사 직원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저녁 여덟 시, 공항에 가기 전에 3일 치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드라마에서 보면 사골을 한 냄비 끓여놓고들 가시던데, 난 사골라면을 준비했다. 그리고 평소에 아이들이 '이것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인 메인요리를  가지 만들었다.


  <돼지고기 김치찜>

  김장김치 한 포기, 얇고 길게 썰린 앞다리살 그리고 시간만 넉넉히 있으면 아이들의 최애 김치찜을 만들 수 있다. 썰지 않고 밑동만 잘라낸 김치 한 장에 앞다리살을 올려 둘둘 말아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끌어안은 그들을 큰 냄비 안에 차곡차곡 눕히고 물을 붓는다. 된장 한 스푼과 조미료 약간, 파와 양파를 썰어 넣고 푹 끓이면 완성이다. 이것만 있으면 기본 밥 두 그릇이다.

  <마파두부밥>

  시판되는 마파두부 소스와 두부, 약간의 채소만 있으면 된다. 냉장고 속에 브로콜리와 쪽파, 버섯이 있어 조금 다져 넣고 볶다가 소스와 물, 두부 한모를 넣고 끓여 식힌 후 통에 담았다. 4~5인분 정도의 양이지만 둘이 한 끼에 다 먹을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카레라이스 보다 이걸 더 좋아한다.

  

  비상용으로 인터넷에서 평이 좋은 낙지볶음밥을 주문해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수박을 한통 사다가 썰어서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냉메밀라면 통밀도넛, 과채주스를 사다 놓았다. 이 정도면 굶어 죽지는 않겠지.


  화장실청소를 하고 빨래통에 빨래를 싹 다 빨아 건조해 정리해 두었다. 3일간 설거지는 아들이, 빨래와 밥은 딸이 하기로 했다. 남편한테는 일찍 들어오기나 하라고 당부했다. 걱정하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저녁 여섯 시에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6월 6일 현충일, 가족 모두 집에 있어 삼시세끼 밥을 하고 내가 없는 동안 먹을 음식까지 준비해 놓고 나오느라 하루종일 바빴던 나는 이미 지쳤다. 비행기 안에서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4월 말에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베트남 다낭 3박 4일 패키지여행 상품을 구매했다. '와, 싸다' 하면서 샀는데 막상 공항에 도착하자 걱정이 됐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비엣젯 항공이다. '비엣젯 항공? 이거 어느 나라 비행기지?' 아무 생각 없이 하나뿐인 목숨을 맡겼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들었다. 비엣젯은 베트남의 저가 항공사였다. 탑승을 기다리며 찾아본 블로그 후기에는 1-2시간 연착은 기본이고 좌석이 매우 불편하다는 안 좋은 후기뿐이었다. 어제 여행에 대한 기대로 설레었던 마음과 달리 지금 내 심장은 두려움에 떨리고 있다. 아, 나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죽더라도 여행은 마치고 죽어야 덜 억울할 텐데. 신이시여, 저희를 데려가시려거든 갈 때 말고 올 때 데려가주세요! 탑승 게이트 앞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6월 6일 밤, 인천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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