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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Sep 22. 2023

사춘기 딸을 둔 엄마가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이유

아이들의 웃음에는 돈이 든다


"엄마, 나 운동 다니고 싶은데. 내일부터."

저녁을 먹고 앉아있는데 중3딸이 내게 말했다.

"갑자기 무슨 운동?"

"킥복싱 체육관."

"너 다음 달에 중간고사잖아. 중간고사 끝나고 해."

"아~~ 친구들은 내일부터 한다고 했단 말이야."

"너 친구들이 한다고 해서 하는 거지?"

"아냐. 정말 하고 싶어서 그래."

"정말 하고 싶으면 한 달 기다렸다가 해. 그리고 원래 운동은 혼자 하는 거야."

"흥. 보내줘. 왜 오빠만 학원 보내주고 나는 안 보내줘."

"야, 지금은 네가 안 다닌대서 안 가는 거고, 너 예전에 피아노, 미술, 수영, 공부방, 태권도, 합기도 또 뭐냐, 플라잉 요가까지 했었잖아. 안 보내주긴 뭘 안 보내줘!"

"내가 다니고 싶어서 다닌 건 별로 없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네가 다니고 싶다고 해서 다닌 게 아니었구나 그게... 나 뭐 한 거니?'


딸은 그간 내가 해준 것들은 다 쓸데없는 것들이라고 하면서 지금 자신이 원하는 걸 당장 해달라 조르고 있었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나도 그런 걸까? 엄마가 내게 해준 게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엄마가 해주지 못한 것만을 기억하는 걸까? 자식이란 게 이런 건가... 한숨이 났다.


딸은 다음 날 친구들과 체육관에서 체험수업을 하고 왔다며 내 앞에서 배운 걸 해 보였다.

"엄마, 잘 봐. 나 쩔지?"

"뭐가? 춤추냐?"

"아 잘 봐. 쩔지?"

손을 잽싸게 뻗는 동작인 거 같은데 느릿느릿. 보고 있자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너 나 웃기려고 일부러 그러지?"

"아냐. 잘 봐. 관장님이 나 잘한다 그랬어. 진짜 쩔지?"

"그래. 쩐다. 쩔어."

"그럼 나 내일부터 다녀도 돼?"

"아뉘."

나는 정 다니고 싶으면 중간고사가 끝난 뒤에 시작하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딸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 날은 편지와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와서 나를 설득하려 했다. 

"엄마 돼지바 별로 안 좋아해. 그리고 지금 돈이 없어."

나는 돈이 없다고 했지만 아이는 그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돈 쓰는 걸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카드가 있기 때문에.

딸의 약속 편지


딸의 끈기에 두 손 든 나는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1번, 지금 등록하면 딱 한 달만 해줄 건데 중간고사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그다음 달부터 등록 안 해준다.

2번, 중간고사 끝나고 등록하면 성적 상관없이 6개월을 등록해 준다.


딸은 1번을 선택했다. 중간고사 성적(평균 미달인 수학, 영어)을 올리겠다는 약속과 함께.


체육관비는 한 달에 17만 원. 아이한테는 솔직히 말하지 못했지만 내가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지금 우리가 너의 취미생활까지 지원해 줄 능력이 못돼. 운동을 정 하고 싶으면 나중에 네가 돈 벌어서 하면 안 되겠니?'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부모로서 당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마이너스 백만 원이나 백십칠만 원이나 뭐 그게 그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딸에게 카드를 건넸다.


또 한 번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중학교 때 원하는 걸 못해준다고 말했던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며칠 뒤에 체육관을 찾아갔다. 관장이 나와서 딸이 집중력이 좋다고 칭찬을 한다. 딸이 운동하는 걸 숨어서 지켜보다 돌아왔다. 딸이 나를 위해 사다 놓은 돼지바를 꺼내 먹었다. 가루가 많이 떨어져서 싫어했는데 오늘은 그게 거슬리지 않을 만큼 달콤했다. 운동하며 웃고 있던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너를 웃게 하는 건 엄마 보다 돈이로구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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