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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n 20. 2023

베트남에서 먹은 최고의 음식은 삼겹살

베트남 다낭 3박 4일 여행기 #5


 "푹 쉬시고 내일 아침 8시 30분까지 로비로 내려오세요."

하루 일정을 마치고 헤어질 때 가이드가 하는 말을 듣고 한숨부터 나왔다. 오늘 오후 내내 징징거렸던 딸을 내일 아침 일찍부터 끌고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딸의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나는 것 같아 해열제를 먹이고 일찍 재웠다.


  베트남 다낭 여행 3일 차 아침이 밝았다. 내 걱정과 달리 딸은 6시에 쌩쌩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역시 어린 피라 달라! 아침을 재빨리 먹고 수영장에서 한 시간 정도 놀았다. 함께 온 스물한 살 조카는 매우 다정한 성격이라 열한 살 어린 사촌동생과 잘 놀아줬다. 친오빠는 안 받아주는 장난을 다 받아주니 신나서 낄낄거리며 물을 뿌려대는 초3 딸의 웃음을 보며 빙그레 웃음이 났다. 아, 이대로 계속 수영장에서 멍 때리고 싶지만 패키지여행에서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굉장한 민폐다. 서둘러 아이를 씻기고 준비해 로비로 내려갔다. 어제는 서먹했던 일행들과 이제는 낯이 익어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오늘의 첫 일정은 쇼핑이었다. 일정표에는 쇼핑이라 나와있지만, 여긴 쇼핑센터가 아닌 폐쇄된 공간이다. 강의실처럼 생긴 공간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혹 할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 제품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난 예전에 상해여행에서 사 온 보이차와 라텍스 베개가 쓰레기였다는 것을 계속해서 되뇌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막고 앉아있었다. 모두가 관심을 보였지만 막상 백만 원이 넘는 침향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고, 이제는 가이드까지 합세해서 적극 제품 판매에 나섰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 한 명은 사줘야 다 함께 웃으면서 여길 나갈 수 있을 텐데, 눈치를 보고 있는데 다행히(?) 중년의 부부가 한 세트를 구매하겠다고 나섰다.


  버스를 타고 다낭에서 42km 떨어진 바나힐로 향했다. 바나힐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시절에 프랑스 관광객들을 위한 휴양 목적으로 해발 1500m 위에 건설된 리조트이다. 이 리조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5,801m에 달하는, 끝없이 길고 긴 케이블카를 탔다.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비행기를 탄 기분으로 조금 무섭기도 했다.

바나힐 케이블카, 썬월드

  정말 한~참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고 오른 산꼭대기에 에버랜드 비슷한 테마파크, 썬월드가 있었다. 아래쪽은 매우 더운 날씨였는데 산꼭대기라 그런지 시원했다. 실제로 이곳은 주변 환경보다 10~15도 정도 낮다고 한다. 놀이기구가 많았지만 사람들도 많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점심식사 포함 3시간 정도였다. 딸이 무서운 걸 잘 못 타는 편이라 회전목마와 회전그네, 총 쏘면서 타는 기차를 타고나니 어느새 약속시간이 됐다.


  썬월드 보다 약간 아래쪽에 위치한 골든브리지를 잠깐 들렀다가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어느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위해 다가왔다.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오줌이 마렵다고 한 듯한데 화장실로 안 가고 그 자리에 서서 오줌을 누게 했다. 그것도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쪽을 보고... 애 엄마인 듯한 여자는 컵에다 보게 하려다 실패한 것 같긴 한데, 사람들을 향해 시원하게 오줌을 갈기는 아이를 보며 웃고 서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긴 하나 여기 사람들이 우리나라 7~80년대 의식 수준으로 살고 있다 생각하면 그리 경악할 만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오늘은 딸은 괜찮은데 내가 지쳤다. 이제 그만 숙소로 들어가 쉬고 싶었지만 난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패키지여행자다. 참아야 한다. 아직 일정이 더 남았다. 버스를 타고 다낭으로 돌아와 '영흥사'라는 절에 갔다. 절 앞에 원숭이가 돌아다녔다. 절 아래로 보이는 해지는 바닷가 풍경이 아름다웠다.

골든브리지와 영흥사

  저녁에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 삼겹살을 먹었다. 삼겹살은 언제, 어디서 먹어도 옳다. 삼겹살과 김치, 흰쌀밥 그리고 맥주를 한잔 딱 마시니 피로가 싹 가셨다. 맥주보다는 소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아직 일정이 남았단다.


  선택관광이라 이름 붙었지만 안 한다고 선택하기 애매했다. 이걸 안 한다고 하면 길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가이드가 꼭 해보라고 몇 번이나 추천했다. 1인당 30달러짜리 한강 유람선을 탔는데, 일행 중 절반은 타고 절반은 안 탔다. 누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차라리 길에서 헤매라고, 돈 쓰고 짜증 나는 것보다 그게 낫지 않냐고 말해주고 싶다. 어쨌거나 드디어 오늘의 일정이 끝났다!


  숙소로 돌아온 시간은 밤 열 시였다. 일찍 들어와 수영장에서 놀고 싶었던 딸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욕조에 물을 한가득 채워놓고 목욕을 했다. 구름 위에 누운 듯한 기분으로 침대에 누워 딸을 꼭 끌어안고 물었다. 

"오늘 어땠어? 힘들지 않았어?"

"아니. 재밌었어."

그래, 네가 재밌었다면 엄마도 재밌고 행복한 하루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여유 없이 빡빡한 일정 보다 음식이다. 어제 호이안에서 저녁에 갔던 그릴뷔페는 정말 맛이 없었는데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쌀국수 면에서 쉰내까지 났다. 차라리 자유식으로 알아서 사 먹으라고 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오늘 바나힐에서 점심으로 간 식당도 우리나라에서 만원 정도에 갈 수 있는 싸구려 초밥뷔페였다. 쌀국수 한 그릇을 먹더라도 좀 제대로 만든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늘 저녁 삼겹살을 그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걸 수도.


*2023년 6월 8일 밤에, 참고문헌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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