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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l 21. 2023

지구를 청소하는 아이


  내가 사는 지역 자원봉사센터에서 <에코플러스 가족봉사단>을 모집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달이 셋째 주 토요일에 구내 환경 관련 봉사활동을 하는 모임이다. 토요일 오전이면 평소와 달리 안 깨워도 일찍 일어나 티브이 앞에만 주구장창 앉아있는 초3 막내딸을 데리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신청하고 딸에게 알렸다.  

"나 그거 하기 싫은데."

"우리가 아파하는 지구를 좀 청소해야 하지 않겠어?"

딸은 내 말에 콧방귀를 뀌며 사라졌다.


  5월 셋째 주 토요일 오전 열 시에 첫 번째 활동이 있었다. 북한산 둘레길 환경정화 및 외래식물 퇴치 작업이었다. 모이는 곳이 버스를 타기 애매한 곳이라 남편한테 태워다 달라고 했다. 차 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야, 집은 쓰레기장 만들어놓고 치우지도 않으면서 남의 동네 청소하러 가냐?"

"아빠, 남의 동네라니? 우린 지구를 청소하러 가는 거라고!"

당당한 딸의 대답에 남편은 더 이상 아무 말 못 하고 껄껄 웃었다.


  1년간 봉사활동을 함께 할 가족들이 모였다. 얼핏 보기에 30명쯤 돼 보였다. 두 팀으로 나눠 숲해설사와 함께 북한산 둘레길로 올라갔다. 북한산에 살고 있는 나무와 풀, 꽃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름을 잘 몰랐던 식물들을 알게 됐고, 애기똥풀을 꺾어 손톱을 색칠하기도 했다. 호흡기 알레르기를 일으켜 기관지에 해로운 외래종이라는 단풍돼지풀과 나무를 휘감아 결국에는 죽게 만든다는 한삼덩굴을 뽑아 버렸다. 한삼덩굴은 나무를 휘감고 자라나며 뒤덮어 결국엔 나무를 죽게 만든다고 한다. 그건 마치 우리 마음속에 자라나는 미움과 원망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단풍돼지풀, 한삼덩굴, 애기똥풀을 손톱에 칠하는 딸, 애기똥풀


  중간 휴식을 위해 앉은자리 앞에 시 한 편이 적힌 표지판이 있었다. 숲해설사가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했다. 난 이미 아무 생각 없이 속으로 한 번 읽었는데, 이상하다. 소리 내어 읽었을 뿐인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 마음속을 나도 모르게 휘감고 있던 미움, 우울, 좌절 같은 한삼덩굴이 뽑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보고 느끼는 것과 말을 해서 내 귀에 들려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달았다.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밀물 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딸이 눈에 불을 켜고 쓰레기를 찾았지만 산속에 쓰레기는 별로 없었다. 세 시간가량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모두 흩어졌다. 배고파 죽겠다는 딸을 달래며 산을 내려온 곳에는 마침 딸이 좋아하는 떡볶이집이 있었다. 김떡순맛있게 먹고 딸에게 말했다.

"오늘 지구 청소하느라 고생 많았어."

"엄마도. 우리 다음 달에 또 하자."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뱃속은 든든하고 마음은 맑아졌다. 아, 이제 집에 가서 낮잠 한숨 잘 수 있으면 세상 더 바랄 게 없다!


 


*한삼덩굴은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혈관건강에 좋다 하여 말려서 차로도 마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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