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아람 Jul 15. 2023

쓰레기봉투값 아끼려다 시작된 초파리와의 전쟁

남편은 소소한 쇼핑을 좋아한다.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는 건 싫어하는데 인터넷으로 뭔가 자질구레한 것들을 자꾸만 사들인다. 예를 들면 모양이 각기 다른 실리콘 뒤집개라든가 계량스푼이라던가 두꺼운 고기 안에 찔러 넣어 고기 속 온도를 잰다는 온도계 같은 거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요리하는 유튜브를 즐겨봤는데 그때 엄청난 주방용품들과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각종 식재료들이 배송됐다. 이제 코로나는 끝났고 그것들의 쓰임도 끝났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끝나고 한동안은 물고기 관련 용품들, 집안에서 간단하게 운동을 하는데 쓰는 매트와 밴드 같은 것들이 배송됐다. 운동용품들은 물론 일회 사용으로 그 쓰임이 끝났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박스 하나가 배송됐다. 그 안에는 쓰레기통이 들어있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물건을 담아 오는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딱 들어가는 사이즈의 쓰레기통이었다. 그 쓰레기통의 장점은 뚜껑에 막대기가 달려있어 쓰레기를 눌러가면서 쓸 수 있어 쓰레기봉투를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 거란다. 490원짜리 봉투 하나를 아끼려고 굳이 쓰레기통을 새로 샀냐며 반품하라고 했다가, 그냥 쓰기로 했다. 


쓰레기를 꾹꾹 눌러주니 확실히 쓰레기봉투를 오래 쓸 수 있었다. 일주일 넘게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았던 어느 날, 쓰레기통 주변에 초파리가 굉장히 많이 꼬인다는 걸 느꼈다. 비운 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오늘은 내다 버려야겠다 생각하며 쓰레기통과 쓰레기봉투를 분리했다. 봉투 안과 밖에 왜 이리 깨가 많이 붙어있지? 난 깨를 버린 적이 없는데....?? 아, 그건 깨가 아니었다. 초파리가 알을 깠다!! 헉- 쓰레기통 주변으로 깨인지 알인지 깨알같이 몰려있는 것들을 물티슈로 쓸어서 쓰레기봉투에 담아 당장 밖으로 내놓았다.


"우리 이제 쓰레기 눌러서 버리면 안 될 거 같아. 쓰레기봉투값 아끼려다 망했어."


그 후로 쓰레기통이 꽉 차지 않아도 쓰레기봉투를 내다 버렸다. 그런데도 장마철이라 그런지 초파리가 많이 꼬였다. 원래 여름, 장마철에 초파리가 이렇게나 많았었나 계속 의심하면서 설거지를 바로바로 하고 과일이나 음료를 먹으면 곧바로 치우는 등 노력을 하는데도 초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중학생 딸이 말했다.

"엄마, 초파리가 많이 생긴 이유를 알아냈어!"

"뭔데?"

"생리대였어. 내가 검색해 보니까 생리대 때문에 초파리가 많이 꼬인대."

아,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내가 생리를 했고 이번 주에 딸이 생리를 했다. 초파리 요 녀석들이 단 냄새, 음식 냄새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엄마, 내가 검색해 보니까 다잇소에 파는 끈끈이 놓으면 초파리 없어진대. 당장 사 올게. 카드 좀 줘."

"그래. 얼른 갔다 와."


딸이 사 온 귀엽고 앙증맞은 끈끈이를 쓰레기통 위에 놓았다. 다음 날 아침에 봤더니 초파리가 많이 달라붙어있었다. 초파리가 좋아하는 바나나향과 노란색을 이용해서 유인해 달라붙어 죽게 만드는 원리다.

"이거 정말 좋다. 그런데 이게 구천 원이나 해?"

"아니~이건 이천 원이고, 내 거 몇 개 좀 샀어. 히히."

딸아, 넌 계획이 다 있었구나! 


12시간 경과 후
18시간 경과 후


"자기야, 쓰레기통을 작은 걸로 다시 살까?"

"아니, 사지 마. 아무것도 사지 마!"

소소하게 뭔가(내 눈에는 그저 쓰레기)를 사고 싶은 남편의 마음을 유인해 딱 달라붙여 없애버릴 수 있는 끈끈이를 파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이전 10화 남편의 엄마가 돼 주고 싶었던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