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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l 06. 2023

사흘에 한 번은 티격태격하는 흔한 엄마와 딸의 여행

베트남 다낭 3박 4일 여행기 #6


베트남 다낭에서의 마지막 날(6월 9일)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수영장에서 놀고 가방을 챙겨 로비로 내려가 체크아웃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놀라운 건 이 모든 일이 끝난 시간이 오전 8시 20분이었다는 거다. 딸(초3)은 학교에 가는 날 보통 여덟 시에 일어난다.


베트남에 온 이래 최고 덥고 습한 날씨였다. 버스에서 내려 다낭 대성당을 향해 걸어가는 그 몇 분 동안에도 숨이 턱턱 막혔다. 다낭 대성당은 프랑스 식민지시절 지어진 오래된 성당으로 벽이 예쁜 핑크빛이라 핑크성당이라고들 부른다. 성당 마당에는 피에타 조각상이 있었다. 올해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상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게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났다. 그 버킷리스트를 올해 이루기 힘들 것 같아 뒤로 미루고 언니와 함께 다낭여행을 온 거였다. 조각상 앞에서 기도해 본다. 내년에는 이탈리아 여행을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다시 무더위 속을 걸어 버스에 올랐는데 딸의 짜증이 시작됐다. 아침에 바른 선크림 때문에 눈이 따갑다는 게 이유였다. 마침 바닷가에 잠시 내려서 사진 찍을 시간이 주어졌다. 모두들 내리는데 딸이 버스에서 내리지 않겠단다.

"내려서 물로 눈을 좀 씻어볼까?"

"싫어. 나 안 내릴래"

"바닷가 안 가도 되니까 눈이라도 좀 씻자."

"싫다니까!"

딸이 더 짜증을 냈다. 사람들이 거의 내리자 버스기사가 에어컨을 껐다.

"나 그냥 내릴래."

버스 안이 급격히 더워지자 딸이 내리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바닷가에 수도가 보였다.

"여기서 세수할래?"

"싫다니까 왜 자꾸 그래?"

"난 네가 눈 따갑다니까 걱정돼서 그렇지"

이제 내 목소리에도 짜증이 묻어났다.

"나 이모한테 갈래."

딸이 저 멀리 보이는 언니한테 달려갔다.


"지윤아~"

"싫어. 찍지 마."

내가 사진을 찍으려 다가가자 딸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돌아섰다. 잠시 후에 언니가

"지윤아, 여기 서 봐."

하면서 휴대폰을 들자 딸이 손으로 브이를 하고, 만세를 하고, 볼풍선을 만드는 등 가증스러운 포즈를 취한다. 휴, 그래. 너 잠시 이모딸 해라.



이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다. 가이드, 일행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고 출국장에 줄을 섰다. 비행기 안에서도 딸은 지 이모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혼자 편안하게 다운로드해 온 영화 '동주'를 보고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인천공항이란다.


항상 느끼지만 인천공항은 참 넓다. 비행기에서 내려 지하로 내려가 셔틀트레인을 타고 제1터미널로 이동하는데도 한참 걸렸고 짐 찾는 곳은 또 왜 그렇게 멀리 있는 건지, 집에 가면 바로 쓰러질 것 같았다. 드디어 짐을 끌고 나가니 저 앞에 반가운 얼굴, 남편이 보였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열한 시쯤, 첫째(고2)는 쌓아뒀던 설거지를 하고 있고 둘째(중3)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미루고 미루다 내가 온다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져 애쓰는 모습이 귀여웠다. 내가 해놓고 간 음식은 다 먹었나 냉장고를 열어보니 과일은 손도 안 댔고, 반찬도 그대로 있고, 김치찜이랑 라면만 열심히 먹어 치웠다. 치킨이랑 피자 박스도 보이고. 안 굶었으면 됐지 뭐.


"엄마, 나랑 같이 자자."

자러 들어갔던 막내딸이 도로 나와서 말했다.

"우리 3일이나 같이 잤잖아. 오늘은 언니랑 자. 엄마는 아빠랑 잘래."

낮에 바닷가에서 나한테 짜증 낸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다.

"앙~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

"풋, 가서 누워 있어. 엄마는 아빠랑 요거(면세점에서 산 위스키) 한잔만 마시고 갈게."

내가 널 어떻게 이기겠니.


위스키 한잔만 마시려고 했는데.... 먹다 보니 라면이 당겼다. 여행 내내 맛없는 밥을 먹으면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게 얼큰한 라면이었다. 참았다가 내일 아침에 먹으려고 했는데 술이 한잔 들어가니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라면 먹을까?"

남편이라도 나를 좀 말려주면 좋으련만, 빛의 속도로 냄비에 물을 받는다. 라면 익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고... 나는 여행 전에 엄마한테서 가져온 총각김치가 생각나 통째로 식탁에 올렸다.

"자기야, 이거 아직 안 먹어봤지? 다 익었겠다."

"와, 장모님 총각김치 최고!"

우리밤 열두 시에 라면과 총각김치를 흡입하며 어린애들처럼 웃었다. 여행의 고단함이 사르르 녹아내리고 행복만이 남아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라면을 다 먹고 딸의 곁으로 가니, 딸은 이미 곤히 잠들어 있었다. 토라지고 짜증 낼 때는 얄미워도 잠든 모습은 사랑스러운 천사다. 내가 앞으로 이 천사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행운이 얼마나 더 남았을까? 잠든 딸의 키가 한 뼘은 더 자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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