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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l 19. 2023

애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길에서 혼내고 그래?


아이 엄마가 좀 없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건 아이를 길에서 혼내고 짜증 내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난 속으로 생각했다.

'애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길에서 혼내고 그래? 없어 보이게. 난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너무 심하게 혼내는 걸 보면 그런 엄마를 둔 아이가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나는 며칠 전에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그 짓을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 재택근무로 내가 집에 있으니 막내딸이 참 좋아한다. 얼마 전에 딸이 등교할 때 우산을 안 가지고 나갔는데 하교할 때 비가 왔다. 내가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갔던 게 좋았는지 그날 오후에 비 예보가 있는데 딸이 우산을 두고 가겠다고 했다.

"학교 끝나고 비 오면 전화할게. 엄마가 나와줘."

집에서 학교 정문까지는 3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다.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점심시간 이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딸한테 전화가 오면 바로 나가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오지 않는다. 끝날 시간이 아직 안 됐나? 그동안 무심했던 나는 수업이 정확히 몇 시에 끝나는지도 몰랐다. 기다리다가 내 예상에서 20분이 넘어가자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잠시 후에 카톡이 띡 왔는데, '늦어'라는 단 두 글자였다. 뭐지? 이게 내 딸이 한 게 맞나? 앞뒤 설명도 없이, 전화는 안 받고 '늦어'라는 두 글자에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딸한테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는다. 돌봄 교실 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돌봄 교실에 안 가는 날이라 오지 않았다고 하신다. 피아노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에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 핸드폰 위치추적 앱을 보니, 학교 주변이다.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 받지 않는다. 전에 봤던 영화에 나온, 사랑스러운 여자아이한테 벌어졌던 안 좋은 일이 떠오르며 더욱 불안해졌다. 초3 여자아이랑 30분간 연락이 안 된다고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하면 안 받아주겠지. 가만있을 수 없으니 일단 학교 앞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집을 막 나서려는데 아이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학교 앞인데 우산 좀 들고 나와줘."


아이가 학교 맞은편 건물 입구에 서 있었다. 주변에는 아이들을 마중 나온 엄마들이 모여 있었다.

"너 지금까지 뭐 했어?"

"친구 엄마가 떡꼬치 사줘서 먹고 친구 학원 데려다줬어."

"그럼, 친구가 너 여기다 두고 그냥 간 거야?"

"아니..."

화가 나 다그치는 내 말투주눅이 든 아이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주변 엄마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나는 화를 멈출 수가 없었다.

"어딜 갈 거면 엄마한테 허락을 받고 갔어야지. 학교 끝나고 전화하기로 했잖아.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그리고 그 친구는 너 우산도 없는데 그냥 놔두고 간 거야? 그리고 엄마가 아무한테나 얻어먹고 다니지 말랬지. 그리고 전화는 왜 안 받고 앞뒤 설명도 없이 늦어? 버릇없이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잘못했습니다."


내 화를 다 쏟아내고 아이에게 우산을 건네고 아이의 가방을 받아 들었다.

"너 다음에 또 이런 일 있으면 그냥 안 넘어가. 이제 피아노 학원 가."

풀 죽어 걸어가는 딸의 뒷모습이 유독 작아 보였다. 하, 그냥 참을 걸 그랬나. 아냐, 매일 좋게 좋게 넘어가니까 너무 제멋대로야. 하, 가방 안에 벽돌이 들었나, 얘는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 다니는 거야...


피아노 학원에 간 딸이 조금 전의 일이 신경 쓰이는지 카톡을 보냈다.

-엄마, 죄송합니다. 사랑해요.

-엄마도 사랑해.


일을 하려다 내려놓고 감자를 채 썰었다. 딸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감자채 전을 부쳤다. 딸은 노릇노릇 바삭하게 익은 감자채 전을 먹으며 아까 학교 끝나고 떡꼬치를 사준 친구엄마가 누군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잘조잘 떠들었다. 내가 차가운 말로 막아버렸던 아이의 입을 따뜻한 감자채 전이 열어줬다.



짧은 시간에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길에서 아이를 혼내는 엄마는 방금 지옥에서 돌아온 사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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