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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n 29. 2023

사랑벌레, 널 사랑하지 않아


요즘 우리 동네는 여기저기 아무 데서나 사랑나누는 것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누가 있든 말든 길에서도, 건물이나 차 앞에서도 애정행각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다. 정말 심각한 것은 이런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거다. 애정행각을 벌이는 도중 심심하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살짝 다가가 달라붙기도 한다. 밖을 나가기가 두렵다.


어제 퇴근길에는 이것들을 조금이라도 덜 보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이것들이 딱 달라붙은 채로 나를 졸졸 따라오는 게 아닌가. 아니 이런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들 같으니라고. 잘 곳이 필요한지 우리 집까지 쫓아 들어오려 하는 걸 간신히 막았다.


이것들은 거의 24시간을 쌍으로 붙어 다닌다. 이런 사랑의 결과로 100~350의 알을 낳는, 엄청난 번식력의 무시무시한 그 이름은 사랑벌레다. 이름만 들으면 벌레치고는 사랑스럽지 않을까 싶지만 놈들의 이름이 사랑벌레인  하루종일 짝짓기를 하기 때문일 뿐,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수컷은 3~4일 짝짓기만 하다 죽고 암컷은 며칠 뒤 알을 낳고 죽는데 알은 5~6시간이면 성체가 된다. (자료 출처 : 다음 백과)


사랑벌레가 처음 우리 동네에 나타난 건 작년 이맘때 날씨가 갑자기 확 더워졌을 때였다.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해서 어느 순간 무섭게 늘어났다. 주차장에 세워둔 흰색 차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놈들, 방충망 사이를 비집고 집안까지 들어오는 놈들을 마주할 때면 언젠가 시커먼 벌레떼의 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소름이 끼치곤 했다. 2주 정도 지났을 때 놈들은 갑자기 자취를 감춰 다행이다 싶었는데 올해 더위가 시작되자 또 나타난 것이다.


사랑벌레는 전 세계 아열대와 온대지방에서 많이 발생하는 곤충으로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놈들의 서식처가 넓어지는 듯하다. 유독 우리 동네 은평구에 놈들이 몰린 것은 북한산, 백련산, 불광천 등 산과 습지가 많다 보니 놈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된 것 같다고 한다.


사랑벌레는 딱히 해를 끼치는 곤충은 아니다. 그런데 얼핏 보면 날씬한 파리 같은 벌레 두 마리가 맞닿아 날아다니며 내 몸에 달라붙기도 하고 떼로 몰려다니기도 해서 매우 혐오스럽다. 특히 흰 벽의 건물이나 흰색 자동차에 많이 붙어있고 밝은 옷을 입은 사람들한테도 잘 달라붙는다. 삼삼오오 모여 노는 아이들은 사랑벌레가 보이면 발로 밟고 때려잡는 게 놀이가 됐다.


북한산 가까운 은평구에 떼로 몰려온 사랑벌레


사흘 전에 비가 많이 내리고 나서 살아있는 놈들이 많이 줄었다. 주차장 바닥에 놈들의 사체가 쫙 깔렸다. 놈들의 죽음이 하나도 슬프지 않다. 사랑벌레,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아. 이제 오지 마, 제발. 듣던 노래의 볼륨을 크게 올려본다.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 사랑벌레야, 듣고 있니?


https://youtu.be/iNCj4_RFGb4



* 이 글은 김준정 작가님의 글에 나온 어반자카파의 노래 <널 사랑하지 않아>를 듣다가 쓰게 되었습니다 *^^*

https://brunch.co.kr/@upgradezzun/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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