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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n 16. 2023

잘 짜인 패키지여행에 낭만이 낄 틈은 없었다

베트남 다낭 3박 4일 여행기 #4

  

  베트남에서 함께 여행을 다닌 인원은 모두 스물네 명이었다. 스물네 명 안에는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가장 많았고, 노년의 어머니를 모시고 온 중년의 자매들, 중년의 부부만 온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인원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만큼 가이드는 배려와 양보를 당부했다.


  다낭에서 첫 일정으로 마사지를 받은 우리는 점심식사 후 버스를 타고 호이안으로 이동했다. 호이안은 다낭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오래전 국제 항구도시였던 작은 마을이다. 100년 이상된 건물들이 잘 보존돼 있어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가게마다 걸린 색색의 등불은 무역항이던 시절 간판 역할을 했다고 한다. 노르스름한 색의 벽으로 똑같이 생긴 집을 구분하기 위해 집집마다 고유의 색과 문양이 들어간 등을 달았다고 한다.


  배를 타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이곳으로 들어갈 때,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이드가 아침에 우산을 꼭 챙기라고 했을 때는 날씨가 너무 맑아 비가 올 것 같지 않았었다. 비가 와서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더위가 한풀 꺾여 돌아다니는데 힘이 덜 들었다.


  우리는 베트남 여행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많이 봤던 자전거, 씨클로를 탔다. 뒤에서 씨클로 운전사가 열심히 페달을 밟고 나는 왕처럼 앞쪽 의자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골목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기분은 꽤 상쾌했다.


  씨클로에서 내려 가이드가 안내해 준 오래된 집과 상점을 구경 다니다 보니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고, 딸의 짜증도 점점 심해졌다. 밤 비행기를 거의 다섯 시간 타고 와 몇 시간 자고 일어나 물놀이를 했다. 마사지를 받으며 잠깐 졸았지만 오후 내내 사람 많은 곳을 돌아다녔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더 이상의 걸음은 무리라고 판단한 우리는 가이드가 알려준 에어컨이 있는(대부분 에어컨이 없다고 함) 카페에 들어가 망고빙수와 코코넛 커피를 먹으며 쉬었다. 한국 관광객을 위한 카페인 듯 메뉴판은 영어, 베트남어 보다 한글이 더 크게 적혀있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색색의 등불에 불이 켜지며 이국적인 모습이 여기가 한국이 아님을 말해줬다. 한국 사람이 워낙 많아 '대한민국 다낭시'라는 별명이 붙은 지역답게 지나다니는 관광객 대부분이 한국말을 썼다. 한국인이 많다 보니 현지 상인들도 '이거 싸요', '육천 원'등의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했다. 나는 여행을 가면 되도록 그 지역 언어로 인사를 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하니 나도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게 됐다. 베트남 말로 '안녕하세요'는 '신 짜오'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투본 강에서 사공이 노를 젓는 작은 배를 타고 촛불이 켜진 연꽃종이를 띄우며 소원을 비는 거였다. 나는 이 배를 타는 것보다 강변 카페에 앉아 배가 지나다니는 모습과 호이안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패키지여행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그런 낭만은 포기해야 한다. 맛있어 보이는 현지 식당을 다 놔두고 한국에서도 안 먹을 싸구려 뷔페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잠깐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야시장을 둘러본 후 약속시간에 맞춰 배 타는 곳으로 갔다. 강은 좁고 악취가 심했다. 소원을 빌기도 전에 빗물에 촛불이 꺼졌다. 하늘조차 패키지 여행자의 낭만을 허락하지 않는 건가.

'대충 하고 돌아가. 다음 사람 기다리잖아. 배려와 양보 몰라?'

  

  일정을 마치고 리조트로 돌아온 시간은 저녁 8시 30분이었다. 여행사에서 준비해 준 현지 간식과 야시장에서 산 망고를 먹었다. 커다란 망고를 다섯 개에 십만 동(한화 육천 원정도)에 샀는데 정말 크고 달았다. 집에서는 아이들 먹이고 씨에 조금 붙은 과육만 뜯어 맛을 보던 망고를 질리도록 먹었다. 과일 좋아하는 첫째와 뭐든지 잘 먹는 둘째 생각이 났다. 3일간 통화 무제한 서비스를 신청했다고 아이들한테 분명히 말을 했는데, 도착 직후 남편과 통화한 후 아무도 전화를 안 한다. 다행이면서도 뭔가 좀 쓸쓸한 기분으로 베트남에서의 두 번째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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